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의 노회찬 대표가 지난 5일 조선일보 창간 기념식에 참여한 것을 놓고 친노좌파 진영에서는 조용한 논란이 벌어졌다. 논란은 있었지만 비교적 조용했다는 뜻은 노회찬 대표가 2004년 총선 직후 조선일보 사내 강연에 참여하여 “나는 중학교 때부터 조선일보를 봐 온 '30년 독자'", "품질에 있어서도 제일 낫다는 생각에서 조선일보를 보고 있다"는 일부 발언만 부각되면서 친노좌파 진영으로부터 집단 다구리를 당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행사 참여로 크게 공개적으로 비판받지는 않았던 것이다. 안티조선 논리를 펴오고 있는 언론노조 측의 공식 성명도 없었고, 안티조선 교수들의 매체를 통한 공개비판도 없었다. 주로 당내에서 논란이 벌어졌고, 노회찬 대표는 3월 7일 공개글을 통해 입장을 밝히면서 대충 마무리되었다.
노회찬, “조선일보와 싸우면서 닮아가고 있다”
특히 노회찬 대표는 "이 중요한 시국에 불필요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고 "취지가 정당했다 하더라도 내 처신이 적절했는가의 문제에 대해선 앞으로도 많은 지적과 조언을 듣고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는 수준의 해명을 한 뒤, 자신의 조선일보 행사 참여의 정당성을 주장하여, 뜻을 굽히지 않았다. 또한 노회찬 대표는 2004년의 조선일보 강연 건에 대해서도 "강연의 주요 내용은 온데 간데 없고 덕담 중 몇 마디로 저의 철학과 소신과 강연 내용을 왜곡한 것"이라며 "사실과 다르다고 항의하니 '아니면 말고'라는 답을 들어야 했다. 그 때 나는 우리 안에도 '조선일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친노좌파 언론을 정면에서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싸우면서 닮는다는 옛말이 있다"면서 "여전히 안타까운 것은 조선일보와 싸우면서, 싸우는 동기가 되었던 '조선일보식 글쓰기'를 닮는 경우도 있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오히려 교조적 안티조선 진영을 비판해버린 것이다.
노회찬 대표의 사례로 볼 때 2004년과 2010년 사이 교조적 안티조선의 영향력은 크게 떨어진 듯하다. 대표적인 진보정당의 수장이 당당하게 안티조선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을 만큼 세력이 분화된 것이다. 안티조선의 참여자이자 현 진보신당의 당원인 한윤영씨도 이러한 분위기 탓인지, 노회찬 대표의 입장을 사실 상 지지하는 칼럼을 미디어스에 게재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은 소통을 피하는 한나라당을 어떻게든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어떤 노력이었다. 대연정 제안은 한나라당을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한다. 한편 2002년 대선 당시 조선일보에 대한 노무현의 태도는 그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두 가지 모두 이해가 가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 행동을 모두 지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고민에 대해서도 이해를 해야 한다”, “조선일보와 상종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는 좀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조선일보가 하루 이틀 안에 망할 것도 아니고, 우리가 내일 모레 한국 사회를 포기하고 이민을 갈 것도 아니라면 말이다”라고 안티조선 진영에 보다 유연한 태도를 주문했다.
노회찬 대표의 이번 조선일보 행사 참여가 단지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는 점은 이미 그가 교조적 안티조선 세력의 전성기였던 2004년도에 조선일보 사내 강연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그 증거가 된다. 노회찬 대표는 "동시에 저는 조선일보 등 생각이 다른 언론들과 격의 없는 토론 시간도 피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안티조선은 소수 진보정당에게는 불리했던 게임의 룰
노대표의 안티조선 주류와의 다른 태도는 안티조선 운동의 역사성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애초에 안티조선 운동은 노회찬 대표와 같은 정통좌파와는 이념적으로 성향이 다른 강준만 교수 등의 자유주의자들이 주도했었다. 안티조선 운동의 첫 이론서라 할 수 있는 ‘김대중 죽이기’ 역시 정통좌파 입장에서는 안티조선 운동이 김대중 세력을 위한 정략이라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안티조선이 운동의 차원으로 대중화된 사건도 김대중 정부 시절 당시 정책자문위원장이던 최장집 고려대 교수에 대한 색깔론 시비였다. 더구나 안티조선 운동이 정상적인 언론개혁운동을 넘어 정치 권력화된 것은 민주당 후보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선 당시 “조선과 동아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 떼시오”라고 경고하고 나서면서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 내내 안티조선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의 출세의 기반이 될 정도로 타락했다. 이런 타락한 운동에 대해 정통좌파 입장에서 2010년의 상황에서까지 따라갈 필요가 있느냐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안티조선 운동의 이론적 창시자라 할 수 있는 강준만 교수는 여러차례에 걸쳐 이런 교조적 안티조선의 흐름을 비판해왔다. 그는 노무현 정권 당시 한국 신문사들이 편집논조와 다른 글도 게재해야한다며 자신의 그간의 논리를 변경하기도 했다. 안티조선 운동의 원리는 조선일보의 논조와 다른 진보좌파적 시각의 칼럼 혹은 인터뷰 게재를 거부하여, 조선일보의 보수적 정체성을 명확히 하자는 것이었다. 강교수가 이를 포기한 이유는 노무현 정권 당시 정도를 넘어선 당파성 탓에 신문사들이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는 안티조선 논리를 충실히 따른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이 더 심했다. 이런 운동권 찌라시 수준으로는 일체의 신규독자 확보는 불가능해보였고, 현재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보다 심해지고 있다.
진보신당 측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관련해서는 진보진영과 상의하여 결정하겠다는 조심스런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진보신당은 현재 친노시민사회가 주축이 된 야권연대에서 이탈한 상태이다. 진보신당 측은 이해찬 전 총리가 이끄는 시민주권모임이 협상 테이블에 나온 것 자체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친노인사가 급조한 단체가 어떻게 시민단체냐는 것이다. 친노인사들이 주도하는 시민사회가 진보신당의 독자노선에 계속 제동을 걸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경우, 진보신당은 오히려 더 강하게 나설 공산도 크다.
유시민의 연대 제의 일축해버린 심상정
진보신당의 또 다른 축인 심상정 전 대표가 유시민의 "7월 재보선이 있는 은평을 지역구 후보를 내줘서라도 진보신당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아무리 유명한 방물장수라고 해서 남의 집 집문서를 빼내서 팔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냐", "유시민 전 장관이 좀 성숙해진 줄 알았는데 도로 유시민이 된 것 같다", “유시민 전 장관은 이제 정치 평론가나 자유인이 아니라 공당 후보인 만큼 마음이 급하더라도 품격과 평상심을 갖춰 이야기 해주길 바란다"며 즉각 반박하기도 했다.
애초에 안티조선 논리는 진보신당과 같은 정통 좌파 소수정당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게임의 룰이었다. 강준만 교수는 97년 대선 당시 정통좌파세력에게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를 통한 정권교체를 위해 소수 진보정당은 출마를 포기하라는 뉘앙스의 글을 게재했다가 훗날 항의를 받고 사과를 한 바도 있다.
언론보도에서 불리함을 겪을 수밖에 없는 소수 정당에게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통상적 취재조차 거부하라고 요구한다면, 이는 친노좌파 진영의 기득권세력, 과거에는 김대중과 노무현, 현재에는 유시민과 민주당에만 유리한 게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와 유력 대권후보였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도 조선일보 행사에 같이 참여했음에도, 이들에 대한 비판글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친노좌파 진영에서는 정세균 대표와 정동영 전 장관을 같은 패거리로 인정해주지 않으니, 비판의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친노좌파 사회가 주도하는 야권 통합 협상 테이블에 민주당이 대주주 형식으로 들어와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진보신당 측이 게임의 룰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회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진보신당 독자노선 강화할 경우, 교조적 안티조선 논리는 허물어질 듯
물론 유시민의 국민참여당은 여전히 강경한 안티조선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안티조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화시킨 타락한 운동의 산물임으로 그 적자인 유시민 측은 그 반대급부의 이득을 누리고 있다. 반면 진보신당 측은 친노세력의 들러리 서는 것 이외에 아무런 실익이 없는 것이다.
노회찬 대표는 이번 사건으로 자신의 입장을 대부분 다 밝혔다. 4월 이후 본격적인 지자체 선거 국면에 들어섰을 때, 진보신당의 후보들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취재에 적극으로 응하게 된다면, 교조화된 안티조선의 벽은 의외로 쉽게 무너질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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