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개혁을 바라는 애국시민의 관심을 모은 MBC 본사 신임 사장에 김재철 청주MBC 사장이 임명되었다. 김재철 사장 선임에 대해서는 당일날까지도 방문진 내에서 확정을 못할 정도로, 막판 경합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이 풀어야할 MBC 내의 난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MBC 민노총 노조 측에서는 이미 총파업을 결의했고, 3월 8일 사장 취임식 때부터 출근 저지 투쟁을 선언하고 있다. 과연 김재철 사장이 첩첩산중의 MBC개혁의 산을 넘어설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재철 사장이 돌파해야할 첫 관문은 정상적인 출근이다. YTN 구본홍 전 사장의 경우 첫 출근이 막히면서 무려 3개월 이상 호텔을 전전했다. 이 과정에서 강경 노조의 요구조건을 다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YTN개혁은 좌절되면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KBS의 경우 이병순 사장은 청원경찰을 앞세우고 출근에 성공하였고, 김인규 사장은 다른 통로를 활용 출근하여 무사히 취임식을 마친 바 있다.
그러나 MBC는 KBS와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 KBS는 노조가 강경파와 온건파로 분열되어있었다. 투쟁동력이 크지 않았기에 형식적인 출근저지투쟁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미 MBC는 노조원의 96.5%의 참여율에 75.9%의 찬성률을 확보, 총파업투쟁을 결의해놓았다. 출입통로가 많은 KBS와 본사 구조도 다르다. 100여명 이상이 출근저지에 나설 경우 정면 돌파 이외의 다른 출근 방법이 없다.
황희문, 윤혁 이사, 여전히 출근도 하지 못하고 있어
실제로 MBC노조는 방문진이 독자적으로 임명한 황희만, 윤혁 이사의 출근을 지금 이 시간까지 저지에 성공하고 있다. 황희만, 윤혁 이사는 새벽에 출근한 바 있으나, 이사실 주위에서 노조가 농성을 하는 바람에 출근을 포기하고 여전히 호텔에서 기초적인 업무만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출근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황희만, 윤혁 이사가 출근에 실패한 이유는 김종국 사장 직무대행의 비협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어차피 신임 사장이 부임할 텐데, 김종국 사장 직무대행이 무리하게 이사의 출근을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는 것. 또한 황희만, 윤혁 이사 역시 신임 사장이 보직을 정해주지 않은 상태에서, 출근을 해봐야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재철 사장이 정상 출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경찰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다. 100여명 이상이 출근저지에 나설 때, 최소한 500여명의 경찰투입을 요청하여, 출근저지 주도자를 모두 처벌하면서 신속하게 끝내는 방법이다. 이 때문에 김재철 사장의 출근 시간을 오전 9시 10분 경으로 잡아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전 9시 이후에 출근저지 투쟁에 참여한 노조원은 모두 근무지 이탈이 되기 때문에, 사규에 의해 얼마든지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벌어져, 오히려 MBC 사원들을 자극할 위험성도 크다. 구본홍 사장이 결국 정상 출근에 실패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구본홍 사장의 사례로 볼 때, 출근에 실패할 경우, 출근을 위해 노조와 야합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MBC 내의 개혁세력은 정상 출근이
MBC 개혁의 절대적 필요조건이라 판단하고 있다. 공정방송노조 측은 성명서를 발표 “일부세력의 출근저지가 두렵습니까? 두렵고, 무섭고, 잘 들리지 않는다면 지금 즉시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을 타시기 바랍니다. MBC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여의나루역입니다”라며 김재철 사장에 정상 출근을 요구했다.
한귀현 감사 등 엄사장이 임명한 경영진은 반드시 교체해야
출근에 성공했을 경우 누더기가 되어버린 MBC 경영진 인사를 방문진과 협의해야 한다. 현재 MBC 경영진은 한귀현 감사, 김종국 사장 직무대행 등 엄기영 전 사장이 임명한 세력과 윤혁, 황희만 이사 등 방문진이 독자적으로 임명한 세력이 뒤섞여있다. MBC노조가 친노좌파 시민사회는 물론 야당까지 합세하여 강력한 단일대오로 저항하는 상황에서, 경영진이 분산되어있어서는 개혁을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최소한 엄기영 전 사장이 임명한 세력만큼은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히 엄기영 전 사장 시절 조작보도와 부실경영에 대해 제대로 감사 한번 하지 않은 한귀현 감사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MBC정상화추진국민운동연합 측에서 방문진에 교체를 요구해왔다. 또한 방문진이 임명했지만, 엄기영 전 사장 시절 보도국장을 지낸 안광환 이사 역시 교체 대상이다.
세 번째 관문은 김재철 전 사장이 방문진에 공약한 ‘PD수첩 진상조사’ 건이다. ‘PD수첩 진상조사’ 건은 엄기영 사장 시절부터 방문진이 요구해왔지만, 결국 실행되지 못했다. 김재철 사장은 곧바로 PD수첩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공약했지만, 구체적인 실행방안 마련은 쉽지 않다. ‘PD수첩’ 건은 이미 검찰 수사가 완료되었고, 법원 1심에서 무죄를 판결내린 사안이다. 현재로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안에 대해서 진상조사를 시작할 명분이 약화되었다. 단 ‘PD수첩’ 측이 끝까지 검찰과 법원에 제출하지 않은 원본 테이프를 입수할 수 있느냐의 여부만이 핵심사안이다. 검찰은 무죄 선고 직후에 보도자료를 통해 “피고인들은 취재원 보호라는 명목으로 원본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료만을 발췌해 이와 같은 편파적 방송을 할 것이 아니라 항소심에서는 원본자료를 제출해 진실 규명에 협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재철 사장은 검찰과 달리 사규에 따라 원본 자료 제출을 요구하여, 이에 불응 시 징계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PD수첩’과 노조의 대응으로 볼 대, 원본자료를 끝까지 제출하지 않은 채, 취재원 보호라는 논리로 여론선동전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결국 조사 중단 이후 징계 절차를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여론이 관건이 된다.
노사협약 개정 추진 시 노조와 전면전 불가피
그 다음의 벽은 방문진이 엄사장의 유임조건으로 내세워왔던 노사협약 개정이다. MBC노사협약은 보도의 총책임자를 본부장이 아닌 국장급으로 낮춰놓았다. 경영진이 보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도록 하여, 실무를 맡고 있는 노조원이 방송을 마음대로 장악하도록 한 독소조항이다. 이 조항을 노조 측이 개정에 찬성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김재철 사장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노조와 정면 충돌하면서, 노사협약을 파기, 자체적으로 사규를 정해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YTN의 배석규 사장은 전임 사장들이 노조와 합의한 노사협약을 인정하지 않고, 보도국장 3배수 추천제를 무시, 곧바로 보도국장을 교체한 바 있다. 당시 사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배석규 사장은 “2003년 9월 체결된 ‘보도국장 임면에 관한 단체 협약’에는 유효기간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협약의 유효기간 2년이 지난 2005년 9월부터는 유효기간의 경과로 효력이 상실된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회사가 2005년 9월 이후에도 보도국장 추천제를 실시해온 것은 노사화합을 위해 경영자의 인사권을 일부 제한한 기형적인 조치”라는 논리를 폈다. 만약 김재철 사징이 이와 같은 논리로 노사협약을 인정하지 않고, 개혁을 밀어붙일 경우 노조와의 전면전은 불가피하다.
김재철 사장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카드는 노사협약은 문서로만 두되, 실질적으로 경영진의 권한을 행사하도록 노조와 협의를 하는 방안이다. 노조의 입장에서 노사협약 개정에 찬성할 수가 없으니, 개정은 하지 않되, 본부장이 개혁형 보도국장을 임명한 뒤,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안은 결국 노조의 명분을 빼앗지 못하며 편법을 쓰게 되는 형식이므로, 중장기적으로 MBC 개혁의 장애가 될 소지가 크다.
지자체 선거 기간, MBC 개혁, 정치적 논리에 휘말릴 가능성 높아
문제는 김재철 사장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김재철 사장은 엄기영 사장의 잔여분인 1년짜리 임기를 마쳐야 한다. 1년 안에 눈에 보이는 개혁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차기를 바라볼 수 없게 된다. 특히 3월부터는 사실 상 지자체 선거가 도래하면서, MBC 개혁에 정치논리가 개입되어 매우 혼탁한 상황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친노좌파 세력이 주최한 ‘MBC지키기 촛불집회’에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가 참석한 것은 그 징조를 보여주고 있다. MBC 개혁을 시도할 때마다, 친노좌파 시민사회는 물론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등 야당세력이 개입하여 이를 정치논리로 좌절시킬 가능성이 높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여당에서도 이를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다.
MBC국민연합 측은 김재철 사장이 이런 난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폭넓은 연대의 틀을 구성하고, 보다 창의적인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노조의 선동전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이번 MBC 사장 선임에 적극 참여한 애국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적극적으로 여론전에 나서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재철 후보는 MBC국민연합 측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사장이며, 지금껏 유대 관계도 없었다. 김재철 후보가 개혁의지를 정확히 보여주지 않는 이상, MBC국민연합 측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함께 싸워줘야 할 이유가 없다. 반면 김재철 사장의 경우 우파세력과의 연대를 오히려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다. 만약 이런 구도가 형성되면 사실 상 MBC개혁은 좌절될 수밖에 없다. 마치 사장 선임 공청회를 두고 MBC국민연합 측과 방문진의 연대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김재철 사장이 활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카드는 엄기영 전 사장 시절 불법적으로 임명된 시청자위원을 전격적으로 교체하여, MBC 프로그램 개혁을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을 투입하는 것이다. 엄기영 전 사장은 지난해 5월 시청자위원 임명 당시 열 명 중 아홉 명을 지원하지도 않은 인물을 불법적으로 임명했다. 이에 대해 당시 MBC에서는 “좌파세력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답변으로 피해나갔다. 그러나 현재 MBC시청자위원 중 MBC의 조작방송을 막아낼 만한 인물은 없는 상황이다. 만약 교체가 어렵다면, 최대 15명까지 임명할 수 있는 시청자위원의 숫자를 확대, 5명의 개혁성향의 인사를 시청자위원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있다.
그러나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재철 사장 본인의 개혁의지이다. 이 점에 대해서 아직까지는 MBC국민연합 측과 공정방송노조 측은 김재철 사장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보내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사장 임명 직후 연합뉴스는 MBC 관계자의 이름으로 “전임 사장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엄 전 사장을 MBC 경영 자문으로 위촉하는 방안을 내부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공정방송노조는 즉각 “엄기영 전 사장은 MBC의 경영을 파탄 낸 장본인입니다. 이런 인물을 경영고문으로 위촉한다는 것은 개그프로그램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동안 우리 공정방송노동조합은 선배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전 사장에 대해 언급을 자제해 왔습니다. 만약 회사가 전임사장을 경영고문으로 위촉하는 즉시 우리 공정방송 노동조합은 전임사장이 얼마나 MBC를 망쳐왔는지 모든 사람이 잘 알 수 있도록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동원하겠습니다”라며 반발하고 있다.
공정방송노조, 엄기영 사장 고문 위촉 관련 비판 성명 발표
공정방송노조와 MBC국민연합 측은 이러한 발상이 김재철 사장 측에서 이야기가 되고 있다는 점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얼마든지 전임 사장에 대해서 예우를 할 수는 있느나, 김재철 사장에게 주어진 임무는 엄사장 시절 저질러진 잘못된 것들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작방송과 부실경영의 책임자인 엄사장을 상임고문으로 모신 상태에서, 어떻게 이 작업을 해나가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갈등에 휩싸인 MBC 내에서 화합형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는 노조의 투쟁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실제로 엄사장이 이를 수락할 지 여부도 확실치 않다. 문제는 이러한 발상이 결국 김재철 사장의 MBC개혁 방식이 가급적 노조의 감정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제한될 것이라는 상징적 메시지가 아니냐는 것이다.
MBC국민연합을 이끌어온 최인식 민주사회시민연합 공동대표는 “MBC가 망할 각오를 하고 노조를 신경쓰지 않고, 개혁의 칼을 들이대지 않으면, 어떤 방법으로 MBC가 정상화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김재철 사장은 구본홍과 배석규의 길 중에서 양자 택일하고, 배석규의 길을 선택했다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신속히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것이지, 그 절충안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을 맞은 것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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