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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여자'를 주부들이 보는 이유

최악의 드라마를 보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시청률 20% 넘는 드라마가 없다

SBS 월화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가 연일 고공 시청률 행진을 벌이고 있다. 첫 회를 11%로 시작한 <내 남자의 여자>는 불과 6회 만에 시청률 20%를 넘어섰고, 경쟁작인 MBC <히트>와 KBS <헬로 애기씨>의 시청률을 동반 하락시키는 효과까지 낳고 있다. KBS 일일연속극 <하늘만큼 땅만큼>,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 KBS 주말연속극 <행복한 여자>를 제외하면 요일대-시간대를 통틀어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미니시리즈이자, 유일하게 시청률 20%를 넘는 드라마가 바로 <내 남자의 여자>다.

당초 일각에선 김수현 원작 소설을 드라마화했던 <눈꽃>이 10% 초반의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또 다시 해묵은 불륜 소재를 재탕한다는 이유로 <내 남자의 여자>가 고현정이 출연하는 <히트>에 밀려 고전할 것이란 예측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내 남자의 여자> 첫 회가 방영되고 난 후, 이 같은 예측은 완벽히 빗나갔다. 오히려 시청률 추이를 보면 <히트>를 보는 시청자들까지 <내 남자의 여자>로 이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김수현 작가의 파워는 막강했다.

요즘 드라마는 90년대처럼 스타 한두 명 나온다고 시청률이 30%를 넘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20대와 30대들은 더 이상 드라마를 브라운관을 통해 보지 않는다. 다음 날 인터넷 다시보기를 통해 얼마든지 볼 수 있고,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보고 싶을 때 드라마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 더블 캐스팅에서 쿼드러플 캐스팅으로 스타 비중이 오히려 높아졌음에도 요즘 트렌디 드라마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인터넷 때문이다.

매거진T의 강명석 기획위원을 비롯한 일부 대중문화평론가들은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더라도, 나름 폐인문화를 만드는 드라마를 이른바 웰 메이드로 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이른바 오타쿠 문화를 웰 메이드로 섣불리 단정 짓진 않는다. 대중의 외면을 받았으면 일단 망한 이유부터 점검 하는 것이 상식적인 논리이지, 한 자릿수 시청률이 훈장이 될 순 없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시청률 30% 이상 고공행진을 벌이기 위한 필요조건은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장금>, <주몽>처럼 중장년 남성층이 공감할 수 있는 역사 포맷을 활용한 이야기를 만들거나, <부모님 전상서>처럼 온 가족이 공감할 수 있을만한 주말연속극을 만들어야 한다. <장밋빛 인생>, <하늘이시여>처럼 주부 시청자들의 마음을 공감시킬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 또한, 시청률을 보장하는 지름길이다. <내 남자의 여자>는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닥본사’란 말처럼, 닥치고 본방을 사수하는 시청자인 주부 시청자를 철저히 공략한 것이 <내 남자의 여자>의 가장 큰 인기요인이다.

주부들이 최악의 드라마를 보는 이유

작년 많은 여성 시민단체들은 SBS <하늘이시여>를 최악의 드라마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재탕삼탕된 소재를 가지고 억지스러운 상황을 전개하며 작위적인 연출을 했다는 것이다. 극본을 쓴 임성한 작가에게 쏟아지는 공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인어아가씨>, <왕꽃 선녀님>때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인어아가씨>나 <왕꽃 선녀님>이나 <하늘이시여>에 이르기까지 모두 시청률이 40%를 넘어설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는데 있다. 요즘 한창 작가 대접을 받고 있는 인정옥, 이경희는 엄두도 내지 못할 스코어다.

<내 남자의 여자> 역시 최악의 드라마가 갖춰야할 조건은 모두 가지고 있다. 남편의 외도, 불륜, 삼각관계만큼 우리나라 드라마 역사상 가장 많이 써먹은 소재가 또 어디 있을 것이며, 부인의 친구와 불륜을 벌이는 상황보다 작위적인 연출을 더 이상 찾기도 힘들다. 더구나 김수현 작가의 캐스팅 스타일상 새로운 연기자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또 김희애고, 배종옥이고, 김상중이다. 여기에 송재호, 하유미까지 더해져 완벽한 김수현표 캐스팅의 진용을 갖추고 있다. 한 마디로, 새로울 것이라곤 하나 없는 식상한 드라마가 <내 남자의 여자>란 것이다.

그렇다면 시청자들은 대체 왜 <내 남자의 여자>를 시청하는 것일까. 우선 불륜 소재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최악의 드라마라고 칭하는 일부 시민단체들부터 반성할 필요성이 있다. 요즘 드라마 시청률 30%~40%을 기록한다는 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와 거의 맞먹는 보편적인 인기코드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수치다. 주부들을 비롯해 대다수 여성 시청자들이 그만큼 불륜이란 소재를 선정적이면서도, 보편성 있게 인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람피고 외도하는 저질 3류 불륜 드라마를 본다고 꾸짖기 이전에 그런 분위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우선 인정해야 한다.

대리만족이라는 키워드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내 남자의 여자>에 나오는 배종옥이 일반 주부들의 평범한 모습이었다면, 김희애는 한 번쯤 일탈을 꿈꿀 법한 모델로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배종옥의 고민에 함께 분노하면서도, 김희애와 같은 자유스러운 사랑에 빠지고 싶은 착각을 주부들로 하여금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대리만족의 요소 또한 훌륭히 갖추고 있다. 감칠맛 나는 대사와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대사 역시 드라마의 재미이자, 가부장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차마 할 수 없었던 언어적인 욕구를 일시적으로 해소시켜준다.

여기에 그동안 김수현 드라마가 표방해 온 본격 성인 취향의 드라마라는 익숙한 분위기가 더해진다. 비록 김수현 작가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동안 늘 재밌게 드라마들을 보면서, 출연진만 봐도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할 정도로 김수현 작가는 주부들에게 익숙한 분위기를 선사했다. 송재호가 왠지 친정아버지 같고, 하유미가 의리의 친구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론 파격적이고, 도발적이지만 이처럼 김수현은 주부들의 가장 친한 친구인 셈이다.

무조건 최악의 드라마라고 시청자들을 몰아세울 것이 아니다. 그런 드라마가 왜 시청률 탑을 달리는지, 그럼 주부들에게 어떤 다른 드라마 장르를 친절히 소개시켜 줄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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