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진 신임 이사들이 임명장을 수여받았다. 예상했던 대로 MBC노조를 비롯한 진보좌파 진영에서는 인신공격에 가까운 공격적 언어를 퍼부었다. 이들의 성명서와 규탄 발언들을 보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은 대체 “싸움의 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은 이들 내부에서 전혀 없는 것일까”라는 것이다.
우선 이들은 ‘언론악법 원천무효와 언론장악 저지를 위한 100일 행동’이라는 기구를 만들었다. 대선 때는 대선미디어행동, 총선 때는 총선 미디어행동, 지금도 무슨 ‘미디어행동’이 있는데 또 다시 ‘100일행동’을 만든 것이다. 기구를 만드는 사람도, 참여하는 사람도, 펴는 정책도, 내는 성명서도 모두 똑같은데, 갖가지 행동은 왜 계속 만들어내는지 모르겠다. 그냥 기존에 있는 미디어행동 가지고 하면 안 되는 건가.
“이명박 정권은 MBC를 직접 장악하고, 더 나아가 MBC를 사영화하기 위해 방문진 이사에 자신의 졸개들을 점령군으로 내리꽂는 만행을 저질렀다”
노무현 정권의 졸개들이 방문진에 임명될 때 뭐하고 있었는가
급조된 100일행동이 낸 성명서이다. 이 성명서를 낸 목적은 신임 방문진 이사들에 인간적인 모욕을 주면서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려는데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번 냉정하게 따져보자. 이런 유형의 성명서를 언제 한두 번 냈는가. 이런 정도의 성명서를 내서, 이 때문에 위축될 여권 성향의 방문진 이사가 한 명이라도 있겠는가, 아니면 이를 보고 분개할 국민들이 한 명이라도 있겠는가.
더 나아가, 애초에 방문진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그리고 지난 노무현 정권 때 임명된 2006년도 방문진 인사 때도,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더 심각한 수준의 노무현의 졸개들이 임명되었다. 그 졸개들과 함께 방문진에 임명된 이수호 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이 기자회견 현장에 나타나 함께 하는데도, 이에 대해서 진보좌파 언론진영 내부에서 단 한 명도 문제제기하지 않았다는게 놀라운 일이다.
이근행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은 “방문진과 목숨을 건 싸움을 해나가겠다”, “관변단체를 전전하며 학자로서 부끄러운 이력만 가득한 김우룡 교수와 동지· 후배들의 삶을 매도해 온 최홍재씨가 방문진에 들어온다면 MBC는 반공, 반김정일, 이명박을 위한 방송을 해야 할 것”이라며 “이들을 역사의 간신배로 규정하고, 이들을 몰아내는 싸움에 사력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김우룡 이사장의 경우 MBC PD출신이며, MBC 민영화론을 구체적으로까지 제시한 학자이다. 현재로서는 MBC에 대해 가장 깊은 연구를 해온 학자이다. 김우룡 이사장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저런 식으로 한 명의 학자를 공격해대는 게 과연 그들이 원하는 바를 얻는데 도움이 되냐는 것이다. 김우룡 이사장에 갖다 댄 기준을 노무현 정권 때, 모조리 한자리씩 차지했던 민언련 출신 학자들에 갖다 대보라. 단 한 명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지 성찰해보라. 참고로 나는 김우룡 이사장에 대해서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비판을 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홍재 인신공격으로 MBC를 지켜낼 수 있는가
‘후배들의 삶을 매도해온 최홍재’라는 표현은 참으로 답답할 지경이다. 본인이 젊은 시절을 길을 잘못 들었다 판단하여, 방향을 바꾼 것이 대체 왜 후배들의 삶을 매도했다는 것인가. 그리고 언제 최홍재 이사가 반공, 반김정일, 이명박을 위한 방송을 하자고 주장했다는 말인가. 최홍재 이사의 경우 다른 이사들이 반정부 보도를 자제하자고 주장하면, 이를 비판해서라도 필요한 정부 비판 보도를 하자고 주장할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점에 대해서는 미디어위에 참여했던 진보좌파 인사들도 인정할 것이다. 즉 최홍재 이사에 대해서는 MBC노조에서도 몰상식한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는 점을 뻔히 알면서 왜 공개적으로는 저런 인신공격을 퍼부어대냐는 것이다.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은 “뉴라이트의 생각과 역할을 볼 때 그들은 우익이 아니라 새로운 어둠, 즉 ‘뉴나이트’라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어둠이 길고 깊을지 모르지만 어둠은 새벽과 아침을 이길 수 없다. 반드시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조승수 의원은 노무현 정권 당시 방문진에 임명된 사람들은 레프트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는 말인가. 국민의 기관인 방문진에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졸개들이 임명되는 것은 괜찮고, 자신들과 사상이 다른 사람이 임명되면 그게 어둠이란 말인가. 어떻게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지, 그것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정연우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그동안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사례는 숱하게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방송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를 외치지 않도록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른 단체는 몰라도 민언련은 언론계 인사에서 가급적 입을 다물어주는 게 좋다. 노무현 정권 당시 민언련 출신들의 한자리 욕심은 현 정부 하에서의 뉴라이트 단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지금 진보좌파 언론진영이 이명박 정부와 싸움에서 승기를 잡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노무현 때 민언련이 저지른 인사 만행 때문이다. 언론노조 측도 진짜 언론싸움 하고 싶으면 민언련 출신들의 입부터 막아버리는 게 나을 것이다.
내가 답답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어떻게 진보좌파 진영의 투쟁 방식은 2009년이 되어도 단 하나도 개선되지 못하냐는 것이다. 이들의 방식은 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첫째, 사안만 터지면, 똑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100일행동’과 같은 이상한 기구를 만든다.
둘째, 자기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했던 짓은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방향과 맞지 않는 인물이 임명되면 무조건 정권의 졸개들이라 밀어붙인다.
셋째, 인물 하나하나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여, 이를 극단적으로 과장하여 인신공격을 펼친다.
넷째, 안 봐도 뻔하지만 방문진 첫 회의 때 떼거리지어 몰려와서 정상적인 회의가 불가능할 정도로 규탄 집회를 열 것이다.
다섯째, 논리고 뭐고 없이, 인신공격을 위해 매체들을 총동원하여 여론증폭에 나설 것이다.
여섯째, 이렇게 국민을 현혹시켜 얻은 여론을 정치투쟁화하여, 재보선이나 지자체 선거에 이용, 차기 권력 창출로서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386세대의 낡은 투쟁방식 고치지 않으면, 조만간 모두 청산당할 것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너무나 뻔한 전술과 전략을 가지고 당신들이 지키고 싶은 가치를 지켜낼 수 있겠냐는 것이다. 지금 현 정부나, 이른바 우파단체와 매체의 힘이 미약해서 그렇지, 제대로 된 원칙을 갖고 있는 세력이 등장하면, 이런 수준의 전략을 구사하는 세력은 한 번에 다 초토화시킬 수도 있다.
이번 방문진의 인사는 방통위로서는 거의 최선을 다해서 가장 정확한 인사를 했다. 그렇다면 싸움방식도 한 단계를 업그레이드를 해보라. 신임 방문진 이사들과, MBC노조, 시민사회 등이 함께 하여, 과연 MBC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끝장토론이라도 열어보라. 그런 공론장의 논의 과정을 통해 방문진 이사들에게 여론을 전달하고, 혹시라도 그들이 오판할 가능성을 차단하여, 함께 개혁에 나서보라는 것이다.
방문진 이사들은 MBC에 뼈를 묻을 사람들이 아니다. 만약 노조의 방해로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여차하면 MBC 경영에 손을 떼버리는 수도 있다. 그럼 무한경쟁시대로 가는 방송시장에서 MBC 하나만 경영의 중심 축을 잃어버리고, 시장에서 도태되며, 당신들이 그렇게 아끼겠다는 MBC 조합원들의 생존권마저 위험해진다. 그럼 다른 방법을 찾을 시간도 없이 MBC 주식 팔아서 생존을 이어가는, 즉 민영화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무슨 행동류의 성명서나 규탄대회는 듣는 국민도 지겹고, 말하는 당신들도 지겨울 때가 되지 않았는지, 집에서 고민을 좀 해보라는 것이다. 이도 저도 안 되면, 내가 누누이 이야기하는 대로, 이미 시대 변화에 따라오지 못하는 386세력들 다 2선으로 물러나고 젊은 인사들을 중용하라. 장담하는데, 이런 자체 개혁을 하지 않았을 때, 분명히 신 세력이 등장하여, 낡은 세력들을 모조리 청산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거라는 믿음이 점점 더 굳어지고 있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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