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둔 2007년 8월에 개봉되어 무려 8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화려한휴가’에 대한 정치적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영화 개봉할 당시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한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하반기 ‘화려한휴가’ 개봉을 통해 20대와 30대 표심을 움직이겠다”는 말들이 자주 돌았다. 그 당시 열린우리당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탈바꿈하였지만, 유력 후보들이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에 한참 밑돌아 대선 승리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화려한 휴가’가 개봉되자,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등 당시 여권 실세들이 대거 관람에 참여하였고, 전교조를 중심으로 학생 단체 관람이 줄을 이었다.
‘화려한 휴가’의 개봉에 대해 처음 논란이 되었던 점은 등급심사였다. ‘화려한 휴가’는 개봉 직전까지만 해도 15세 관람가였다. ‘화려한 휴가’는 대한민국 군인이 광주시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잔인한 영화라 평가받는다. 1000만명의 흥행을 기록한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가 15세 관람가였고, 이 당시에도 등급이 너무 낮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화려한 휴가’는 이들 영화보다도 훨씬 더 잔인한 장면이 속출하는 영화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잔인한 영화, 그러나 12세 관람가
그러나 ‘화려한 휴가’는 개봉 직전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오히려 더 낮은 12세 관람가로 확정된다. 이 당시 보도에서 등급연령을 하향받기 위해 재편집되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개봉된 ‘화려한 휴가’는 15세라 보기에도 무리한 장면들이 그대로 상영되었다. ‘화려한휴가’와 동시에 개봉된 아동용 괴수영화 ‘디워’의 등급이 바로 12세였다. ‘화려한휴가’ 12세 관람가 판정을 받으면서, 중학생들의 단체 관림이 가능해지면서 흥행성적에 큰 영향을 미쳤다.
‘화려한휴가’는 기획 단계부터 1000만명 정도의 흥행을 목표로 한 영화였다. CJ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100억원대의 제작비가 투입되었기 때문에 이 정도의 흥행이 되어야만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광주를 소재로 하는 영화가 1000만명을 목표로 기획된다는 것은 영화계 내에서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제작자가 당시 열린우리당의 실세였던 유인태 의원의 친동생인 유인택 기획시대 대표였기 때문에 의혹은 더욱 커졌다. 유인택 대표는 “우리의 목표는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광주를 보여주는 것”이라 설명했다. 유인택 대표는 이를 위해 멜로요소를 첨가하는 등 대중적 영화로 기획을 했다지만, 과도한 대중성 확보 탓에 결과적으로는 광주의 역사적 진실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화려한휴가’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점은 광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임에도, 주인공인 김상경, 안성기, 이요원 등만 호남사투리를 쓰지 않았다는 것. 제작자 유인택 대표와 감독 김지훈은 광주의 문제가 과거가 아닌 현재라고 이야기한다. 이 영화를 본 열린우리당의 실세들 역시 “광주는 끝나지 않았다”고 외쳤다.
이에 호남 네티즌들의 정치 사이트 남프라이즈에서는 “호남과 광주를 위해 만들었다는 영화에서조차 호남사투리를 쓰는 주인공이 없다는 점, 그간 얼마나 호남이 억압을 당했으면 이런 일이 있겠냐”며 ‘화려한 휴가’ 제작진을 비판했다.
대구 출신의 김지훈 감독은 전작 <목포는 항구다>에서조차, 사기꾼은 호남사투리를 쓰고, 주인공은 표준말을 쓰는 구도를 설정했다. 90년대 최고의 흥행 드라마 ‘모래시계’에서도 주인공인 박상원, 고현정, 최민수 등 광주 출신들이 모두 서울말을 쓰고, 사기꾼 역으로 나온 정상모만 호남사투리를 쓴 바 있다. 전북대 신방과의 강준만 교수는 이 때문에 제작자인 김종학과 송지나 작가의 호남차별의식을 비판하기도 했다.
“주인공이 호남 사투리 쓰면 타 지역 사람들에 배척받는다”고 주장한 제작진
유인택 대표와 김지훈 감독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중성 확보를 위해 “주인공들에게 호남사투리가 아닌 서울말을 쓰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즉 주인공이 호남사투리를 쓰면, 타지역 사람들이 거북스러워하니, 표준말로 바꿨다는 것이다. 80년대와 90년대 방송에서 악한 인물들이 주로 호남사투리를 썼다는 점에서, 이들이 이를 간과했다는 점은 ‘화려한휴가’를 제작한 순수한 동기마저 의심할 수밖에 없는 큰 사안이었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흥행대작인 ‘친구’와 ‘해운대’의 주인공들이 모두 부산사투리를 썼다는 점과 대비되는 일이다.
‘화려한휴가’는 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 이외에 역사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엇다. 광주항쟁은 당시 재야정치조직과 대학운동조직의 전문 운동가들이 이끌었다는 것이 정확한 역사적 진실이다. 그러나 영화 ‘화려한휴가’에서는 이들의 존재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평범한 서민과 전직 군인이 광주항쟁의 리더로서 나온다. 실제 운동권 리들은 조연으로도 등장하지 않는다. 제작진은 “평범한 인물들의 휴머니즘을 다루기 위해서”라 해명했지만, 이는 휴머니즘을 위해 청산리전투 영화를 만들면서 김좌진 장군을 제외시켜버린 격이다. 애초에 역사적 진실을 외면해버렸으니, 광주시민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그 순간에 대한민국 군인이 집단 총질을 하는 충격적인 장면도 나온다. 이 역시 역사적 진실이 아니다. 이러한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때마다 제작진들은 “대중성을 위해서”라는 준비된 변명으로 일관했다.
‘화려한휴가’ 제작진이 대중성 확보에 전념을 다했다는 점은 당시 최고 스타였던 이준기 캐스팅에서도 드러난다. 이준기는 광주항쟁에 참여한 고등학생 역으로 나오는데, 영화 상의 고등학생 중 유일하게 머리를 깎지 않고 출연한다. 이준기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잘 살고 있다는 게 이해 안 간다”라는 정치적 발언을 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남프라이즈에서는 “광주 정신을 위해 고등학생역으로 출연했다면서 머리 하나 깎지 않는 당신이 더 이해 안 간다”는 비판을 받는다.
‘화려한휴가’는 2007년 대선 특수를 타면서 흥행에 성공했지만, 그 이후 영화계 내에서의 평가는 전무하다. 여권의 실세 정치인들과 친노좌파 시민단체들, 노조가 몇 달 동안 흥행을 위해 홍보 전문가 수준으로 뛰었지만, 정작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전무했다. 이 당시 모든 영화 잡지의 평가 역시 작품 세계보다는 광주의 정치성, 그리고 이를 2007년 대선으로 연결시키려는 정략적 글들이 다수였다.
대중상의 친구가 대조영의 아우로 나오는 한국 역사 드라마
‘화려한 휴가’ 이외에도 ‘대조영’, ‘이산’, ‘천추태후’ 등등 역사극에 대한 진실 문제는 늘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주로 역사학자들이 비판하면, 제작진 등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라며 본질에 벗어나는 답을 하며 논쟁은 중단된다. 그러면서 대부분 오락적 요소를 가미하면서 역사적 진실이 훼손될 경우 이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졌다. 대조영의 부친인 대중상의 친구인 걸사비우가 KBS 드라마 상에서는 대조영의 아우로 나오는 것쯤은 비판의 대상도 안 된다.
그러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선덕여왕’의 경우는 전혀 다른 매카니즘이 작동되고 있다. ‘화려한휴가’가 대중성을 명분으로 역사를 훼손하면서, 실제로는 그 대중성을 정치권력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드러났듯이, ‘선덕여왕’의 경우도 정치성이 너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화려한휴가’의 작가가 바로 이 ‘선덕여왕’의 작가와 동일한 인물이라는 점, 역시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선덕여왕’은 40%의 시청률을 넘나들며 흥행에 성공하였다. 마치 800만명을 동원한 ‘화려한휴가’의 흥행성적과도 비교될 수준이다. 과감한 역사왜곡과, 이를 바탕으로 현실정치에 대한 개입까지 시도한 ‘선덕여왕’이 종영 뒤에 작품성 자체에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 주목된다. 또한 작가가 대한민국 현대사와 삼국시대 역사에 이어 또 어떤 역사를 정치에 이용할지도 지켜볼 만한 일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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