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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의 원칙이 무너졌던 2004년 4월 11일

자폐세력으로 변질, 새로운 세대의 언론진영 성장이 필요한 때

멀게는 1995년 ‘김대중 죽이기’의 출간부터, 더 가깝게는 2000년 안티조선 우리모두 사이트의 오픈으로 시작된 안티조선 운동은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누추한 잔재만 남아있다. 노무현 정권 이후 심각한 수준으로 권력화되었다 보니 여전히 안티조선 운동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안티조선에 적대적인 사람은 물론, 지금도 안티조선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이다.

안티조선의 주적은 조선일보가 아니라 진보패거리주의였다

안티조선의 가장 중요했던 운동의 목표는 실제로 왕성한 내부비판이었다. 기존의 전통적인 진보운동권이 내부 패거리주의 탓에 비판의식이 실종되며 그 생명력을 잃고 있을 때, 강준만이라는 새로운 논객이 나타나 진보진영 내부 인사들을 실명 비판하면서 일대 파란을 몰고 왔다. 즉 안티조선의 반대말은 조선일보가 아니라 진보 패거리주의였던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르면 안티조선이 무너진 것은 바로 안티조선이 친노좌파 진영 내의 가장 견고하고 거대한 권력형 패거리가 되면서부터이다. 단지 조선일보를 비판하고 있다는 이유로, 온갖 사실조작과 왜곡을 일삼아도, 패거리들이 이를 두둔하고, 오히려 출세의 길을 열어주면서 안티조선은 죽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가장 극적인 사건들이 연속적인 벌어졌던 시기가 탄핵과 2004년 총선이 있었던 2004년 4월 11일이었다. 이 당시 필자는 브레이크뉴스의 편집장으로서 각종 사건들을 나열하며 친노좌파 언론진영의 타락을 경고했었다. 그러나 이 경고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총선 당시 친노 정당인 열린우리당이 승리하면서 안티조선은 반대급부로 더 빠르게 무너졌다.

한겨레신문에 열린우리당 지지한 뒤, 곧바로 입당한 조기숙의 엽기적 행각

2004년 4월 8일 당시 이화여대 교수였던 조기숙은 한겨레신문에 ‘탄핵 철회로 반성해야’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필자는 당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명확한 지지논리도 설파하지 못하고 상대당을 '악'으로 규정하며 감정적 지지를 호소하느냐며 조기숙 교수를 비판했다. 물론 그런 수준의 칼럼을 실은 한겨레신문에 대한 비판도 간접적으로 담고 있었다. 필자는 조기숙 교수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조기숙은 우선 마음을 비우기 바란다. 형식적으로 당신들은 정치가가 아니다. 정치가가 아닌 이상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설사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 해도 울고 불고 할 필요없다. 그보다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자신들이 바라는 정책적 방향을 따라오지 못할 때 울고 불고 해야한다."

그러나 이런 조언은 처음부터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조기숙 교수는 바로 3일 뒤인 4월 11일 자신이 한겨레신문에 지지를 표명한 열린우리당에 입당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2004년도의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언론개혁진영의 분위기를 전달해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4월 15일이 선거날인데 4월 8일에 당시 진보진영에서 가장 신뢰받고 있는 매체인 한겨레신문에 특정 정당 지지글을 기고하고, 4월 11일에 정계에 들어가는 것은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일 것이다. 과연 한겨레신문은 조교수의 정치입문을 사전에 알고 있었까. 어쨌든 조교수는 총선 때 맹활약하며, 결국 홍보수석으로 임명되어, 제2의 ‘차지철’이라 불리며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조교수는 홍보수석을 역임하면서도 끊임없이 조선일보를 맹공격하는 글을 정부 홈페이지 올리며 노무현 정권에 충성을 다했다. 그러나 이런 조기숙 교수는 노무현 정권 탄생 이전에 안티조선 운동에 반대하며 오히려 경향신문을 키운다는 ‘희망 경향’ 운동을 주도했다. 조교수의 행각은 안티조선의 타락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MBC의 전여옥 의원 인터뷰 조작은 훗날 광우병 등 조작 퍼레이드의 시작

조교수가 돌출 입당을 한 2004년 4월 11일, 안티조선 진영에는 또 하나의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이미 송만기씨의 국모발언으로 편파성 시비에 휘말린 MBC ‘신강균의 뉴스 서비스’에서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의 인터뷰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이었던 전여옥 의원은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에 대하여 논평을 냈고, MBC 측은 전여옥 의원에 입장을 확인했다. 그러나 MBC 측은 전여옥 의원이 아닌 다른 일반인에게 전화를 한 뒤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요”라는 발언을 그대로 내보냈다.

전여옥 의원이 이에 강력하게 항의하자, MBC 측에서는 우발적 실수라 해명했지만, 전의원 측은 “신강균씨가 직접 전화하여 번호를 확인한 내용까지 녹음해놓았다”며 실수가 아닌 고의적 조작이라 주장했다.

남의 말을 대충 자의적으로 편집하다 걸린 것도 아니고, 아예 인터뷰 대상을 확인조차 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당시는 그래도 MBC 측에서 즉각 사과하는 등 최소한의 예의는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이후 ‘광우병 조작 사건’ 등등의 사례에서 볼 때, 2004년 4월 11일의 인터뷰 조작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MBC는 ‘PD수첩’, ‘불만제로’, ‘100분토론’, ‘뉴스데스크’를 통해 아예 상습적으로 조작을 범하면서도,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조작 당사자들은 출세의 길을 달리는 괴조직으로 변질되었다. 필자는 2004년 4월 11일 브레이크뉴스 칼럼을 통해 다음과 같이 안티조선 진영을 질타했다.

“현재 개혁진영은 총선에 이상 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섬찟할 정도이다. 이대로 가다간 정치권이 문제가 아니라 개혁진영 전체가 도매금으로 넘어갈 위기에 처해있다. 신뢰성과 독립성을 하루하루 갉아먹으면서 총선에 올인을 걸다 완패했을 때, 누가 이를 추스릴 수 있을지 그림조차 그려보기 힘들다.

총선에 목매단 사람들은 당장 내일부터라도 마음을 비우기 바란다. 총선은 다음 주 목요일에 끝나지만 언론운동은 평생 계속해야 한다. 책임있는 사람과 책임있는 단체는 3보 1배라도 하면서 대국민 사과를 해야할 것이다. 심판은 비단 정치권만 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하루 빨리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4년 총선 당시의 안티조선은 이미 친노세력의 어용이 되어있었다. 그뒤 2007년 대선에서 정권을 빼앗기고, 2008년 총선에서 참패를 했음에도, 놀랍게도 안티조선 진영 그 어디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한겨레,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경향신문은 아예 지자체 선거 승리를 위해 야권 통합을 압박하는 테이블을 만들며 정치꾼들이 되어있다. 당파성 자체가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러한 이권 패거리주의는 안티조선의 원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안티조선의 타락을 이끌었던 그때 그 사람들, 여전히 그 자리에

2004년 4월 11일의 그날, 안티조선 진영을 강하게 비판하는 칼럼을 쓰면서도, 훗날 조선일보에 칼럼을 쓰게 될 지, 그리고 이 정도로 안티조선 진영과 척을 지게 될 지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언론을 개혁하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인데, 정확한 사실로 비판과 설득을 하면 소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신뢰감은 갖고 있었다.

그러나 MBC와 프레시안 등의 거듭된 조작 보도, 그 이후에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양심의 태만, 권력을 위해서라면 멀쩡한 사람들을 악으로 몰아버리는 반인간적 작태 등등을 경험하면서, 이제는 안티조선 진영의 개혁은 완전히 포기했다.

6년이 지난 지금 안티조선의 타락을 이끌어왔던 사람들은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있다. 권력교체도 불가능한 자폐화된 세력이 되어버렸다. 이제 정답은 새로운 세대의 진취적이고 새로운 언론관을 구현할 세력의 성장이다. 이미 안티조선의 생명력은 그 임계점을 한참 넘어갔으므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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