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앞으로 다가온 남아공 월드컵의 방송3사 중계권 문제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미 독점중계권을 확보한 SBS 측과 KBS와 MBC 측이 협상에 실패, 양사는 SBS에 대해 민형사 등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선언하고 나섰다. 특히 김인규 사장 체제에서 지속적으로 SBS에 대응해왔던 KBS와 달리, 불안정한 경영체제의 MBC 역시 SBS를 비판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향후 방송3사 간의 대립전선에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KBS와 MBC가 문제삼고 있는 근거는 2006년 5월 30일 KBS 정연주 사장, MBC 최문순 사장, SBS 안국정 사장 간에 맺은 스포츠 합동방송 합의 사안, 즉 코리아풀이다. 이 합의는 2010년 월드컵, 2014년 월드컵, 2016년까지의 올림픽 등에 대해서 방송3사가 공동으로 ‘올림픽 월드컵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중계권 협상에 임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이렇게 공동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제외하고는 KBS, MBC, SBS에서 개별적으로 방송중계권 협상을 할 수 없는다는 합의사항을 명기해놓았다.
그러나 SBS는 이런 코리아풀 합의를 하기 직전인 2006년 5월 8일, 스포츠마케팅 회사인 IB 스포츠 측과 계약을 맺고 남아공 월드컵은 물론 향후 올림픽 등 각종 중계권을 단독으로 계약체결해버린 것이다.
SBS, 방송3사 응찰액 확인 뒤 더 비싼 가격으로 단독 중계권 확보
지난 4월 12일 KBS 측은 기자회견을 갖고 SBS의 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했다. 2006년 5월 26일 방송3사의 코리아풀은 IOC 측에 2016년까지의 각종 올림픽 경기 중계권 구매의향서를 6300만 달러에 제출했다. 그 직후인 2006년 5월 30일 앞서 지적한 방송3사 사장 간에 일체의 개별접촉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 합의문을 작성했다. 그러나 2006년 6월 15일 SBS는 합의문을 깨고 비밀리에 IOC를 방문하여 코리아풀의 응찰액보다 비싼 7200만달러에 계약한다. 또한 SBS는 2006년 8월 7일 1억 4천만달러에 월드컵 단독 중계권도 확보했다.
KBS와 MBC가 문제삼고 있는 부분은 코리아풀의 합의를 지키고 있는 사이 SBS가 이를 악용하여 코리아풀의 응찰액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기습적 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점이다. 즉 KBS와 MBC의 경우는 애초에 협상할 기회조차 없이 SBS에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을 빼앗겼다는 것이다. 이는 MBC 측에 SBS에 소송 의사를 밝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SBS 측도 인정하고 있다.
SBS는 “KBS가 지난 2006년 2월 올림픽, 월드컵 축구 아시아지역 예선경기에 대해 코리아 풀을 깨고 단독 재구매한 뒤 시정을 요구하면서 맺은 것이 2006년 5월의 3사 합의”라고 설명하면서도, “이런 상호불신 속에서 SBS는 불가피하게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방송권을 단독으로 구매하기에 이르렀고 계약 직후 사과와 함께 재판매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며 단독계약에 대해 문제점을 인정했다.
문제는 그 이후의 중계권 재판매 협상에서의 조건이다. SBS는 지상파에 대해서만 재판매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KBS는 케이블TV 등 SBS와 조건이 같아야한다는 점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KBS 측은 SBS가 공동중계에 따른 SBS의 불이익, 각종 비방으로 인한 SBS의 손실, 위험비용 부담 등 모호한 기준으로 추가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SBS는 “지난달 17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월드컵 중계방송권에 대한 성실한 협상을 권고한 이후에도 KBS의 협상자세는 겉과 속이 달랐다”며 “성실한 협상을 하기보다는 특별취재팀을 구성해 SBS 흠집내기에 골몰해 왔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의 위협성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고 반박했다.
SBS 측도 인정하듯이 방송3사의 합의를 깨고 비밀리에 중계권 단독계약을 맺은 행위에 대해서 도덕적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남아 월드컵의 촉박한 일정 상, 보편적 시청권의 개념을 기준으로 결국 방통위의 강제적 중재에 관한 논란이 더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방송법은 올림픽, 월드컵 등 국민 관심 행사의 경우 국민 전체 가구의 90% 이상이 시청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SBS가 유료방송을 포함해 92% 정도를 감당할 수 있어 보편적 시청권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법규정에는 명문화되어있지 않지만, 보편적 시청권에는 당연히 무료방송의 개념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정연우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보편적 시청권은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유료 매체를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면서 "SBS에 유리하게 해석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선진국, 보편적 시청권에 무료 방송 개념 포함시켜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선진국은 국민적 스포츠중계에 무료 공영방송의 중계를 포함시키고 있다. 영국은 공영 BBC와 민영TV의 합동중계, 프랑스는 공영FT와 민영TF1의 합동중계, 일본도 공영 NHK와 민영5개사가 합동중계를 하고 있다. 아틸리아와 독일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반면 공영방송이 유명무실한 미국의 경우 예외적으로 보편적 시청권의 개념이 없다. 다만 KBS 측은 “상업방송 체계인 미국도 언어별로 방송권자를 다르게 하여 실질적으로 보편적 시청권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방송3사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결국에는 방통위가 어떤 방식으로든 합의를 이끌어내야하지 않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규 상 방통위의 중재가 강제력을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민언련의 경우에는 “SBS가 3사 합의를 깨면서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 것에 대해 단호하게 제재할 필요가 있었다” 방통위에 강경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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