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의 아름다움
필자가 어릴 때는 기와집이 주변에 흔한 건축물이어서 경주 불국사의 목조 기와로 된 사찰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필자가 일본의 나라현에 가서 법륭사등 고대 사찰을 보고나서 경주 불국사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 되었다. 일본의 나라에서 필자가 느낀 것은 타임머신을 타고 신라나 백제에 온 느낌이었다. 6세기 ~ 7세기에 건축된 일본의 사찰은 대부분 백제나 신라의 기술자 들이 중심이 되어서 건립한 것이고 이러한 일본 사찰은 경주 불국사(528년)의 사찰을 참고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자랑하는 법륭사는 601년∼607년에 걸쳐서 건축되었고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법륭사는 백제인의 예술혼이 남아 있다. 법륭사의 유명한 금당벽화는 고구려인 담징이 그린 벽화다. 일본은 아스카 시대 이후에 나라,헤이안을 거쳐서 막부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이후부터의 건축물은 그 형태가 웅장하면서 날이 선 날카로움이 보이는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 반면에 우리의 목조 건축물은 곡선과 부드러움이 있는 아름다움을 계속하여 계승 발전하여 왔다. 숭례문을 보면 처마의 끝 선이 초승달의 모양을 하고 있다. 지붕의 모서리 부분이 올라가 있고 지붕의 처마 중앙부분이 내려가 있는 모양이 초승달의 자태와 같다. 이 선은 수십 년 전의 아낙들이 눈썹을 밀고 초승달 모양으로 다시 눈썹을 그리던 그 곡선과 같다. 그리고 우리의 고유 복장인 한복도 곡선미가 강조되는 아름다움이 있다. 소매의 모양이 곡선이며 저고리의 끝부분도 곡선으로 처리를 한다. 한복에서 남자의 바지 또한 곡선을 따르고 있다. 날이 서 있지 아니하고 온화한 분위기가 우리의 민족성과 같으며 이러한 정신이 건축이나 의복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숭례문에서 처마의 선을 보면 일제시대의 사진과 방화로 소실되기 전의 사진에서 곡선이 주는 느낌이 다르다. 이는 필자만의 느낌이고 사진의 각도에 따라서 다르게 보일 수도 있으므로 숭례문의 보수과정에서 처마의 곡선이 변형되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변형되었다고 주장을 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 그러나 다른 문화재가 복원되는 과정에서 처마선의 곡선이 거의 직선으로 변경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에 숭례문을 복원 하는 과정에서는 과거의 사진을 참조하여서 가능한 이조시대의 원형에 가깝게 복원을 하여주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숭례문의 복원은?
불타지 않은 현재의 숭례문 잔재를 매우 소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숭례문의 복원과정 또한 소중한 자료로 남겨두어야 한다. 만약 숭례문의 복원자료를 후세에 남긴다고 가정하면 숭례문 복원에 사용되는 나무를 전국의 각지에서 모우는 것이 좋다. 나무 하나라도 어디에서 누구의 기증으로 사용되었다고 기록하는 것이 좋다. 뉴스에 의하면 전주에 산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모 씨는 "정읍시에 약 50-60년생 적송을 보유하고 있다"며 "몇 그루 되지는 않지만 서까래 하나라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러한 내용들을 모아서 전국적인 나무들로 숭례문을 복원하는 것이 좋다. 또한 17일 문화재청 등에 따르면 숭례문 화재 이후 복구 작업에 일손을 돕거나 부재를 제공하고 싶다는 시민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숭레문 복원이 정치적으로 이해타산을 따지는 몇몇 사람들에 의하여 복원의 방향이 쉽게 결정되지 않을 것 같다. 후세에서 복원의 과정에 대한 기록을 볼 때 정부가 주도하여 복원을 한 것보다는 시민의 참여로 복원된 것이 훨씬 가치가 있을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의 기록과 성금 기부자의 기록에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있다면 더욱 가치 있는 복원이 될 것이다. 강찬석 문화유산연대회의 대표는 "숭례문 화재는 가슴이 아프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이번 일로 높아진 사람들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장기적으로 문화재 의식 제고로 이어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찬석 문화유산연대회의 대표의 주장처럼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문화재 의식 제고를 위하여서는 많은 시민의 참여가 좋고 또한 시민의 참여가 숭례문 복원과정의 기록과 함께 책으로 기록되고 판매된다면 후세에 많은 사람들이 숭례문을 기억하고 사랑 할 것이다. 많은 분들이 숭례문 복원성금을 보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숭례문 복원이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복잡한 사항이 되어서 성금을 보내는 것조차 눈치를 보아야 하는 현실이 슬퍼다. 많은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복원하는 숭례문 복원이 정말 아름다운 복원이 될 것이다
우리의 정신문화가 남아 있는가?
유교가 우리의 생활에서 사라진 것은 오래전 이야기이다. 그리고 우리의 아름다움이 서구적으로 변화된 것도 또한 오래전이다.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의 미인에 대한 개념은 현재의 미인과는 다르다. 우선 여자의 콧대가 날이 서면 좋지 아니하다. 콧대에 날이 선 여인은 ‘팔자가 세다’고 말한다. 그 시대는 미인을 달덩이 같은 여자로 표현한다. 얼굴이 둥글고 복스러운 형태가 좋다는 것이다. 현재의 미인은 콧대가 반듯하게 서고 얼굴이 갸름하고 윤곽이 선명한 여인을 좋아한다. 이러한 미적 변화는 물론 서구적인 미의 개념이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어온 영향이다. 서구의 미에 대한 그 기원은 그리스로 올라간다. 그리스의 미의 개념은 규칙과 선의 조화 등이 있다. TV의 화면이 3:4로 선정된 것이 좋은 비율을 추구한 서구적인 미의 한 예이다. 서구에 대한 향수가 우리의 음악을 촌스러운 것으로 만들고 있다. 트로트를 부르는 가수가 긍지를 갖지 못하고 우리의 민요가 외면당하고 있다. 진중권은 디워를 비판하면서 “아리랑 코드인데 아리랑 들어가고 This is a Korean legend라든지 이런 것들이 여기서만 머물렀으면 촌스럽다는 애기를 들었을 겁니다.”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독일 프랑스 그리고 일본은 높게 평가하면서 우리의 문화, 우리의 예술은 낮게 평가하고 있다. “숭례문이 불우이웃인가”라는 그의 말이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숭례문이 불에 소실되었다고 슬퍼하면서 우리의 문화가 소실되는 것을 슬퍼하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숭례문을 아름답게 복원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우리의 문화를 아끼고 전통을 살리자. 사라져가는 한복을 사랑하고 우리의 민요를 사랑하자. 외국인조차 아름답다고 느끼는 아리랑의 선율을 사랑하자. 만약 우리의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숭례문 같은 문화재만 남아있다면 외적인 것 하드웨어 적인 것만 남은 것이고 정신적인 것 소프트웨어적인 것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