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차관보의 중국방문 일정은 지난 18일 그가 워싱턴을 출발할 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29일 정례브리핑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중국 방문 일정을 공개한 데 대해 6자회담에 정통한 정부 당국자는 매우 신중한 태도와 함께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자금 송금문제가 뭔가 해결되는 극적인 전기를 마련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힐 차관보가 중국을 찾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희망섞인 기대감을 의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당국자는 "아직까지 BDA 문제가 해결됐다는 소식을 미측으로부터 전해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힐 차관보가 중국을 찾더라도 BDA 해결을 내외에 공표하고 6자회담의 재개를 전격 발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힐 차관보가 30일부터 베이징을 방문해 중.미관계와 6자회담 등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BDA 문제는 한때 미국의 대형 은행인 와코비아 은행이 북한자금의 중계기지로 나서는 방법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좀처럼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힐 차관보와 그의 상관인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가급적 BDA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고 5월내에 6자회담 프로세스를 복원시키려 노력해왔으나 워낙 금융실무적인 문제와 법적.절차적 과정이 복잡해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지난 18일 워싱턴을 떠난 힐 차관보가 영국 런던에 이어 태국(22일), 베트남(23일), 필리핀(25일), 인도네시아를 차례로 방문하는 등 장기 해외출장 일정을 잡은 것도 이 기간에 BDA 해결을 기다리면서 상황을 극적으로 타개해보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부 당국자는 "BDA 문제의 조기해결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고, 일단 해결의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빠른 시일내 해결되지 않는 복잡함이 있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따라서 힐 차관보는 중국에서 협상파트너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 등과 만나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중국이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해줄 것을 당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BDA의 소유주 교체와 다른 금융기관으로의 인수.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를 전달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BDA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 당국 외에도 재무부 실무진의 협조도 얻어야 하고 이미 미국이 내린 BDA 제재를 우회하는 묘수도 찾아야 하는 또 다른 과제도 산적한 상황이다.
따라서 힐 차관보는 일단 BDA 문제가 언제가 되든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해결될 것을 전제로 중국측과 차후 2.13합의 이행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이행하는 방안을 집중 협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외교소식통은 "BDA 문제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만큼 BDA 문제가 해결될 경우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할 대책이 중요하다"면서 "이 경우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협조가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BDA 문제 해결전이라도 북한을 방문해 영변 핵시설 가동중단과 폐쇄를 위한 사전 협의를 할 수 있도록 중국측이 북한을 설득하는 문제도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한편, 힐 차관보는 중국 방문후 한국이나 일본을 방문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DA 문제 해결 이후 2.13합의 이행을 위한 협의 측면에서 보면 일본보다는 한국 방문 개연성이 높다는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서울=연합뉴스) lwt@yna.co.kr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