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언론단체, KBS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 시나리오가 언론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에서 검찰수사로 정사장을 기소하면, 이를 계기로 KBS 이사회에서 정사장 해임 결의안을 내고, 이를 대통령이 수용한다는 내용이다. 최근 “KBS 사장 해임권은 대통령이 갖고 있다”는 신재민 문체부 차관과, “KBS 사장은 국정운영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박재완 수석의 발언이 이러한 시나리오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좌파언론단체는 “국민과 함께 정연주 사장을 지켜내겠다”며 일전을 벼르고 있다.
지금 현재 상황은 어찌보면 솔로몬의 아이와도 같다. 정부와 여당이 정연주 사장을 해임시키려는 태도는 법적으로 무리수이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이를 포기한다 해도, 카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여당은 KBS에 어떤 조치를 내릴 수단을 갖고 있다. 지금 KBS의 경영 업무가 사실 상 마비된 것도 이 때문이다. KBS가 절단이 나든 말든, 자신의 권력만 지켜내겠다는 것이다.
정권 입장에서 KBS가 반정부 성향을 보인다는 것을 용납하기 어렵다. 이제껏 그 어떤 정부에서도 없던 일이다. 정연주 사장이 임명된 노무현 정권 초기 시절 역시, 전임 박권상 사장이 스스로 물러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연주 사장 측과 좌파언론단체가 주장하듯, KBS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명분은 타당한가.
이 역시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을 하려면 정연주 사장의 KBS가 노무현 정권 당시 최소 90% 이상의 국민들로부터 객관성에 대한 신뢰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정연주 사장의 KBS는 김대중 정권 시절 박권상 사장의 KBS 때보다 더욱 더 편향적이었다. 정연주 사장은 방송독립을 명분으로 내세울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다보니, 양 측의 싸움은 그야말로 권력자들 간의 밥그릇 투쟁의 형국으로 흐르고 있다.
필자는 일찌감치, 정연주 사장과 이를 옹호하는 좌파언론단체들에게, KBS의 지위에 대한 법적 대안을 제시하라 요구했다. 사장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KBS의 불명확한 지위 탓에, 그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KBS는 전리품이 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원인을 제거하자는 뜻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권이 요구하기 전에 먼저 정연주 사장이 스스로 사퇴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정연주 사장도, 이를 옹호하는 좌파언론단체도 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한나라당 측이 일찌감치 국가기간방송법을 발의하며, 현재까지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놓은 것과 비교하면, 이들의 안일함이 놀라울 정도이다. 이들은 KBS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정연주 사장을 통해 틀어쥐고 있는 KBS의 밥그릇에만 온통 신경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설사 정연주 사장의 임기인 내년 10월까지 정사장을 지켜낸다고 치자. 대체 그 다음은 어떡할 건가. 그 다음에 정권에서 누구를 갖다 내려 꽂든 법적으로 어떻게 해볼 자신이 있는가. 이들이 1년 뒤의 KBS의 미래조차 머리 속에 넣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해 보인다. 한나라당 수준의 대안조차 용납하지 않고, 오직 지금 현재의 KBS 체제를 유지하며, 온갖 정치투쟁력을 동원하여, 현재의 기득권만 틀어쥐면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언론인들은 방송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삼아야
필자는 정부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차피 정부와 여당은 KBS 1TV, 아리랑 TV, EBS 등을 합쳐 100% 시청료로만 운영하는 국가기간방송으로 통폐합하는 것을 대안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기존 KBS의 정치꾼 PD와 기자들이 강력 반발할 수밖에 없다. 국가기간방송법으로 재편했을 때, KBS는 첨예한 정치현안에서 발을 빼고, 과학진흥, 미래산업 육성, 역사탐구 등등 전 국민이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내용으로 프로그램을 채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치 영국의 BBC처럼 말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 현안마다 뛰어들고 있는 KBS 내의 정치꾼들의 입지가 사라진다.
지금 당장 정부와 여당에서 국가기간방송법을 밀어붙일 때, 정연주 사장을 비롯한 정치꾼들이 이를 두고만 보고 있겠는가. KBS의 전체 프로그램을 동원하여 이를 저지하려 방송을 악용할 것이고, 이에 MBC까지 가세할 것이다. KBS와 MBC 그리고 미디어다음과 같은 어용포털들이 전력으로 이 법안을 막으려 달려들 때, 아무리 180석의 거대여당이라 해도 법안 통과를 자신할 수 없다. 아마도 이 때문에 일단 정연주 사장을 해임시키고, 신임사장을 임명한 뒤, 법제화를 통해 KBS 개혁을 하려는 게 정부의 방침 아닐까 한다.
필자는 보다 다른 차원에서 KBS 문제를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의 방송의 문제는 너무나 오랫동안 KBS를 비롯한 방송3사가 독점권력을 누려왔고, 심지어 케이블시장조차 YTN에 특혜를 주며, 이 시장마저 독점현상이 가속화되었다는데 원인이 있다.
지상파 민영채널이 7개나 있는 일본의 경우 정권이 바뀌었다고 NHK를 장악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만약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서처럼 케이블 시장에서 보도채널을 YTN에 독점으로 주지 않았더라면, 굳이 무리하게 구본홍이라는 정권 측근을 사장에 임명할 필요가 있었을까. 노무현 정권 내내 방송을 권력화시켜놓았으니, 이를 놓고 권력끼리 밥그릇 투쟁을 벌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서 방송시장에서의 새로운 창업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지금 정연주 사장을 지키자고 선동하는 좌파언론단체들은, 방송시장에서 새로운 민영방송사 설립도 거부하고, 케이블시장에서 보도채널 설립도 거부하고, 외국방송사의 진입도 거부한다. 오로지 지금 이 체제를 고착화시키며 권력을 누리겠다는 이대로족이나 다름없다. 이런 이대로족들이 내세우는 방송독립이라는 건, 쉽게 말해 “우리가 마음껏 해먹을 테니, 너희들은 끼지 마라”이 이상의 논리가 없다.
다시 71년생 이하의 언론인들에게 권한다. 언론인의 탈을 썼을 뿐 언론시장의 활성화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들 밥그릇이나 챙기겠다는 386세대 정치꾼들의 선동에 힘을 실어주지마라. 이들은 어차피 방송권력에 기생하다, 때가 되면 진짜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우리의 목표는 오직 언론시장의 활성화 뿐이다. 특히 지금도 언론인의 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는 수많은 지망생들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떤 경우든 방송과 신문시장에서 더 많은 언론이 창업되어야, 세대의 이익에 부합한다.
정연주 사장이 버티든, 정부가 측근을 앉히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할 사안은, KBS의 독점 권력을 해소하고, 더 많은 방송사의 창업을 유도하는 정책이다. 정부든 좌파언론단체든 이러한 장기적 목표 아래 정연주 사장 문제를 해결한다면 얼마든지 지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껏 노무현 정권이 했던 것과 똑같이 기존 권력을 유지한 채, 밥그릇 투쟁만 벌인다면, 이는 단지 그들끼리의 싸움일 뿐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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