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비평 전문지 미디어워치 발행인이자, 청년기업가들의 모임인 실크로드CEO포럼의 회장직을 맡다보니, 만나는 사람의 절대 다수가 청년 기자들과 청년 기업가들이다. 그러다보니 이 두 그룹의 차이점을 체험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청년기업가들은 상대적으로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다. 청년 기자들은 답답할 정도로 도전 의식을 보여주지 못한다. 현 정부 권력을 비판하는 친노좌파 매체의 기자들은 도전적이지 않냐고 물어볼 수 있겠다. 아니다. 권력 비판의 내용이 천편일률적이다. 참여연대나 민주노동당의 성명서를 그대로 베껴쓰는 수준에 머물러있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비판이 없다는 것은, 낡은 관성에 젖어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비판(批判)이 비교하여 판단한다는 뜻이라면, 창의적이지 않은 비판은 사실 상 비판이 아닌 것이다. 비교 분석할 능력없이, 주는 대로 받아쓰는 게 무슨 비판이냐는 것이다.
비전이 없으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반면 청년기업가들의 문제는 공적 의식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기업가들이 성실히 사업수행하고, 수익을 많이 내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며 세금만 잘내면 되지 무슨 공적 의식이 필요하냐고 반론할 수 있겠다. 여기서 말하는 공적 의식은 조금 다르다. 개별 기업의 논리를 넘어 대한민국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야 하고, 사회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 그에 대한 공적 판단의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중장기적인 사업 비전을 세울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재의 인터넷 포털 독점 구조가 정상적인가 기형적인 것인가 판단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정상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면, 이 포털 독점 구조를 전제로 사업계획을 짜게 된다. 포털에 기생하여 푼돈 정도 받는 사업 기획 이상 나올 수 없다. 반면 현재의 포털 독점 구조가 기형적이라 판단한다면, 개별 기업 차원 이상의 역사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역사는 중장기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가치관을 믿는다면, 결국 언젠가는 포털 독점 구조가 깨지게 된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그럼 그 이후에 고도의 정책적 흐름을 분석해서, 언제쯤 어떤 방식으로 포털 독점 구조가 깨질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 판단에 따라서 포털 독점 구조 해소 이후의 중장기적인 사업 계획을 머리 속에 그려넣게 된다. 공적 의식을 갖추느냐 못 갖추느냐에 따라 사업방향과 규모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즉 나의 판단으로는 역사는 올바르게 흘러왔고, 그래야 한다고 믿지 않는 청년기업가는 큰 사업을 벌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청년기자들과 청년기업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년기업가는 그렇다 쳐도, 글을 다루는 청년 기자들이 왜 책을 읽지 않는지 역시 의아해할 줄 안다. 이런 의아함에 대해서 아무런 궁금증도 없이 수긍할 사람들은 다름 아닌 바로 청년기자들일 것이다.
물론 과학적인 여론조사를 해본 바는 없다. 단지 내가 만나게 되는 청년기자들과 아무리 기억을 해봐도 책에 대한 내용을 토론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만나는 기자 모두가 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단지 청년 기자들끼리 책을 소재로 토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청년 기자들 내에서 책을 읽는 문화가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는 점만은 방증한다. 즉 설사 청년 기자들 중 책을 많이 읽는 기자도 있겠지만, 별로 언급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예인 김민선과 정진영이 광우병 청산가리 발언 문제로 논란이 되었을 때, 나의 지적 수준 발언이 문제가 되어 나는 공개적으로 독서량을 밝힌 바 있다. 다양한 협회 등의 활동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읽어야하는 정책 보고서를 제외하고, 또한 미디어워치를 운영하면서 역시 직업적으로 읽어야 하는 신문과 잡지 기사를 제외하고, 평균적으로 주로 역사와 인문사회 관련 서적을 1주일에 두 권 정도 읽는다. 책을 손에 들고 다니는 한 청년 프리랜서 선배 기자에게 “아무리 그래도 글쓰는 사람으로서 일주일에 두 권 읽는다는 건 문제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어떻게 저렇게 책을 안 읽으면서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어차피 청년 기자라기보다는 청년 사업가인데 그 정도면 많이 읽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어쨌든 1주일에 두 권 정도 읽는 나 역시 청년 기자들과 만나서 책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청년 기자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기사 쓰는 데 그렇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적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많게는 하루에 20편 이상의 기사도 써야하는 인터넷 기자들의 경우 업무 수행을 위해 책을 읽어야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냥 정해진 방향대로 보도자료에 근거하여, 취재원에 확인하여 기사를 쓰면 될 뿐이다. 인터넷이 권력화되면서 지면매체의 경우도 이러한 인터넷 기사의 흐름에 편승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지면매체의 경우는 인터넷과 달리 지면의 제약 탓에 창의력을 발휘하기에는 더 어려운 조건이다. 제한된 지면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려면 깊은 내면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점차 열악해지는 매체 환경 속에서 10년이고 20년이고 깊은 실력을 키워야 하는 기자로서의 삶의 목표를 설정하기가 어렵다.
“책을 왜 읽지 않느냐”는 질문보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
청년 기업가들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루하루 이미 진행되고 있는 사업을 수행하느라 다른 여유를 갖지 못한다. 청년 기자들의 경우 “그래도 책을 읽어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읽기는 읽어야 한다”라는 답 정도는 한다. 반면 청년 기업가들에게 책을 읽어야 한다는 제안이나 질문을 던지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 책을 떠나서 지면 신문을 읽고 있는 유일한 청년기업가는 프리보드기업협회의 송승한 회장 정도이다. 다들 자신의 관련 사업 분야 기사를 메일 전송을 통해 송고받아 그 분야만 체크할 뿐이다. 특히 청년기업가들이 인터넷 분야에 집중되다보니, 이들 간의 대화는 대개 전자신문, 아이뉴스24 등의 기사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외의 매체의 기사를 읽어야할 이유가 없는 이들이, 인문과 사회 분야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치열한 현장 경영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경제경영서를 자주 찾아 읽는 것도 아니다.
역시 과학적인 조사는 아니지만 언론인의 경우 연차가 높을수록 독서량이 많은 듯하다. 책이라는 것이 꼭 올드미디어여서만은 아니다. 연차가 높을수록 “앞으로 평생 기자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들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년 기자들은 미디어 환경적으로 이런 평생 직장 개념을 갖기 어렵다. 특히 개별 매체의 경우 그 어느 곳도 확실한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기업의 경우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부친인 故이병철 회장 자체가 독서광이었고, 이건희 회장은 책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수집하여 볼 정도이다. 故정주영 회장은 독서광까지는 아니지만 “신문으로 대학을 다녔다”고 말할 정도의 신문광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기업의 회장들이 책과 신문을 부지런히 읽는 이유는, 개별 상품시장을 넘어서 대한민국과 세계의 역사적 흐름을 파악해야지만 신규사업을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계와 경제계의 사례로 보면, 결국 독서라는 것은 의외로 비전의 여부와 깊은 관계가 있다. 비전이 있어야 역사와 사회,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탐구를 위해 자연스럽게 책을 찾게 된다. 비전을 세울 수 없다면 당장 코 앞에 닥친 실무와 관련된 것 이외의 책을 접할 필요가 없다. 청년 기자들과 청년 기업가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점은 이 때문에 심각한 국가적 문제가 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야할 청년 기자들과 청년 기업가들이 서로에게 “왜 책을 안 읽으냐”고 묻는 게 아니라, “왜 책을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 게 더 자연스럽다면, 대한민국에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게 뭐가 문제이냐”는 질문이 곧바로 나오니, 더 심각한 문제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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