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문제가 장기화되면서 언론인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정책을 추진하는 당사자가 아니라, 단지 국민의 여론을 대변하고, 정책결정권자들을 향해, 조언하고, 첨언하고, 비판하고, 감시하는 언론의 입장에서 과연 세종시에 대해서 어떠한 논조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이다.
정책의 입장에서 세종시는 친노세력의 수도이전, 박근혜 측의 수도분할, 이대통령의 측의 서울수도론, 이 세 가지로 분류된다. 이 세 가지 안의 사이에서의 타협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언론 역시 이 세 가지 안 중에서 하나를 골라 입장을 밝혀하는가. 언론이 모든 사안마다 입장을 밝힐 의무는 없으나, 사안에 따라서는 이를 강요받을 수도 있다. 친노좌파 매체들이 차츰 수도이전론을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일보, 미래 예측하여 현실의 정책을 판단
중도우파 언론에서 세종시 문제에 대해 가장 선명한 입장을 내세우는 곳은 조선일보이다. 조선일보는 1월 18일 김대중 주필 칼럼에 이어, 1월 27일자 사설, 바로 다음날인 1월 28일자 사설 전면을 통해 이대통령에게 세종시 수정안 포기를 요구했다. 즉 결과적으로 박근혜 측의 수도분할안을 찬성한 셈이다.
물론 조선일보가 원칙적으로 수도분할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가 가장 주요 근거로 내세우는 논리는 현실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야당인 민주당이 찬성할 가능성이 없고, 박근혜 측이 찬성할 가능성이 없는 상황이라면, 세종시 수정안은 한나라당 당론 변경과 국회 상임위 통과도 어렵다. 조선일보의 판단은 어차피 되지도 않을 것이라면, 더 이상 국론을 분열시키지 말고 깨끗이 접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논리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언론이 미래를 미리 예견하여, 그 예견을 근거로 현실의 상황에 개입해도 되냐는 것이다. 즉 야당과 박근혜 측이 절대 입장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는 근거가 있냐는 것이다. 물론 현재 상황으로 볼 때는 조선일보의 예측이 90% 이상 맞아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미래라는 것은 현실의 변수에 따라 달라진다. 조선일보가 현실의 모든 변수를 다 고려해서 판단할 능력이 있는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선일보도 확답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 믿는다.
그 점에서 조갑제 대표의 발상이 더 정론에 가깝다. 조갑제 대표는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 "모든 여론조사에 따르면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지지가 더 높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자신 없어 하는 모습을 보이면 지지도가 내려갈 것이다. 장수가 싸울 의지가 없어 보이면 병사들의 사기도 떨어진다"라며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라는 최대 변수를 지적했다. 즉 조갑제 대표의 논리로 보자면 조선일보는 바로 이러한 이명박 대통령의 수도분할 저지에 대한 의지를 낮게 판단했기 때문에 미래를 예견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와 민주당의 상황변화가 가장 중요한 변수
조선일보가 절대 불변이라고 확신하는 야당, 특히 민주당의 경우도 변수가 된다. 현재 민주당은 서울시 지자체 선거로 수많은 후보들이 뛰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올 후보가 수도분할안을 지지한다는 것은 부단스러운 일이다. 시장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민주당에서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선언한 이계안, 김성순 등은 세종시 원안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당론과는 달리 매우 조심스럽게 답을 하고 있으며 이계안의 경우 “세종시 원안 사수를 위해 박근혜 측과 자유선진당과 손을 잡는 게 타당하냐”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마치 한나라당에서 원희룡 의원이 1월 15일 3-4개의 행정부처가 내려가야한다고 주장하다가 1주일만에 “하나도 내려갈 필요없다”고 말을 바꾼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는 이계안과 김성순의 개인의 판단으로 결정될 수 없고, 서울시 선거를 뛰는 민주당 서울시당 전체의 여론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반면 역시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선언한 한명숙은 이미 2007년 대선에서 세종시를 워싱턴으로 만들겠다는 사실 상의 수도이전안을 공약했다. 이는 한명숙이 서울시장 당내 경선에 출마했을 때, 민주당 서울시당 소속 당원과 대의원들, 혹은 상대 후보들에게 집중 추궁을 받을 사안이다. 수도이전론자가 민주당 서울 선거를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는 문제이다.
정세균, 수도이전론자 한명숙 서울시장 전략공천 시, 민주당 상황 변화 가능성
민주당에서는 이 때문에 정세균 대표가 한명숙을 전략공천으로 지명할 것이라는 설이 돌고 있다. 수도이전을 주장해온 친노세력의 한명숙이 민주당 서울시당 경선을 통과할 가능성이 없으니 찍어주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되면 역사적으로 원수지간이 된 빽빠지 친노세력과 난닝구 구민주당 세력의 갈등까지 겹치며, 민주당 중앙당과 서울시당이 분열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이미 민주당 서울시당 당원들은 “한명숙 가지고는 서울시 선거 참패이다”라는 정서가 표출되고 있다. 난닝구 구 민주당 측에서는 “통일 때까지 수도를건드리지 말고, 통일 이후 남북한이 합쳐서 수도를 정해야한다”는 이른바 통일수도론을 제기하며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보자는 말들도 돈다. 즉 친노 수도이전론자 한명숙을 난닝구 통일수도론 후보가 나와 서울시에서 친노세력을 참패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울시의 상황은 인천과 경기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어, 지자체 후보 공천 작업 과정에서 민주당의 당론이 세종시 원안으로 절대 불변할 것이라는 예측이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예측이다. 문제는 미래 예측에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 민주당의 상황이라는 변수 이외에도 수도없는 많은 변수들이 개입되어있기 때문에, 예측에 근거한 현실판단으로 언론이 입장을 표명하는 일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럼 예측이 아니라면 과연 언론은 무엇을 주장해야 할까? 첫째는 수도이전, 수도분할, 서울수도론, 통일수도론 등 정책에 대한 선택이다. 즉 수도이전이 옳다고 주장하던지, 수도분할이 옳다고 주장하던지, 서울수도론을 주장하던지, 통일수도론을 주장하던지, 하나를 정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체적 정책을 선택하는 일은 언론의 의무는 아니다. 개별 정책의 장단점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언론의 역할은 충분히 다할 수 있다. 그 이외에 두 번째로 언론이 취할 수 있는 방안은 바로 논리 바로잡기이다. 각 정치세력이 주장하는 논리의 허점을 잡아 이를 국민에 알리고, 정치세력의 답을 끌어내는 일이다.
친노세력은 노무현 대통령부터, 2007년 대선후보로 뛰었던, 한명숙, 정동영, 유시민, 이해찬까지 모두 수도분할을 지지한 게 아니라 수도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박근혜의 수도분할안에 대해 힘을 보태주고 있다. 그렇다면 언론은 “당신들이 그간 공약해온 수도이전은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일단 절반 내리고, 상황봐서 다 내리겠다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박근혜 대표는 바로 친노세력의 수도이전을 막기 위해 수도분할이라는 절충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친노세력과 박근혜 측의 논리적 결함, 언론은 문제제기 해야
또한 박근혜, 대표 역시 2004년 총선 때 수도이전공약으로 충청권에서 재미를 봤다. 그러기 선거 이후 바로 이를 뒤집고 수도분할안으로 수정했다. 국민과의 약속을 분명히 어긴 것이다. 그러면 왜 본인은 국민과의 약속을 쉽게 뒤집어도 되고, 이 대통령은 절대 하면 안 된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있는 논리로 설명해야 한다. 이는 수도이전을 지지하든, 수도분할을 지지하든, 서울수도론을 지지하든 그와 관계없다. 누구나 보편타당하게 공감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한 논리이다. 이렇게 숨겨진 논리를 바로잡아야지만 정확한 정보를 갖고 정책결정자들이나 국민들이 사안을 다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언론이 현재 이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책임이며, 현재까지 언론은 이 작업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고 있다. 특히 명백히 수도이전이라는 속내를 숨기고 있는 친노세력들의 정략을 모른 체, 여론이 결정되고 있는 부분은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
정책 사안에 관한 언론의 역할은 오히려 정책결정자들보다 더 크고 어려울 수 있다. 하나의 정책을 선택하여, 홍보선전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 그 결정과정을 모두 확인해야 하고, 정략적으로 숨기고 있는 사실과 논리도 찾아야 하고, 상황에 따라서 변수를 고려하여 미래를 예측해야할 될 때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비밀회의에서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된 모두 글로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 한번의 잘못된 논리를 펴게 되면 다음글을 쓸 수 없는 논리적 외통수에 걸릴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이 때문에 전체 정치세력이 참여하고, 지역과 중앙의 불균형, 통일과 국방의 문제까지 걸려있는 세종시 문제 해결과정에서, 정치권보다도 대한민국 언론의 실력이 드러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물론 조선일보의 예견대로 일이 진행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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