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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기 종목의 비현실적 영화, '국가대표'

‘알리, ’신데렐라맨‘ 등 사실성을 강조하는 미국과 크게 달라

* 미디어워치 2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1997년, 다니엘데이루이스 주연의 ‘복서’란 영화가 개봉되었다. 전설적인 아일랜드의 세계 페더급 챔피언 베리 맥기간을 소재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의 이름은 베리 맥기간이 아니었다. ‘국가대표’나 ‘우리생애최고의순간’처럼 소재만 차용했을 뿐이지, 전체 영화 내용은 대부분 창작이었기 때문이다.

<복서>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극심한 아일랜드 내의 종교 갈등을 복싱이라는 스포츠로 풀어보려는 한 복서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베리 맥기간의 일생이라는 홍보와는 달리, 처음부터 주인공이 감옥에서 13년 만에 출소하는 등, 맥기간의 실제 삶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맥기간이라는 실명을 차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맥기간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맥기간과는 전혀 다른 주인공의 삶에 일단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너무 과장되었고 너무 영웅화시켰다. 물론 골수 권투팬을 제외하곤 맥기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 영화는 아일랜드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 흥행에서 실패했다.

‘알리’와 'We were the king'

스포츠의 역사적 진실을 강조하면, 다큐멘터리를 예로 든다. 이에 대해 가장 좋은 소재가 바로 극영화 ‘알리’와 다큐멘터리 'We were the king'이다. 'We were the king'은 알리와 조지포먼의 킨샤샤의 대결을 다큐멘터리로 구성한 것이다. 이는 훗날 아카데미 영화제 다큐멘터리상을 받기도 했다.
2002년 개봉된 마이클 만 감독의 ‘알리’는 다큐멘터리라 불려도 될 정도로, 대사 하나, 동작 하나 모두를 완벽히 재현했다. 극영화 ‘알리’와 다큐멘터리 'We were the king'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다큐멘터리는 영상적 자료가 한정되어있다. 아무리 감독이 더 많은 표현을 하고 싶어도, 찍어놓은 영상 자료가 없으면, 방법이 없다. 최근 KBS 다큐에서 조작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영상 자료의 문제이다. 네셔널지오그래피의 다큐 감독들이 장면 하나 찍기 위해 1년 이상 기다리는 것과 달리 한국의 다큐는 제작 기간이 너무 짧다. 제작 기간이 짧다보니 영상 자료가 부족하고 다큐 감독은 장면 조작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게 된다. 다큐는 감독의 표현력과 상상력이 크게 제한받는 방식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실제라는 또 다른 표현효과 때문에, 감독들은 묵묵히 이러한 제한을 받아들이며,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물론 그러다보니 마이클무어 같은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면서도 극적 구성을 하는 새로운 형식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

‘알리’는 대사와 몸동작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카메라 각도와 거리 등을 조절하여, 다큐멘터리에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조프레이저 전에서 최종회에 레프트훅 일발에 다운을 당한 알리의 모습은 권투팬들은 수없이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 레프트 훅을 맞게 되는 0.5초 동안의 알리의 표정과 알리의 내면 심리는 다큐멘터리로 표현될 수 없다. <알리>에서는 느린 화면으로 알리의 심리를 “놈이 온다”라는 한 문장으로 처리했다. 극영화가 다큐멘터리를 능가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알리’의 미덕은 실제 장면과 대사를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감독의 상상력으로 자유롭게 장면들을 재구성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문법이기도 하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의 경우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실제 타이타닉의 외부는 물론 내부까지 완벽하게 재현하였다. 심지어 시계 하나와, 당시 타이타닉 내부에서 공연된 음악까지도 고증했다. 미국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어차피 영화인데 마음대로 만들면 어때”라는 말은 통용되지 않는다.

2005년 론하워드 감독의 ‘신데렐라맨’ 역시 이러한 문법을 따라갔다. ‘신데렐라맨’은 헤비급 복싱 세계 챔피언 짐 브래독의 일대기를 소재로 하였다. 짐 브래독 역은 러셀크로가 맡았는데, 러셀크로는 짐 브래독의 외모를 닮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짐브래독과 막스베어와의 권투 장면은 역시 실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다. 영화의 장면과 실제 중계화면을 비교해보면 동작 하나 하나 다르지 않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짐브래독이 직접 “이 영화의 주인공의 삶은 짐 브래독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멘트가 첨가되어있다. 또한 ‘신데렐라맨’의 DVD판에는 이런 자신감 때문에 실제 경기장면을 수록하였다.

미국은 메이저스포츠, 한국은 마이너스포츠

스포츠의 천국인 미국의 스포츠영화는 사실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이유는 미국 내의 수많은 스포츠마니아들 때문이다. 또한 한국과 달리 다큐멘터리 시장이 크게 발달한 측면도 있다. 이미 스포츠마니아들이 스포츠스타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로 보고 있다. 알리나 짐 브래독의 영화가 자신들이 본 다큐멘터리와 크게 다르다면 영화의 성공 가능성은 극히 낮아진다.

바로 이 때문에 미국의 스포츠영화들은 대부분 메이저 스포츠의 유명인을 소재로 한다. 메이저리그의 스타들인 베이브루드와 루게릭, 로저매리스 등등도 모두 영화화되었다. 미국 영화이기도 하지만 자메이카의 봅슬레이팀을 소재로한 영화 ‘쿨러닝’은 사실성에 크게 제약받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역시 메이저와 마이너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스포츠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축구나 야구, 그리고 농구와 같은 인기 스포츠의 경우 대부분 허구를 소재로 한다. ‘외인구단’, ‘마지막승부’ 등이 그렇다. ‘우생순’, ‘국가대표’는 핸드볼과 스키점프라는 비인기 종목을 소재로 했다. 이들 영화의 특징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면서도, 장면 하나하나가 대부분 허구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비인기 종목을 소재로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가 극히 드문 반면 한국은 비인기 종목 소재의 영화가 대박을 터뜨렸다. 영화 흥행을 염두에 두다 보니, 훈련 장면과 경기 장면 등이 매우 과장되거나 허술했다. 김득구를 소재로 한 곽경택 감독의 ‘챔피언’ 정도가 그나마 현실에 다가갔던 것을 감안하면, ‘우생순’과 ‘국가대표’의 현실 과장은 인기 종목이나 비인기 종목이냐의 차이가 컸다. 스포츠는 아니지만 70년대 언더그라운드 록그룹 데블스를 소재로 한 영화 ‘고고70’ 역시 사실 왜곡으로 비판받았던 측면을 고려하면, 이런 분석에 더 힘이 실린다.

즉,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본격적인 스포츠 영화가 제작되지 않은 것이다. 만약 한국에서 차범근이나, 김기수, 이에리사 등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제작방식이 도입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한국 스포츠영화는 시작도 못한 셈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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