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 1 호인 숭례문이 한 방화범의 소행에 의해 불탔다. 토지보상금과 2년 전 창경궁 문정전 방화사건에 대한 재판판결에 불만을 품은 70대 노인이 용의자로 밝혀졌다. ‘오호 통재라!’ 많은 시민이 애도의 념(念)을 표하면서 쓴 말이다. 610년을 지켜온 겨레의 숨결이 한사람의 광기에 잿더미로 변한 참화를 보고 고은 등 많은 시인조차 이런 상투적인 표현을 쓴 까닭은 그만큼 충격이 컸기 때문일거다. 어디 그 뿐이랴? 전 국민의 가슴이 벌건 인두에 지져진 듯, 통증을 느끼다 전소 소식에 마침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약간의 손상이 있었으나 숭례문의 현판만은 건져냈고 1층 건물과 기둥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건재하다고 한다. 복원할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을 보는 듯 하다.
풍수지리설
삼봉 정도전의 삶을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저서 불씨잡변 뿐 만아니라 풍수지리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조선이 도읍으로 정한 한양은 나무(木)의 기운이 흐르는 땅이다. 그래서 나무에 상극인 쇠(金)와 불(火)의 기운이 한양의 기운을 침범할까 극히 경계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꿈을 꾸었다는 몽금척(夢金尺) 설화를 안고 있는 마이산(馬耳山)이 바로 금(金)의 기운을 가진 산이다. 개성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 마이산에 있는 금당사(金堂寺)라는 사찰 안에 연못을 팠다. 금(金)의 기운을 잡아서 한양이 가진 목(木)의 기운을 보호하려함이다. 또한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은 불(火)을 의미하는 관악산의 기운이 한양의 기(氣)를 억누를 것을 염려하여 사대문의 현판 중 유일하게 숭례문에서만은 세로로 했다고 전한다. 예(禮)가 5행에 의하면 불(火)을 의미하므로 관악산의 치솟아 오르는 불꽃에 대항하기 위한 나름의 방편으로 생각된다. 숭례문의 가운데 글자 예(禮)는 유교의 4가지 덕목인 인의예지(仁義禮智)에서 세번째 글자다. 남쪽에 있는 국보 1호인 숭례문의 예(禮) 역시 네 방위인 동서남북에서 세번째 순서에 있다. 첫째 방위인 동쪽엔 인(仁)에 착안해서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엔 의(義)를 표방하는 돈의문(敦義門), 남과 북엔 숭례문(崇禮門)과 소지문(炤智門) 이런 식이다. 유교적 이상국가를 설계하고자 했던 정도전으로서는 한갓 미신으로 생각했을 법한 풍수설로 민심을 얻고 개국의 기반을 다지는데 잘 활용한 대목이라 할 만하다.
흉흉한 민심
숭례문의 2층 누각이 불타자 민심이 들썩거린다.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서 숭례문의 현판만 세워서 만든 것이 아니라, 광화문 앞에는 물을 길어 온다는 해태상을 모시고 작은 연못을 만들었는데, 개발로 연못은 수년 전에 사라졌고, 해태상도 이미 치운 상태라 한다. 그래서 숭례문 현판 하나만으로는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에는 그 기(氣)가 밀려서 발생한 일이라고 왈가왈부하는 둥 민심이 흉흉하다. 하필이면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의 수장인 이명박 당선인이 조선의 건국시조인 이성계와 같은 이(李)씨이기에 그런 점도 있을 것 같다. 과거 선조들의 지혜를 배워 민심을 수습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할 필요가 있다.
낙산사의 교훈
2005년 낙산사가 산불에 소각되었을 때, 필자는 한국 사회의 위기 관리능력이 너무나 한심함을 깨달았다. 불길이 낙산사에 옮겨 붙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경과되었는데 어떻게 그것하나 제대로 막지 못하고, ‘우지끈’ 비명을 지르며 화마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은 누구나 가졌을 것이다. 심지어는 충분히 옮겨서 보존 가능했을 법한 동종(銅鐘, 보물 479호)마저도 녹아버리고 말았다. 낙산사에 놀러갔다 전각 안 마룻바닥 아래로 계곡의 물이 보이던 모습을 보며 참 신기하게 생각했었는데, 그게 산불로 사라졌다니 가슴이 답답했다. 그런 참사에서도 특별한 교훈을 얻지 못했나 보다. 이번 숭례문 방화에 대한 책임추궁에 대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답변은 더욱 기가 막힌다. 낙산사 사태 이후, 기껏 만든 화재에 의한 문화재 소실방지 매뉴얼은 산불 같은 자연재해만을 염두에 둔 것이지 방화범에 의한 화재는 대비책조차 마련하지 않았다니 말이다.
문화재관리시스템
국민의 입장으로서는 정말 관련 공무원들에게 나가는 세금이 너무나 아깝다는 소리가 나올 법 하다. 이런 참화가 재발하기 않기 위해서는 등급체계를 따로 마련해서 국가 문화재로서의 상징성이 높은 건물에는 경비원을 상설화할 필요가 있다. 진화 과정에서 전통목조건물의 지붕구조를 몰랐던 것도 참화가 커진 원인이 되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화재 같은 경우에는 사전 사후대책으로 나누어 좀 더 정밀하게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은 법이지만 한국 문화재 관리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관련 전문가들의 도움도 절실히 필요하다.
문화경쟁시대
수 백 년 이상 된 건물이나 그림은 그 자체가 사료적 가치 뿐만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여 영감을 줄 수 있는 문화콘텐츠이며 훌륭한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건축물은 문화의 종합세트라고 한다. 서양의 석조건물에 비해서 우리 역사에는 목조건물양식이 유난히 많았다. 하지만 전란에 불타고 남은 건 불과 몇 개 안된다. 문화재청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보 407개 중에 목조건축물은 23개라고 한다. 화재나 자연재해, 기타 자연적인 쇄락에 대비해서 복원할 때 쓸 수 있는 그 실사자료를 충분히 만들어 놓아야 한다. 이들을 길이길이 보존하고 훼손된 문화재는 제대로 복원하는 건 후손으로서의 지당한 의무다 / 김휘영(문화평론가)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