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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자식들과 전두환의 자식들

그들은 어차피 서민과 다르다

노무현 부산대통령이 민간외교활동 격려를 빙자해 휴일에 골프를 즐기고 왔다는 소식이다. 더는 서민을 흉내낼 까닭이 없다고, 이젠 본색을 드러내도 괜찮다고 판단한 눈치다. 드디어 노부통령이 본래의 위치로 되돌아오는 느낌이다. 본디 그는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드넓은 바다에서 값비싼 요트를 몰던 부유한 조세전문 변호사였다. PK정권 창출의 일념으로 온갖 개인적 욕망을 억제하느라 그간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앞으로는 맘껏 라운딩도 하고 실컷 요트도 타시기 바란다. 이왕이면 천둥벼락 내리치는 날 골라서. 굳이 말리지 않을 테니.

나를 비롯해 수많은 비판자들은 노무현 부산대통령더러 서민들의 절박한 민생현장을 둘러보라고 촉구했었다. 그때마다 노부통령은 쇼는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쇼를 못한 게 아니다. 서민들이 드나드는 장소들이 불편하고 싫었던 탓이다. 강금원씨가 공기 맑고 조용한 필드에서 골프치자고 제의하니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당장 쪼르르 달려가지 않는가? 건강도 다지고, 정치자금 마련도 의논하니 완벽한 일타양피랄 수밖에. 노짱각하 나이스 샷!

미국에서 발생한 총기사건의 본질은 두 가지 층위로 파악된다. 첫 번째는 총기규제와 관련된 맥락이다. 이는 당연히 미국적 시각에서의 본질이다. 두 번째는 계급적 차원의 의미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할 본질은 나중 것이다. 승희 조 사건은 한국사회가 마침내 명실상부한 계급사회로 진입했음을 난무하는 총성과 함께 요란히 선포했기 때문이다.

이미 명쾌한 정의를 내린 바가 있다. 미국이 좋아 미국으로 간 사람들은 미국사람이라고. 미국이 좋아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들의 아들딸들이 미국사람이 됨은 필연적 이치다. 미국이 좋아서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녀를 미국인으로 만들고자 미국으로 떠난다. 그러므로 승희 조 사건은 같은 미국인들끼리 서로 죽고 죽인 미국 내부의 사건이다. 단지 가해자가 한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애도와 조의를 표한다면 너무나 편협하고 배타적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사는 어떤 사람들에게 해당사건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그 어떤 사람들이 한국사회에서 소위 사회지도층이나 오피니언 리더로 군림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돈깨나 만지고 힘깨나 쓴다는 작자들 중에서 자식새끼 미국으로 보내지 않은 인물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제주도에 여행갈 기대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일반서민들과 달리, 수시로 미국을 들락날락할 그들에게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은 바다 건너 먼 나라 이야기가 결코 아닌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강남에 집을 소유하고 있느냐 여부가 서민과 특권층을 가르는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협상이 타결되면서 여기에 또 다른 준거가 추가되었다. 자식에게 아메리카의 세례를 받게 해줄 수 있는 경제력의 유무다. 한미FTA의 정책적 타당성을 놓고 토론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시행해보기 전에는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 찬반 양측이 허황된 낙관론이나 근거 박약한 공포의 시나리오를 퍼뜨리는 데 열중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검증되었다. FTA를 밀어붙이는 노무현 부산대통령의 태도와 정신상태는 애초부터 글러먹었다는 사실이다.

무릇 훌륭한 통치자란 자기가 펴는 시책의 일차적 수혜자가 스스로의 일가친척이 되는 모양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한다. 박정희가 시행한 중학교 무시험입학과 고교평준화 정책은 틀림없이 바람직한 결단이며 방향이었다. 한데 공부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박지만의 상급학교 진학시기와 맞물려 시행되는 바람에 두고두고 뒷말을 남겼다. 노무현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대비해 우선적으로 착수한 사전정지작업은 친아들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 처사였다. 하필이면 그것도 우리나라 재벌 2~3세들이 득시글거린다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으로.

노무현 부산대통령이 평범한 국민들의 안녕과 복지를 진실로 염려하는 집권자였다면 아들내미를 시골로 낙향시키는 게 도리였다. 김해 봉하마을로. 농사지으라고. 금쪽같은 내 새끼일망정 나라와 국민을 위해 농민으로 살라고 명령해야 했다. 희망도 경쟁력도 없는 농촌에 왜 날 내려보냈냐고 푸념할 아들을 “자신감을 가지라!”며 다그쳐야 옳았다.

그렇게 양심적으로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행동하면 노무현이 아니지. 노건호는 한미FTA에 올인한 아버지의 깊은 뜻을 받들어 미국으로 들어갔다. 도미한 대통령의 아들녀석이 한국계 청년의 총기난사로 흥분한 현지인들에게 멱살이라도 잡히면 어찌하겠나. 이태식 주미대사가 체통이고 염치고 집어던진 채 양키들한테 싹싹 빈 일에는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나는 대통령 자식들이 국정에 개입하고 뇌물을 수수하는 불행한 사태를 예방하려면 몽땅 해외로 내보내야 이롭다고 한때 믿은 적이 있다. 허나 요즘 들어 생각이 바뀌었다. 지역구 국회의원 공천권 서너 자리 행사하고 부정한 비자금 몇 억쯤 꿀꺽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쪽으로. 보시라. 자식새끼 미국으로 들어가자마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애틋하고 눈물나는 부정(夫情)을. 더군다나 미국으로 건너간 대통령의 자식새끼는 철학이나 신학을 공부하러 간 게 아니다. 미국 투기자본의 첨병이 되어 양극화 심화에 앞장설 미국산 경영학 석사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비단 아들내외 뿐이랴? 딸과 사위자식도 미국에 갔다.

약소국 지배자의 아들이 강대국에 장기간 체류하는 현상을 우리는 보통 볼모로 잡혀간다고 표현한다. 노건호는 미국조정에 자발적으로 입조한 격이다. 아들을 볼모로 파견한 아버지가 미국에 저자세를 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현직 대통령의 자제는 임기 도중에는 외국에 나가지 않는 불문율을 이참에 확립하자.

친자식은 물론 사위와 며느리마저 미국에 박아두고 미국과의 FTA를 마무리한 노무현의 자식농사는 맹자 엄마를 능가하는 교육열이거니와, 종래 부동산에 국한됐던 알박기 대상을 살아있는 인간으로까지 확대한 위대한 역발상의 개가다. 역시 대단한 노무현이다. 오늘도 노무현이 또 이겼다. DJ를 겨냥해 독설과 악담을 퍼붓던 영남친노세력이 김홍업의 보궐선거 출마에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조치로 아들녀석에게 미제 MBA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배려하는 노무현의 독특한 자식사랑이 낳은 에피소드다. 한마디로 남들 욕할 처지가 아닌 셈이다.

자식새끼들 미국으로 조기유학 떠나보낸 비율을 조사하면 강남부자 못지 않은 고소득집단이 노빠들이다. 버지니아공대에서 벌어진 총격사건에 전전긍긍하는 대표적 부류가 개혁진영을 자청하는 노무현 추종자들이라니. 강금실 전법무장관 말대로 코미디야 코미디! 강금실 또한 송광수 전검찰총장의 ‘10분의 3’ 발언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지만.

“전두환은 노무현은 미래다”라는 주장이 유행한다. 조금은 틀린 지적이다. 합천대통령 전두환은 부산대통령 노무현의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전두환이나 노무현이나 출세한 다음 자식새끼들 미국물 먹이기에 혈안이 된 모습은 도찐개찐이기에. 그나마 전재용은 순수하고 낭만적인 면모라도 있지. 박상아와 죽도록 사랑한다고 하잖아. 노건호가 미국으로 사랑의 도피행각을 감행한 건 아니다. 그는 아버지가 조성한 미국화의 흐름에 재빨리 편승하려는 영악하고 약삭빠른 부잣집 외동아들에 지나지 않는다.

노무현의 일거수일투족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온 보수언론은 대통령이 결혼한 자식들 전부를 미국으로 빼돌린 것엔 모르쇠로 일관한다. 지당한 노릇이다. 내로라 하는 기자들과 신문사주들 가운데 자식녀석 미국으로 출국시키지 않은 인간들 또한 드물 터이므로. 사대주의의 본산 한나라당도 마찬가지 입장이고. 노무현-수구매체-한나라당이 자식들 미국유학으로 대동단결인 형국이다. 아비들은 한국서 싸울지언정 새끼들은 미국에서 친구고 동창생이다.

노무현이 한미FTA 덕분에 막대한 이득을 볼 확률이 매우 높은 절친한 섬유재벌과 어울려 부부동반으로 골프채를 휘둘렀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는 그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조차 지킬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인간에 관해 이토록 격심한 환멸을 경험하기도 참으로 어렵다. 환멸의 대가로 마음에 담아온 소회를 기탄 없이 개진할 자유를 얻었다. 노무현이 희대의 연극배우였음이 밝혀진 마당이다. 노건호가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야 군대갈 나이에 이르렀다면 이회창 아들들처럼 처신하지 않았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전두환의 새끼들이나 노무현의 새끼들이나 어차피 우리 같은 서민의 자식새끼들과는 평생 다른 세계에서 살아갈 귀족의 씨앗이다. 그들에게 우리는 전두환 손녀딸년이 제 미니홈피에 휘갈긴 대로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제3세계 원주민들에 불과한 존재다. 먼 훗날 전두환 손녀와 노무현 손녀가 분위기 우아한 고급호텔에서 열리는 호화로운 칵테일 파티에서 세련된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리네 서민층 피붙이들은 구두를 닦을 마음씨 넉넉한 신사와 초콜릿 부스러기를 던져줄 인심 좋은 숙녀를 찾아 차가운 밤거리를 한없이 헤매야 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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