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로부터 9억 5천만원이라는 거액의 출연료를 받고 있는 유재석 측이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제작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유재석의 소속사인 디초콜릿 측은 “3년 전 MBC 부사장이 유재석의 소속사에 ‘무한도전’의 외주제작을 맡길 것을 약속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됐고, 또 하나는 소속사가 유재석과 ‘무한도전’ 출연 연장을 위한 재계약 시 외주제작건을 포함시킬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헤럴드경제 측이 보도했다.
유재석의 계약기간이 올해 12월로 종료되면서 유재석의 하차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디초콜릿 측은 3년 전 MBC 부사장이 외주제작권을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상기시키며 MBC 측을 압박하고 나선 것.
디초콜릿 측이 거대 방송권력 MBC를 대상으로 압박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과도하게 집중된 스타 권력 때문이다. 디초콜릿은 MC계의 1인자인 유재석은 물론, ‘무한도전’에 함께 출연하고 있는 노홍철, MC계의 2인자 강호등을 비롯, 김용만, 박경림, 윤종신 등등 스타급 MC를 보유하고 있다. 아무리 거대 권력 방송사라 해도 디초콜릿과 사이가 틀어질 경우 변변한 예능프로그램 하나 만들지 못하는 처지이다.
또한 유재석의 경우 같은 소속사 이외에도 ‘무한도전’ 출연진인 박명수, 정준하 등등과 이른바 유라인이라는 인맥 네트워크를 형성 MBC 섹션TV가 선정한 연예인 최대 인맥 파벌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재석의 소속사인 디초콜릿 역시 고현정과 솔비 등 또 다른 톱스타를 보유하며 연예계의 큰손으로 자리잡인 대형 회사이다. 디초콜릿은 현재 시가총액 400억원대를 기록하는 코스닥등록기업이다. 특히 디초콜릿은 신동엽의 회사 디와이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현재는 신동엽 측과 법적 분쟁을 벌이는 등, 혼탁한 경영 상황을 맞고 있다. 현재 신동엽 측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이도형 회장은 사상 최대의 연예기획사 주가조작 사건으로 법적 처벌을 받은 바 있다. 이런 인물이 거대 연예기획사를 다시 장악, 유재석 등 스타권력을 앞세워 방송사의 제작권까지 탐하고 있는 것이다.
소속사의 제작권 요구, 유재석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유재석 측과 MBC와의 제작권을 둘러싼 신경전에서 가장 중요한 유재석의 판단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통상적으로 연예기획사와 연예인 간의 계약은 연예기획사가 계약대행권을 갖고 일정 정도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되어있다. 연예기획사는 연예인의 의사에 따라 계약을 해주면서 연예인들의 권익을 최우선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현재 디초콜릿 측은 유재석의 계약 건을 담보로 MBC로부터 제작권을 넘겨받으려 하고 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유재석의 권익이 침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저히 법적으로 규정되어있는 미국의 연예시스템과 달리, 스타의 급에 따라 천차만별의 계약이 이루어지는 한국 연예계의 특성 상 유재석을 피해자로만 볼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의 연예기획사의 경우 신인급 연예인에 대해서는 사회적 지탄을 받는 노예계약을 체결, 이들의 수익을 가로채는 반면, 유재석 정도의 스타급 연예인에 대해서는 모든 수익을 스타에게만 돌리는 이른바 10:0 계약을 하고 있기 때문. 출연료 이외에 출연을 조건으로 외주제작권을 받게 되면 해당 스타에게 프리미엄을 얹어주는 방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보다 더 한 경우는 회사의 주식을 배당하여 주주로 참여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게 대형 연예기획사들이 제작업 등을 겸업하면서, 스타권력을 보유한 회사가 시장을 잠식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비판이 잇따랐다. 연예기획사가 없는 독립프로덕션의 경우 제작권을 따내는 게 하늘의 별따기인 반면, 톱스타를 보유하고 있으면, 이들의 스타파워를 무기로 제작업을 병행하면서, 독립프로덕션이 설 자리고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의 유재석 측의 MBC에 대한 제작권 요구는 이러한 거대 연예기획사가 제작업을 장악한 병폐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인 것.
이 때문에 미국의 경우 1970년도에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가 있는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에 공인에이전시 제도를 도입하여, 공인 자격증을 소지한 자만이 스타의 계약을 대행하도록 했고, 에이전시 회사는 제작업을 겸업할 수 없도록 강제해놓았다. 이러한 국가적 조치 덕에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은 제작 시장이 대폭 활성화되며 대중문화의 최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17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의 고진화 의원이 미국식 제도를 응용하여 ‘공인연예인기획자법’을 발의하였으나 18대 국회 들어 자동 폐기되었다. 그러다 올 초, 장자연 자살 사건 당시 연예계 비리가 드러나면서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연예산업 개혁 입법을 다시 추진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는 미국식 공인에이전시 제도보다 훨씬 완화된 법안을 준비 중이며, 여전히 연예기획사와 제작업의 겸업 금지에 대해서조차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이 스타권력에 편승하며 시장 악화시켜
이런 제도 개선 이전에 공영방송인 MBC와 KBS에서 유재석, 강호동 등 거대 기획사의 톱스타에 의존하는 제작 관행을 고치지 못한 점도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MBC는 이번 국감 당시 유재석, 박명수, 김구라, 김제동 등 특정 스타에게 출연료를 집중시키며, 이들의 권력을 키워주고 있다. MBC가 자랑하는 ‘무한도전’ 역시 신인 스타를 발굴하기 보다는 유재석의 소속사와 유재석의 인맥에 의존하는 나태한 제작의식 탓에, 유재석 측이 도발해오더라도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무려 10년 이상 개혁의 칼을 피해간 거대 방송사들이 자본의 힘만 믿고 스타권력을 키우다, 이제 그 권력이 역전되면서 거꾸로 당하고 있는 셈.
제도 개선 이전에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이라면, 디초콜릿 같은 거대 연예기획사를 지정하여, 이들 소속사의 연예인들의 출연 제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연예시장이 훨씬 더 정화되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즉 거의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MBC에 출연하여 돈을 벌어가는 디초콜릿 같은 대형 회사에 대해 MBC나 KBS에 3명까지만 출연시킨다는 제도를 정착시키면, 스타급 연예인들이 연쇄 이동하며 특정 기획사가 스타권력을 남용할 여지를 차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권력을 누리고 있는 MBC 등의 PD들에 이러한 개혁을 해내는 것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방송개혁시민연대 측은 유재석이 출연하는 MBC의 또 다른 예능프로그램 ‘놀러와’의 한 PD가 특정 의류업체의 상표를 반복적으로 화면에 내보냈다며,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방송사의 고질적인 병폐인 연예기획사의 끼워팔기식 캐스팅 역시 방송사 PD가 기획사와 유착이 되어있기 때문에 고쳐지지 않고 있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현재까지 유재석의 계약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디초콜릿은 “우리가 외주제작권을 가져오더라도 김태호PD가 여전히 연출하게 될 것”이라며 PD의 캐스팅까지 좌지우지하겠다는 오만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김태호PD는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시상식 자리에서 미디어법 반대 거리투쟁을 하고 있는 최문순 전 사장과 방문진의 개혁 요구를 받고 있는 엄기영 사장을 예찬하는 등 정치적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무한도전’이 교묘하게 편집을 왜곡하여, 반MB 투쟁 현수막을 수시로 화면에 보여주고 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무한도전’ 김태호PD는 정치투쟁할 시간에 연예권력 개혁에나 나서라
예능프로그램 PD가 방송독립의 사수자인 양 행동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터전인 연예권력 개혁에는 일절 나서지 않으며, 스타권력의 기득권에 편승한 프로그램을 제작, 오히려 스타권력의 병폐를 악화시키는데 한몫 거들고 있는 셈이다.
미디어발전국민연합의 강길모 공동대표는 “유재석 측의 요구는 MBC가 바로 일축해할 것은 물론 방문진과 KBS 이사회는 스타권력을 앞세워 제작권을 요구하는 연예기획사의 실태를 조사하여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한도전’의 김태호PD는 어설픈 운동권 1학년 수준의 정치투쟁 할 시간에, 유재석 등 연예권력 개혁에나 나서라”는 입장을 밝혔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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