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워치 23호 기사입니다.
영화 ‘국가대표’를 관통하는 상징적 코드는 태극기이다.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스키점프 단체전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뒤, 이들은 태극기를 걸어놓고 애국가를 부른다. ‘국가대표’라는 제목과 이 장면만 본다면 이 영화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추구한다 오해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바로 그 이전 장면을 보면 전혀 다르다. 마지막 스키점프를 앞두고, 그들은 이렇게 외친다. “네가 뛰지 않으면 나는 군대 가야한다”
‘국가대표’의 또 다른 상징적 코드는 군면제이다. 병무청에서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설전을 벌이는 첫 장면으로 시작된다. 또한 감독이 이들을 모아놓고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되자고 설득하는 장면에서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군대가 면제된다”는 것이었다. 첫 장면과 중간 장면,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모두 군대 면제를 위한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국가주의와는 전혀 부합될 수 없다. 이 영화에 대한 평론 역시 국가주의를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이 군면제를 위해 뛰면서 태극기 앞에서 울면서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이야말로 논리적 충돌로 보인다.
‘국가대표’, ‘우생순’은 스포츠영화 아니다
‘국가대표’는 비인기 종목의 소외된 청년들의 이야기이다. 입양되었다 어머니를 찾아 한국에 온 청년, 스키대회에서 입상하지만 약물복용으로 자격이 박탈된 나이트클럽 웨이터, 할머니와 동생의 생계를 책임진 청년가장 등등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국가를 위해서 헌신을 해야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청년들이다. 국가대표가 되어야하는 이유도 군면제와 어머니를 찾는 등, 모두 개인적인 사유들이다.
그 점에서 역시 비인기종목의 소외받은 여성들을 소재로 한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과 판박이형 영화이다. ‘우생순’의 주인공은 주벽에 빠진 남편 탓에 생계를 위해 다시 핸드볼을 집어든 주부였다. ‘우생순’의 주인공들이 국가를 대표하여 헌신해야할 의무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우생순’은 스포츠영화라기 보다는 오히려 페미니즘 영화로 분류하는 게 더 적당하다. 시종일관 소외된 여성의 삶을 조명했다.
이런 배경 탓에 ‘국가대표’도 ‘우생순’도 스포츠영화의 기본 문법을 따라가지 않고 있다. 스포츠영화는 한 인간이 초인적인 노력을 하여 외적 혹은 내적 성취를 이룬다는 기본 스토리를 갖추고 있다. 만약 금메달이나 세계챔피언 같은 외적 성취를 이루게 된다면, 확장 지향적인 영화가 되는 것이고, 실패했지만 내적 성취를 이룬다면 성찰 지향적인 영화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스포츠영화는 대부분 외적 성취에 실패하는 테마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이다.
늘 패배자만 기록하는 한국의 스포츠영화
곽경택 감독의 ‘챔피언’의 소재였던 권투선수 김득구는 경기 도중 사망하고, ‘우생순’의 핸드볼 팀은 결승전에서 아깝게 패하고, ‘국가대표’의 스키점프 선수들은 최하위를 기록한다. 야구영화 ‘감사용’도 삼미슈퍼스타즈의 패전 처리 투수를 소재로 했고, 당시 최고의 투수였던 박철순과의 대결에서 아깝게 패한다. 실화가 아니더라도 야구만화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공포의외인구단’ 역시 비극적 결말이다. 미국의 스포츠영화들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신데렐라맨’, ‘알리’, ‘베이브’ 등등이 최고의 승리를 쟁취하고, 허구인 ‘록키’류의 영화 역시 성취에 바탕을 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난다.
영화의 완성도로 볼 때 성취냐 성찰이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인공 개개인들의 진지한 삶에 대한 태도이다. ‘신데렐라맨’의 짐브래독은 부상으로 경기에 더 나서지 못하자 부두 노동자로 일하고, 권투협회에 구걸을 하는 등 삶을 살아가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한다. 그러다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 것을 놓치지 않고 챔피언에 오른다. ‘알리’의 경우 공포의 강펀치를 휘두르는 조지포먼과의 대결을 앞두고 극도의 공포감에 시달리지만, 초인적인 용기로 이를 이겨낸다. ‘신데렐라맨’과 ‘알리’에서 주인공들은 진지한 삶의 태도를 유지한다.
비극적 삶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메이저리그의 공포의 강타자로 유명했던 루게릭을 소재로 한 영화 ‘야구왕 루게릭’에서 루게릭은 38살에 불치의 병에 걸려 요절한다. 그 병은 훗날 ‘루게릭병’으로 불린다. 루게릭은 선수시절은 물론 투병생활에 이르기까지 진지한 삶에 대한 태도를 유지한다.
가장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패싸움 벌이는 국가대표?
‘국가대표’와 ‘우생순’의 장면 하나하나는 이와 맥을 달리 하다. ‘국가대표’의 주인공들은 부단히 훈련을 하기는 하지만, 장면 곳곳에서 진지하지 못한 태도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장면이 올림픽 출전권을 앞둔 독일 월드컵 대회에서 술집에서 미국 선수들과 패싸움을 벌이는 장면이다. 스키점프에 관해서는 그다지 강국도 아닌 미국과 한국 선수들이 싸운다는 장면도 문제이지만, 스포츠논리로 볼 때, 그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술집에서 싸움을 벌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이들은 최소 1년 이상 선수자격정지 수준의 징계를 받게 된다. 일국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것은 ‘우생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우생순’에서 남자 감독과 여성 선수가 사적인 감정에 얽혀 팀을 혼란스럽게 하는 설정은 진지하지 못한 태도를 넘어 비현실적이다. 특히 이러한 사적인 감정 탓에 비오는 날 감독과 선수가 달리기 시합을 하는 장면은 어찌보면 국가대표 감독과 선수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국가대표의 감독은 선수의 몸을 자신의 몸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 국가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 선수와 예정에 없던 달리기 시합을 하는 국가대표 감독이란 있을 수 없다.
‘국가대표’와 ‘우생순’에서 선수들의 진지하지 못한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배치될 수 있는 이유는 이른바 이 영화의 주 고객층인 현실의 청년들이 진지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유추해도 될까? 대학생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든 MBC 시트콤 ‘논스톱’의 제작진들은 “우리가 현실의 대학생을 왜곡한 바 없고, 우리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을 뿐”이라 항변했다.
실제로 ‘국가대표’를 관람하는 청년들은 장면 하나하나에 울고 웃고 함께 했다. 군대를 면제받기 위해 국가대표가 된다는 설정에도 어떠한 거부감도 없다. 그 결과 ‘국가대표’는 벌써 300만명이라는 관객을 돌파했으며, 800만명을 돌파한 ‘해운대’를 앞지를 기세이다.
사회과학적 기준으로 ‘국가대표’를 분석한다면 이는 명백히 좌파 지향적 영화이다. 국가를 부정하고, 국가대표를 군대 면제용 정도로 인식하며, 아무런 스토리의 근거없이 미국과 한국의 갈등을 조장하고, 끊임없이 계급갈등을 조장(가정부 아주머니를 부유층 젊은 여성이 학대하는 장면의 반복)한다.
물론 영화 제작자나 감독이 정치적 의도로 이런 설정을 짜놓았을 가능성이 없다. 단지 제작진에서는 젊은층의 감성에 걸맞게, 그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럼 사실 상 더 심각한 수준이다. 아무런 정치적 의도없이 단지 상업성을 위해, 반국가, 군면제, 반미, 계급갈등의 요소가 투입되고 있다면, 현실의 청년들의 감성이 바로 이렇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미디어발전국민연합의 강길모 대표는 “기본적으로 애국우파세력이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화적 침투에 대해 속수무책”, “아마도 우파세력들 중에서도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우려했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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