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출마 선언이 임박한 것 같다. 국내 모든 언론들의 촉각도 그가 발표할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어제 발표할 것이냐에 맞추고 있는데 그 선언에 담길 내용은 궁극적으로 대통령 출마선언일 것이라고 못을 박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제발 출마 선언 말고 ‘한나라당 지지자는 똘똘 뭉쳐 이명박 후보를 도와 좌파정권을 종식시켜야 합니다’라고 선언해 주세요”라고 희망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그들은 바로 지금 대통령 직 쟁취길 8부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지금도 이회창 전 총재 집 앞에서 출마반대 농성을 하고 있다. 또 지난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대놓고 노골적으로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조선일보를 비롯한 국내 대형 보수신문들은 지금 이회창 출마를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선일보는 아예 연 이틀간 사설을 통해 이회창 전 총재를 아주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가고 있다. 동아일보는 아주 한 술 더떠서 여론조사 기사를 통한 노골적 이명박 띄우기로 이회창 죽이기를 하고 있다. 이들 신문의 이런 행태들은 이들 신문들의 지난 행태와 비교하면 '인심은 조석변이란 얘기가 바로 이거로구나'하
그는 정치를 하기 전만 해도 대쪽판사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법과 원칙을 중시, 우리나라 법조인들의 표상이라는 평판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는 이 같은 평판을 바탕으로 대법관을 지내고 감사원장을 역임하는 등 국가의 기강을 세우는 직책들을 두루 설렵했다. 이후 김영삼 정부 총리로 인준을 받고 총리직에 올랐으나 법에 명시된 총리의 권한을 행사하려다 청와대와 충돌, 결국 총리직까지 스스로 내던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주가는 더욱 올랐다. 또 한 때 국민 지지율 70%까지 받으며 이회창 대세론으로 곧 대통령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두 번의 대권 도전에서 모두 석패했다. 그리고 이전 얻었던 대쪽판사, 원칙주의자 등의 평판도 소멸되어 갔다. 거기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대대적으로 실시된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서 대통령 선거자금을 차떼기로 받은 것이 밝혀지면서 지탄을 받으며 대국민 사과까지 한 뒤 야인으로 돌아갔다. 따라서 이 같은 그의 정치인생 10년은 그의 인생에서 성공한 60년 후의 실패한 10년이라는 멍에를 지우며 많은 회한을 남겼을 것이다. 또 이런 현상들이 그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실패한 10년은 비록 그의 실패에 결정적
이명박 후보 대선가도의 마지막 폭탄이라고 불리는 ‘BBK 사건 김경준’의 입국이 현실화 되고 있는 가운데, 뉴스의 초점은 김경준 귀국이 이 후보의 몰락을 가져 올 것인가에 쏠려있다.현재 한겨레, 경향, 오마이, 프레시안과 본보인 네이션코리아는 이번 대선정국의 핵폭탄이 사실상 김경준과 BBK 주가조작 사건이라고 보고 집중 취재 보도하고 있다. 이중 특히 한겨레 21은 미국 현지까지 가서 김경준의 인터뷰까지 시도하는 등 심층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언론의 보도보다는 국회 국정감사가 열리면서 각종 관련 자료들이 신당의 의원들을 통해 쏟아지는 등 이명박 후보가 BBK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되었을 것이라는 폭로가 줄을 잇고 있으며 이와 반대로 또 한나라당과 이 후보 측에서는 이 같은 신당 의원들의 폭로를 김대업식 폭로라고 평가절하 하면서 파장을 줄이기에 급급하고 있다.그런데 28일, 신당 정봉주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주가조작의 핵심으로 지목돼온 BBK는 이 후보가 공동대표였던 LKe뱅크의 100% 출자회사임이 은행 공식문서를 통해 확인됐고, 이로써 `BBK주식은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는 이 후보의 거짓말이 드러났다"고 주장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현재도 50~55%대로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고공행진을 계속 중이다. 반면 이 후보를 제외한 여타 후보들의 지지율은 다 합해도 30%내외에서 오락가락하며 이 후보의 추격에 힘겨워 하고 있다. 따라서 이대로만 간다면 이제 50여일 남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은 제 17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 지표상으로 보면 이렇게 강고한 지지층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명박 후보지만 지금도 한나라당과 그 지지층 사이에선 어딘지 모를 불안감에 휘둘리고 있으며 이 때문에 당 안팍에서 끊임없이 후보교체론이 흘러나오며 그 대안으로 이회창 박근혜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또 사실상 후보출마 선언만 하지 않았을 뿐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그가 대선출마에 대한 마음을 굳힌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 있는 징후가 곳곳에서 보인다. 그리고 이 전 총재가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하는데 그 우군으로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던 그룹들이 도사리고 있음도 감지된다. 10년 와신상담이라는 말로 정권교체가 최대의 목표인 범 보수 세력은 그렇다면 왜 아직도 지지율 50%가 넘는 후보를 두고 이처럼 안정되지
지난 15일 치열한 경선전 끝에 신당은 정동영 후보를 당의 대통령 후보로 정식 지명했다. 그러나 정치 분석가들은 정 후보가 사분오열된 여권을 하나로 묶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그동안의 신당 경선이 지난 8월 치러진 한나라당의 경선과 비교해도 매우 험악한 파열음을 내며 경선판이 깨지지 않을까 우려할 정도로 계파 간 심각한 분열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후보는 후보로 지명되지마자 스스로 몸을 낮추며 경쟁자들을 예우하고 그동안 각을 세웠던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사과하는 등 여권통합작업에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 그 결과 경쟁자였던 손학규 이해찬 두 후보로부터 선대위원장직을 승낙 받으며 적극적인 협조를 끌어냈고 신당의 잠재적 대주주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으로부터도 확실한 지지를 약속 받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정 후보가 진짜 정치인이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즉 경선에서 승리한 대통령 후보임에도 약속시간이 30분 이상 늦은 패자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만나면서 몸을 낮추고, 손 전 지사의 “차가 막혀서 늦었다”는 변명을 웃으며 받아넘기면서 손 전 지사가 스스로 멋쩍게 만들므로 그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것만 봐도 그의 정치적 기질을
대통령 선거가 국민 직선으로 치러진 지난 1987년부터 4차례의 대통령 선거는 매번 아주 특별한 이슈를 남기며 우리 정치사에 귀중한 역사자료로 남아 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얻어 낸 민주헌법에 따라 그해 12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양김분열이라는 이슈를 남기며 끝났다. 이 선거에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는 36%대의 지지를 받아 8,282,738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이는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가 얻은 6,337,581표, 그리고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가 얻은 6,113,375표를 합한 수치와는 비교되지 않은 득표율로서 야권의 분열에 의한 어부지리 때문에 30%대의 국민지지로 대통령직에 오른 전무후무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이 선거는 이처럼 저조한 득표율로 당선자를 냈어도 1위와 2위의 표차는 200만 표 가까운 상당한 차이를 냈다. 그리고 1992년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이 된 민자당의 대선후보로 나섰던 김영삼 후보는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에게 다시 200만 표 가까운 표차를 벌리며 승리했다. 물론 이 선거에서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국민당을 스스로 창당, 후보로 등록하여 대선전에 뛰어든 돌발변수가 있었으나 3당 합당으로 세를 불린 민자당의 김영
여권신당 경선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 같다. 이대로 14일 원샷경선을 치러 후보가 결정된다해도 현재 3파전으로 치러지는 후보계열 어느쪽도 혼쾌하게 승복할 것 같지 않으며, 또 후보로 당선된 측도 경쟁후보 측을 우군으로 갖고 대선을 치를 수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 8월 19일 끝난 한나라당 경선이 이명박과 박근혜의 극한 대결을 통해 가까스로 이명박으로 한나라당 후보가 결정되기는 했으나 경선이 끝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선대위 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어도 이는 신당 사정과 비교하면 그나마 양반이다. 신당 경선은 말 그대로 혈투를 넘어 완벽하게 상대를 죽여야만 되는 치킨게임 양상을 띠고 있으므로 이제 승자나 패자나 양쪽 다 같은 편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 있어서 더 그렇다. 이런 와중에 신당은 8일 오후 대구컨벤션센터에서 예정된 경선후보 합동연설회를 예정대로 강행하기로 했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이 연설회에 손학규, 이해찬 후보 측은 "공정경선을 위한 환경 조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불참 입장을 고수, 이날 연설회에는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정동영 후보 혼자만 참석하게 될지 아니면 연설회 자체가 진행되지 않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한나라당은 사무총장, 원내대표, 정책위원장, 후보비서실장, 대변인 등 주요당직을 완벽한 이명박 사람들로 채워넣었다.그리고 각시도당 위원장을 선출했는데 이 또한 주요 포스트, 즉 서울, 경기, 부산, 경북 등 당협위원장이 많은 곳은 거의 모두 이명박계 의원들이 장악했다. 이 후 마지막으로 한나라당은 당의 핵심 싱크탱크인 여의도 연구소 소장과 사무처 직원들의 인사이동을 단행했다.그런데 이 같은 인사가 끝난 뒤 당은 매우 뒤숭숭하다. 물론 이 후보의 "강재섭 대표의 인사에서 토씨하나 고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지금 뒤숭숭한 분위기는 그냥 갑작스런 보직이동에 따른 어수선함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러나 사무처 주요 당직에 이 후보 핵심 측근의 사람들이 대거 포진되었고 친박계 사무처 요원들은 모두다 한직으로 물러났다는 보도들도 줄을 잇고 있는 실정에서는 좀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즉 이 같은 보도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서 당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는 것은 곧 이번의 사무처 인사로 한나라당의 이명박 당 만들기 초기 작업은 마무리 된 것 같아 보인다는 것이다.그런데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여겨 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AIG에 특혜를 준 것으로 비리의혹을 받고 있는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건물 공사장이 붕괴사고를 일으켜 차량 5대가 추락하고 공사 인부가 매몰되는 등 인명피해까지 났으며 이 사고 여파로 상수도관이 파열, 이 일대 정전 사고로 이어졌다. 사고가 난 공사현장, 멀쩡하던 도로가 갑자기 무너져 내리며 도로 한 복판에 엄청난 웅덩이가 생겼다. 하지만 현재 추가 붕괴 위험이 있어 구조팀도 접근이 어려운 상태다. 19일 오후 8시 52분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24-1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공사현장과 맞닿은 2차선 도로에서 길이 50m 폭 20m 규모의 도로가 30여m 깊이로 내려앉았다. 이 대형침하 사고로 도로에 주차되어 있던 승용차와 화물차 등 차량 5대가 매몰 되었으며 이 도로가 내려 앉은 관계로 이 도로를 지나던 대형 상수도관이 파열하면서 인근 도로는 물바다가 됐다. 또 지하에 매설된 전선도 이 사고로 파손되면서 사고현장 주변 건물 48개 동이 모두 정전됐다. 사고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갑자기 주변 건물이 정전되더니 굉음과 함께 도로 전체가 공사현장 쪽으로 기울어 그대로 땅밑으로 꺼졌고 주차된 차들도 함께 구덩이 아래
신정아와 변양균의 부적절한 관게가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는 뉴스가 터져 나온 어제(11일)부터 한국의 유력 언론들은 정말 난리가 났다. 오후시간부터 포털사이트 언론판에 메인으로 걸리기 시작하더니 오늘(12일)은 아예 대한민국의 현재가 신정아의 나라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거의 모든 언론들이 시시콜콜 도배를 하고 있다. 아래는 우리나라 대표적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신정아 관련 기사목록 일부이다. 아예 네이버는 신정아 학력위조 후폭풍이라는 타이틀로 메인에 걸린 기사를 클릭하면 이 같은 목록을 보여준다. [신정아 학력위조 후폭풍] "변 실장 정도가 배후면 수없이 많아" 미국에 도피 중인 신정아씨가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표가 수리되기 전날인 9일 오전 평소 친분이 있던 본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통화는 자연스럽게... 중앙일보 | 2007-09-12 檢 “신정아 100만원 신권가득 발언 사실무근” 헤럴드 생생뉴스 | 2007-09-12 “신씨, 맨해튼 한인 예술가 집에 머무는 듯” 조선일보 | 2007-09-12 `신정아 사건' 한갑수 전 이사장 소환조사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씨 비호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 서부지검은 12일 한갑수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