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KBS 이병순 사장 체제가 들어선 뒤 편파 논란에 휘말렸던 KBS '미디어포커스‘가 ’미디어비평‘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내용 역시 일방적 편파에서 최소한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감시를 받아야할 공영방송에서 왜 굳이 타 매체를 비평하고자 하느냐는 원초적인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특정 매체가 남의 매체를 비평하려면 명확한 매체관을 확립해야 한다. 과연 이병순 사장 체제의 KBS가 다양화되고 있는 매체시장에 대해 명확한 관을 확립하고 있냐는 것이다.
발행된 지 6개월이 지난 주간 미디어워치는 시작부터 확고한 매체관을 기준으로 매체 비평에 임한다. 매체관이 명확하지 않으면 비평의 잣대가 흔들리면서, 사안에 따라 오락가락하던지 혹은 맥없는 양시양비론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정연주 사장의 ‘미디어포커스’와 이병순 사장의 ‘미디어비평’ 모두 문제
KBS '미디어비평‘은 2009년 8월 21일 방영분 중 ‘막말 독설 여과없는 언론’ 편에서 김민선의 피소 건과 노대통령 자살 건에 대해 유명인사들의 막말을 언론이 여과없이 보도했다 비판했다. 주제는 언론이 표현 하나에 신경쓰지 말고 사안의 본질을 짚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디어비평’이 소개한 유명인사의 글 역시 모두 지엽적인 표현에 집중되었다. 막말 표현을 보도하지 말자면서 자신들이 보도에 앞장 셈이다.
같은 날 방영분 ‘인터넷 포털 책임 어디까지?’ 편에서는 최근 언론중재법에 포함된 포털에 대해 경향신문의 엄호동 기자와 민변의 김학웅 변호사 등 포털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측의 의견만을 일방적 보도하기도 했다. 포털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연구없이 신문 기사만 스크랩하여 보도한 결과이다.
정연주 사장 체제의 ‘미디어포커스’는 반 신문, 친 포털, 방송권력 지지라는 정확한 매체관이 있었다. ‘미디어포커스’에 대한 비판은 주로 이러한 그릇된 매체관에 “대체 전 국민이 내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에서 어떤 절차에 따라 이러한 매체관을 확립했느냐”는 본질적인 문제제기였다. 그 점에 대해서라면 현재의 ‘미디어비평’ 역시 똑같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번 기회에 주간 미디어워치의 매체관을 공개적으로 알리고자 한다. 이병순 사장의 KBS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매체관을 공개적으로 밝힐 자신이 없다면 유명무실한 ‘미디어비평’을 포기하는 게 나은 선택일 것이다.
첫째, 미디어워치는 신문시장의 활성화를 제 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신문은 하루 전체의 사건을 아날로그식으로 검토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이다. 조선닷컴의 기사 전체를 보더라도 지면에 펼쳐져있는 조선일보를 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진보좌파 언론들이 마치 신문시장이 끝난 듯이 선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장 크게 경계하고 있다. 신문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저널리즘의 최전방을 전담하는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매체이다.
둘째, 전문 잡지 시장의 활성화도 주요 아젠더이다. 최근의 독자층은 점점 더 세분화되고 있다. 신문시장이 위축되는 이유도 전문성을 찾는 독자들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료신문과 잡지 시장이 위축되어도 아직까지 ‘바둑’, ‘낚시’, ‘국제’, ‘패션’, ‘음식’ 등의 전문잡지 시장은 여전히 살아있다. 물론 인터넷 포털의 무분별한 기사 유포로 인해 한국은 일본이나 유럽에 비해 전문 잡지 시장이 퇴보하고 있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전문잡지 시장이 붕괴되면 이러한 전문성을 종합한 일간 신문의 시장도 살아날 수 없다. 또한 전문 정보가 유통되어야 하는 인터넷 콘텐츠 시장도 영향을 받는다. 전문성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가 자유롭게 전문 잡지를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미디어워치의 목표이기도 하다. 또한 미디어워치 역시 ‘청년창업’과 ‘아시아 대중문화’ 등 기회가 되면 다양한 전문잡지 창간에 나설 예정이다.
셋째, 절대 권력 인터넷 포털에 대한 견제이다. 인터넷 포털은 문어발식 재벌형 기업이면서도 언론권력까지 획득한 인터넷 공룡이다.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한국 언론 전체가 출렁이기도 한다. 네이버가 뉴스캐스트 제도를 도입한 이후 언론사들은 네이버의 메인 화면을 이용 선정적 기사를 남발, 클릭수 전쟁에 돌입했다. 네이버의 정책 하나가 언론사 전체를 타락시켜버린 것이다.
이런 포털의 횡포와 권력남용에 대해 그간 진보좌파 언론 측은 오직 신문시장을 죽일 수 있다는 이유로 옹호해왔다. 미디어워치의 창간이 ‘포털 피해자모임’의 포털 피해 구제 활동 과정에서 기획되었다는 점에서 포털 권력 해소는 미디어워치의 사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넷째, KBS와 MBC 등 국민이 주인인 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다. KBS와 MBC는 특정 정치세력이 점유해서는 안 되는 방송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당시 두 개의 공영방송은 정치세력의 전리품이 되어버렸다. 이들은 기초적인 사실보도도 무시하며, 오직 자신들이 미는 정치세력의 재집권을 위해 공영방송의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견제와 비판은 미디어워치 독자들의 가장 절실한 요구이기도 하다.
다섯째, IPTV 등 뉴미디어 산업의 활성화이다. 신문과 잡지 등의 올드미디어의 독자층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뉴미디어 산업의 발전은 청년 기업가들과 콘텐츠 제작자들에 큰 기회를 주게 된다. 이들 뉴미디어 시장의 빠른 성장을 돕는데 미디어워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여섯째, 비대해진 대중연예산업 시장의 정상화이다. 대중연예산업은 60여개 이상이 코스닥에 등록되는 등 대형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질서는 전혀 바로잡히지 않고 있고, 권력화된 연예인들은 자신들의 인기를 위해 성찰없이 사회적 이슈에 개입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과신하며, 자신들의 발언과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도 다하지 않고 있다. 미디어워치는 연예시장 개혁입법을 적극 보도하며, 조속히 혼탁한 시장을 바로잡는데 주력할 것이다.
일곱째, 아시아 대중문화 네트워크 형성이다. 한류는 일방적이서는 지속될 수 없다. 한국 대중문화가 필리핀에 수출된다면 필리핀의 대중문화도 수입해야 쌍방향 한류가 지속될 수 있다. 지금껏 노무현 정권 등에서는 한류의 깃발을 들고 있는 연예기획사에 대한 일방적 지원만을 해왔다. 이제부터는 아시아 각 국의 대중문화를 수용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여덟째, 인터넷 청년기업가들에 대한 지원이다. 인터넷기업은 존재 자체로 미디어적 성격을 띄고 있다. 인터넷 청년기업가들의 활발한 활동이야말로 한국 미디어시장이 업그레이드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특히 인터넷 콘텐츠 업체의 저작권 보호는 미디어는 물론 전체 콘텐츠 시장 활성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정책이 되어야 한다.
아홉째, 해외 미디어시장에 대한 분석이다. 이미 인터넷으로 인해 일반인들도 미국이나 일본, 홍콩, 필리핀, 영국 등 해외미디어를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해외미디어가 한국에 진출하면 한국이 정신적 식민지가 된다는 낡은 선동은 현실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면밀히 해외미디어를 분석하여, 해외 미디어를 적극 수입하고, 그 기반을 바탕으로 한국 미디어가 해외로 진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병순 사장은 공개적으로 KBS 매체관을 밝힐 수 있어야
KBS의 이병순 사장과 ‘미디어비평’팀은 과연 이런 정도의 명확한 매체관을 밝힐 수 있는가? 이들이 지식이 없어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매체관을 밝혔을 때, 이에 동의하지 않는 전체 시청자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냐는 것이다. 정연주 사장의 ‘미디어비평’ 때는 설득을 포기하고 자신들만의 정치관을 밀어붙였다. 이병순 사장의 ‘미디어비평’은 대충 양 쪽 의견을 취합하여 핵심 이슈를 덮어놓고 간다. 이런 수준의 ‘미디어비평’을 왜 고집하고 있는지, 수신료 인상을 앞둔 KBS 측은 공개적으로 답변을 하던지, 아니면 깨끗이 접어야 한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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