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노조와 엄기영 사장 측이 형식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MBC 노조는 지난 24일 ‘조급증에 걸린 경영진과 어찌 미래를 논하겠는가?’라는 성명서를 발표 엄기영 사장을 겨냥 “정권의, 방문진의 비위를 맞춰가며 어떻게든 자리를 지켜보겠다는 행태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며 강력 경고했다. 형식적으로는 엄사장이 방문진 보고에서 “9월 말까지 단체협약 개정과 관련해 큰 원칙에서 조합과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밝힌 부분이 문제가 되고 있다. 노조 측은 자신들과 합의 없이 방문진에 일방적으로 보고하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면적 충돌은 큰 의미가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애초에 방문진의 교체 이후, 엄사장과 노조의 이해관계는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형식적 충돌 이후, 극적인 화해로 방문진의 개혁을 저지시키는데 상호 협조를 할 것은 충분히 예상된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의 방문진 업무보고 당시 모든 편성권한을 본부장이 아닌 국장에 일임하고, 노조가 인사권에 개입할 수 있는 조항 등등의 MBC 노사단체협약은 논란이 되고 있었다. 이에 방문진에서 엄사장의 해임을 유보하는 대신, 엄사장은 9월말까지 문제가 된 조항들을 노조와 협의하여 개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 당시 MBC노조의 입장은 “엄사장에 충분히 협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영방송 MBC 개혁을 노사 동수 참여 기구로 풀어내겠다?
실제로 9월 19일 MBC 엄기영 사장과 이근행 노조위원장은 “노사 양측이 뉴 이노베이션 플랜 추진협의를 시작해 ‘MBC 미래위원회’를 구성하는데 합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MBC 미래위원회는 사측에서 엄기영 사장, 김세영 부사장, 김종국 기획조정실장과 노조 측에서 이근행 위원장, 황성철 수석부위원장, 최장원 사무처장 등 노사 각 3인으로 구성됐다. MBC 노사는 미래위원회 산하에 미래전략분과와 경영혁신분과 등 두 개의 분과위원회를 두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MBC의 생존의 문제를 풀어내야할 미래위원회가 사측과 노조가 동수로 구성되었다는 것 자체가 바로 MBC 노영경영의 실체를 보여준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방문진의 최홍재 이사는 “노영 경영을 개혁하라고 만든 미래위원회에 노사 동수가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 부정적 시각을 내비쳤다. MBC노조가 미래위원회에 참여한 것은 내년 2월 정기 주총까지 엄기영 사장을 유임시킨 뒤, 지자체 때 반전을 꿰하겠다는 전략의 일환. 특히 MBC노조는 미래위원회를 장악하면서 MBC 개혁을 방문진이 사장을 해임시키기 어려운 선까지 저지하며,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 9월 24일 MBC노조의 엄기영 사장 비판은 큰 의미를 찾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엄사장과 MBC노조가 한배를 타고 방문진의 소나기를 함께 피해가야 하기 때문에 형식적인 충돌 때문에 판이 깨질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MBC노조는 물론 좌파언론단체에서 주로 노사단체 협약 개정을 이슈로 삼고 투쟁하고 있는 것 역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시각들이 많다. 주로 방송사 간부급 출신들로 구성된 방개혁의 한 인사는 “KBS든 MBC든 외부에서 볼 때나 좌파와 우파로 갈라져 있을 뿐 실상은 모두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한 패”, “그 점에서 노사단체 협약은 종이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 노조가 사측에 협조하여 개정에 합의해준 뒤 실질적으로 기득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 예상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오히려 MBC노조가 성명서에서 강하게 내세운 것은 진행자 교체와 ‘PD수첩’과 ‘100분토론’의 조작에 관한 진상조사 문제이다. MBC노조에서는 조작 프로그램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100분토론’의 손석희 등등 외부 고액출연료 게스트의 교체설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엄기영 사장은 “손석희의 교체는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즉 진행자 교체 건 역시도 MBC노조와 엄기영 사장이 주요 이슈를 돌리려는 하나의 눈속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노사단체 협약과 진행자 교체를 제외한 핵심이슈는 ‘PD수첩’과 ‘100분토론’ 진상조사 건이다. 이는 방문진에 MBC 경영진이 허위보고한 건까지 겹치면서,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MBC의 한 경영진은 방문진 이사를 만나 “다른 건 다 할 수 있지만 PD수첩 진상조사만큼은 봐달라”고 부탁까지 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건 역시 형식논란에 불과할 가능성도 높다. MBC노조에서 ‘PD수첩’과 ‘100분토론' 진상조사를 반대하는 이유는 경영진이 방문진의 요청으로 해당 프로그램에 직접 조사한다는 형식논리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것이지, 실제로 조사가 이루어져도 진상이 밝혀질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미 ‘PD수첩’ 건은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PD수첩’ 조작의 공범자들이나 다름없는 엄기영 사장과 간부들이 검찰수사보다 더 많은 것을 밝혀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100분토론’ 시청자의견 조작 역시 이미 담당 작가 한 명의 책임으로 축소시켜놓고, 담당 책임자 그 누구도 사실 상 징계를 하지 않고, 이러한 자체 조사 건을 방문진에 허위보고까지 한 바 있다. 조작과 은폐의 당사자들인 엄기영 사장과 그의 측근들이 이를 재조사한다 해서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100분토론’의 시청자의견 조작 건을 처음 밝혀낸 미디어발전국민연합 측은 “엄기영 사장에게 조사를 맡길 바에야 그냥 내버려두라”고 방문진에 비공식 요청을 하기도 했다. 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문진에서 MBC의 감사를 교체한 뒤, 방문진이 MBC 신임 감사와 함께 직접 조사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 방문진 이사들은 별다른 논리없이 거부하고, 모든 조사권을 엄기영 사장에 넘겨버렸다. 엄사장은 방문진 보고에서 아직까지 진상조사 계획조차 밝히지 않고 있기도 하다.
11월까지 엄사장 해임명분 만들지 못하면 방문진 이사들이 책임질 각오해야
현재까지는 별다른 상황이 없다면, 결국 엄기영 사장과 MBC노조는 노사단체 협약, 진행자 교체, 진상조사 건에서 합의를 하여 자체적으로 MBC의 방향을 설정하게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노사단체 협약은 방문진이 거부하지 않을 선에서 문구 몇 자만 개정하고, 손석희와 김미화 등은 그대로 유임하고, 진상조사는 수박 겉할기식으로 끝내면서 오히려 단단한 은폐논리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11월로 예상되는 엄기영 사장의 해임 여부 결정 역시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방문진이 요청한 것을 정면에서 거스르지는 않으면서 MBC노조와는 큰 틀의 연대를 하며 경영개혁안을 발표했을 때, 오히려 9월보다 해임의 명분이 더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방송현업 경력이 있는 MBC 출신들은 이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 퇴직 MBC 간부는 “방문진이 엄기영 사장 해임을 유보하면서 엄사장을 움직일 수 있는 칼을 모두 놓아버렸기 때문에 마땅히 손을 쓸 방법이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엄사장은 공정방송노조 등 자신의 비판세력을 경영합리화에 따른 명예퇴직으로 보복하고, MBC노조 역시 공정방송노조에 자신들과 성향이 맞는 인사들을 다수 가입시켜 아예 공정방송노조를 장악하는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라 진단하고 있다.
만약 방문진이 11월까지 해임의 명분을 만들지 못한다면, 엄사장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던지 국민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해임을 강행, 중도실용정책을 펴는 현 정부에 큰 부담이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디어발전국민연합의 강길모 대표는 “11월까지 방문진이 해임명분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결국 방문진 이사 개인들이 책임질 각오를 해야할 것”이라며 방문진의 분발을 촉구했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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