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지 1주년이 되자, 지자체 선거에서 부활을 노리는 친노세력들이 속속 봉하마을로 몰려들었다. 한명숙 등 지자체 후보자들은 한 명이라도 더 해당 지역의 유권자를 만나야할 시간도 포기한 채 봉하마을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기형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노리는 바에 대해서는 한겨레신문 사설 ‘노전대통령의 못다한 꿈을 그냥 접을 것인가’에 잘 드러나있다.
“아무리 현실의 벽이 높아도 고인이 매달았던 깃발을 그냥 내릴 수는 없다. 그의 못다 이룬 꿈을 그냥 접을 수도 없다. 노 전 대통령의 1주기를 맞아 1년 전의 분노, 아픔, 다짐을 다시 뒤돌아본다. 그리고 그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빈다”
노무현의 못 이룬 꿈을 감추고 선동에 나선 한겨레신문
한겨레신문은 노무현의 꿈을 다시 이루자며 선동에 나섰지만 노무현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는 감춘다. 왜 그럴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때, 노무현이 이루지 못한 꿈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좌파진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던 한미FTA이다.
둘째, 필생의 꿈인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던졌던 비장승의 승부수인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다.
셋째, 퇴임 직전까지도 강조했던 충청권으로의 수도이전이다.
제대로 된 친노좌파라면 이 세 가지야말로 노무현의 정신을 상징하는 구체적 정책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리라 본다. 만약 한겨레신문에서 이 세 가지를 언급하며 ‘노무현의 못다한 꿈을 이루자’라는 사설을 게재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노무현 전문가들이자 친노세력들이 포진해있는 한겨레신문에서 이를 뻔히 알기 때문에 언급 못하는 것이고, 한명숙, 유시민 등도 마찬가지이다.
노무현이 한미FTA를 추진한 배경에 대해서 바로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은 “중국이 급격히 추격하는 상황에서 서비스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노무현의 한미FTA에 대해서 친노세력 중에서도 유시민이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당시에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이 논란이 되었지만 유시민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의 위험성은 과장되었다”며 노무현을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노무현이 좌파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한미FTA를 추진할 수 있었던 힘은, 사실 그가 운동권 출신이 아니었다는 데에 있다. 노무현은 좌파 학습을 제대로 한 적도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식민지 반봉건'이라는 주사파들의 논리를 체감하지 못했다. 바로 이 점이 노무현이 가진 장점이었다.
그럼 노무현의 못 이룬 꿈, 한미FTA는 지금 어떻게 되어있는가? 자국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은 오바마 정부의 머뭇거림과, 광우병 촛불 난동으로 인한 국론 분열 탓에 방치되어있다. 노무현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 일치단결하여 국제적 관례도 어기며 질질 끌고 있는 오바마 정부와 미국 의회를 압박하여 이를 관철시켜야 한다. 봉하마을로 내려간 친노세력들이 해야할 일은 바로 이런 것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그토록 자국 산업과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자들이 어째서 한미FTA보다 훨씬 위험한 한중FTA에 대해서는 반대 집회 한번 열지 않는지, 그것도 궁금할 따름이다.
노무현의 한나라당 대연정 제안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평생의 꿈
한미FTA가 어찌보면 노무현의 즉흥적 발상의 소산인 반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은 그야말로 노무현이 평생을 바쳐온 지역주의 투쟁의 산물이다. 노무현은 호남과 영남으로부터 공히 인정받는 정치세력을 건설하고 싶어했다. 이것이 바로 민주당을 분당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이어진 정당 파괴 정치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무현이 그토록 떨궈내고 싶어했던 호남의 기득권층들이 끝까지 실세 권력이었던 노무현을 따라오는 바람에 열린우리당조차 호남당이 되어버렸다. 이에 호남에 염증이 난 노무현과 유시민이 던진 승부수가 바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었다.
이 당시 노무현과 유시민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과의 정책 차이는 없다”고 일갈했다. 훗날 노무현은 “대연정을 던지면 한나라당이 흔들릴 줄 알았는데 이쪽이 먼저 흔들렸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는 비단 적의 분열을 꿰하려는 정략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노무현이 평생동안 영남과 호남 모두에게 지지받는 정치세력을 꿈꾸왔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일부를 영남 자민련으로 남겨놓으면서 정계개편을 시도했다고 봐야 한다. 마치 호남에 민주당을 자민련으로 남겨놓은 뒤 열린우리당을 출범시킨 것과 똑같은 전략이다. 애초에 열린우리당 창당 때도 한나라당과 가까운 유인태를 정무수석에 앉힌 뒤, 한나라당 의원들을 빼오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가 김영춘, 김부겸 등 이른바 독수리 5형제로 그쳤다 뿐이지, 노무현의 계획은 원대했던 것이다.
한나라당과 함께 재집권하기를 원했던 노무현의 꿈을 친노세력은 어떻게 오염시키고 있는가? 유시민은 “이명박이 집권해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라며 대연정의 불을 지른 장본인이다. 그런 유시민이 그토록 파괴하고자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민주당과 동교동계에 손을 내밀고 있다.
민주당 후보시절, 동교동이 중심이 된 후단협으로부터 그토록 후보박탈의 협박을 받으면서도 머리 한번 숙이지 않을 정도로, 호남 및 동교동에 대해 증오를 불태웠던 게 노무현이다. 그리고 서민들 푼돈 모아 개혁당을 만들어 이를 지원했던 게 바로 유시민이다. 이런 유시민이 권노갑에 전화하고 호남향후회에 지원요청하는 것 자체가 노무현 정신을 짓밟고 있는 격이다.
노무현의 정신을 되살리려면 민주당에 구걸하지 않고, 오히려 한나라당을 동지로 삼아 영호남 대연정에 다시 나서는 일이다. 이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더 잘알고 있는 인물이 바로 유시민이고, 아마 선거 끝나면 그렇게 하리라 믿는다.
노무현의 숙원인 수도이전에 대해 입도 열지 않는 유시민과 한명숙
마지막으로 노무현이 끝까지 이루고 싶어했던 충청권 수도이전도, 유시민, 한명숙, 송영길 등에 의해 은폐되고 있다. 이들 셋 모두 노무현이 권력을 쥐고 있을 때는 수도를 반드시 이전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막상 노무현의 권력이 사라지고 지자체 선거에 출마해서는 이 공약을 입밖에도 꺼내지 않고 있다.
이러한 태도가 바로 노무현과 노무현의 권력이나 이용하려는 친노세력 간의 결정적 차이라고 본다. 노무현이었면 최소한 서울시장에 출마해서도 자신의 철학 그대로 “수도를 충청권으로 옮기는데 서울시민이 앞장서달라”고 당당히 이야기했을 것이다. 부산에 내려가서 민주당 집권을 위해 세 번이나 몸을 던졌던 그 노무현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친노세력들은 노무현이 그토록 거부했던 박근혜의 수도분할안에 숨어서, 박사모 수준으로 전락해버렸다. 그 누구 한 명도 “노무현이 원한 건 수도분할이 아니라 완전한 수도이전”이라는 점을 대중 앞에 말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이 진정으로 이루고 싶어했던 꿈과 정신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며 노무현을 팔고 있는 친노세력들을 하늘에서 노무현이 보고 있으면 뭐라 그럴까? 노무현과 같은 파괴적 정치인은 다시는 나와서 안 된다고 믿고 있는 필자 같은 사람의 눈에도 “노무현만도 못한 것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는 노무현 추모 1주년 기념일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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