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가 끝내 무산돼, 향후 정기국회 일정이 파행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게다가 국회 본회의는 의장단의 '휴회' 선언이 없을 경우 언제든지 본회의를 열 수 있기 때문에, 당장 16일부터 예정된 외교, 통일, 국방장관 및 국정원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이날 열린우리당이 인준안 처리를 포기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청와대 측의 "전 후보자의 헌재재판관 임명은 국회 상황을 보면서 판단할 것이며 재판관 임명 없이 헌재 소장이 될 수 있는지 여부도 국회가 판단해줘야 한다"는 사실상의 '재판관 지명 유보' 의견 때문으로 보인다.
즉, 청와대가 전효숙 임명동의안이라는 정치적 '공'을 국회로 넘김에 따라 열린우리당 역시 물리력 행사 등을 통한 표결처리 강행에 무리를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최근 부동산 정책의 혼선 등으로 인해 국민적인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또 다시 국회에서 여야가 물리적 충돌을 벌인다면, 그 화살이 한나라당보다는 열린우리당 쪽으로 쏠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처리 무산은 이번을 합쳐 4번째. 특히 지난 9월부터 두 달 가량을 끌어온 '전효숙 사태'는 여야 쌍방이 정치력보다는 감정의 날을 먼저 세우면서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번의 한나라당에 의한 국회 본회의장 점거는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사전에 충분히 예견하고 대비할 수 있었던 사안이라는 평가가 우세한 형편이다.
열린우리당은 그간 '헌재소장의 장기 공백을 끝내 헌정질서를 유지한다'는 원칙 아래, 국회의장에 의한 직권상정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이는 임채정 국회의장 측이 15일 직권상정에 난색을 표함에 따라 사실상 불가능했고, 열린우리당만의 단독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등 군소 야3당이 내건 '선해결 후표결'이라는 원칙으로 인해 '여소야대'만을 실감한 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의 전략도 빛을 발했다. 한나라당은 그간 '노무현 대통령의 지명 철회 혹은 전 후보자의 자진 사퇴' 카드를 들고 나와 청와대와 여당을 연일 압박했고, 급기야 14일에는 대정부질문 후 전격적으로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는 초강수를 띄웠다.
이는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나, 소속 의원들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15일 세 차례에 걸쳐 열린 의원총회에서 다수 의원들은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의원들 거의 대부분이 국회 본회의장 단상 주변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직권상정이나 기타 군소 야3당과의 합의에 따른 표결 처리를 위해서는 일단 한나라당 의원들을 어떤 식으로든 본회의장 밖으로 몰아내지 않을 도리가 없었고, 가장 손쉬운 해결책으로 여겼던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은 임채정 의장 측이 '인사 문제'라는 이유로 거부함에 따라 이 역시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또 열린우리당 의원들만으로 국회 본회의장을 '점령'하고 본회의를 열어도, 열린우리당은 국회법상 필요한 인원인 '제적 과반수의 출석과 과반수의 찬성' 중 '제적 과반수'에도 크게 못미치는 139명의 의석만을 보유한 까닭이다.
여기에 더해 전날까지만 해도 찬성과 반대를 떠나 표결처리에 협조해줄 듯 보였던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이 15일 오전 야3당 대표단 회의를 통해 '한나라당이 농성을 풀고 표결에 참여해야만 한다'는 입장을 모으면서 열린우리당이 구상하고 있던 '표결처리'는 무산됐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은 이 사태의 장기화에 대비해 일단 16일로 예정된 한일의원연맹 행사차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던 문희상 의원 등 의원 20여 명에 대해 '대기 명령'을 내리고, 외유 중인 의원들 역시 조속히 국회에 합류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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