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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패한 민주당

지방선거를 통해 나타난 정치

6.2지방선거가 끝나고 민주당은 마치 승자인냥 득의양양하고 여당은 패자인냥 충격을 먹은 모습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민주당이 승리했다고 득의양양할 상황일까?

각본을 좋아하는 언론들이야 스토리가 태동되는 것에 혈안되어 침을 질질 흘리며 다니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이 만들어 내는 스토리에 자신이 실제보다 더 좋은 미사여구로 묘사되었다고, 자신을 그것과 혼동해선 안된다. 마치 김좌진 장군이 전쟁을 한번 이겼다고 해서 일본제국주의에 도전하는 경쟁자급로 올라섰다라고 여길 수 없는 것과 같다.

정당의 목표는 정권 획득이다. 곧 대선승리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대선 승리에 필수불가결인 서울 경기를 잃었다. 그리고 무소속 친노후보가 경남지사에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대선 때 그 표가 민주당으로 가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게 본다면 민주당은 작은 전투는 이겼을지 모르나 전쟁에서는 패하고만 것이 된다,
한나라당은 여당의 입장으로 도전을 받는 방위하는 입장에서 적의 도전을 효과적으로 쉽게 물리치
지 못하고 궤멸적 타격을 입은 후에야 도전을 물리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쟁에서는 이긴 것이다. 상대로부터의 공격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을지언정 사회를 유지하는데는 문제가 없이 강건함을 가진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2. 이번 선거는 말하자면 민주당은 도전자, 첼린져, 공격하는 입장이었고 한나라당은 디펜딩하는 수비자, 방위하는 자들이었다.

한나라당에게는 이념전 -자신이 여당인 때는 북풍전략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전통적 전술이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작전이 매우 낡은 것임을 쉬 느낄 수 있다. 이는 마치 국민개병제의 논리와 상당히 닮았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1차대전 시절도 아니고 국민·민족 국가로 하나로 뭉쳐서 외적에 대응하자는 논리 또한 세계 어느 구석에서 유행하고 있는지 눈을 뜨고 바라볼 일이다.(매우 국소적이고 웬만하면 할 수 있음에도 안하고 있는 낡은 것이라는 이야기다.) 말마따나 군대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은 거의 드문 경우임을 상기했을 때, 더 많은 지지자의 표를 얻어 제로섬게임을 하는 경쟁에서 이러한 전술을 사용하는 것은, 어느 때보다도 국민에 부드러운 어프로치로 마음을 사야 하는 선거전에서 거칠고 투박한 어프로치를 하는 것과 같다. 마치 국민연금을 내는 것은 의무라 하지만 그것이 사적 보험만치나 서비스 받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여 불만을 사는 것과 같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사적 보험 상품과 국민연금 중 어느 것을 살래? 하고 소비자들에게 묻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야당은 국가가 운용하는 연금제도는 후졌으니 이렇게 물이 많이 새고 방만하여 적자재정이 커진 것을 심판하자고 하면 국민은 물새고 방만하고 적자 부담이 커진 연금을 사 메우자는 것에 투표하는 것보다, 연금을 심판하자는 것에 투표한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가 연금제도를 운용하든 안하든 아무 관계 없는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별 상관 없는 것일 수는 있겠다.


친 한나라당의 소위 보수우파 세력들은 미국을 적지 않은 국민들이 의심하고 배척하는 정서로만 대하려한다고 불만스러울 것이지만, 툭하면 야당을 사실은 북조선 정권 패거리와 한 패거리인 것으로 의심하며 받아들이도록 기대하는 것도 사실 같은 경우인 것이다. 야당에 대한 빨갱이 색칠 전략은 점점 더 신물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만 가는 낡은 전략임에도 말이다.

그리하여 아무리 북조선에 의한 어뢰 격침임을 증거를 들어 보이려해도, 아무리 나름의 과학적이고 움직일 수 없는 근거를 강조해 봐야 수많은 의심을 인터넷상에서 증폭시켜 실시간으로 빠르게 유포하는 전략 앞에 타격을 받는다. 감성적인 것은 빠르게 전달되지만 이지적인 것은 사람의 두뇌에 착근되기 어렵고 인상을 잘 새기지 못한다는 것도 상기하자.

이는 마치 국민개병제로 방대한 군을 게릴라 전으로 타격을 가하는 것과 유사하다. 어찌보면 빠른 어뢰 공격에 타격을 당한 것은 방대하고 낡은 한국군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또한 마찬가지로 본다. 온라인 상에서의 대응은, 평소 때 항시 알바를 고용한다든지 해서의 국민정신교육, 마치 민방위 정신교육 같은 것을 꾸준히 해왔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서의 국민 선동은 게릴라 전을 도모한 세력에 비해 대응 능력 면에서 크게 둔중함을 보인 것이다.

거기다 한국 정부가 전통적으로 이러한 긴장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해 왔고 거짓 술수도 부려왔었기에 더한 야당의 공격도 받게 되는 것이었다. 천안함 조사 결과를 차라리 지방선거 이후에 발표하는 것 또한 여야 막론하고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음이 아닌가 한다.

3. 그렇다고 민주당은 마치 전쟁에서 이겼다고 호도하고 착각하며, 선거를 이끈 지도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구실로 삼아서는 안된다.

민주당은 자잘한 전투에선 이겼지만 전쟁에선 진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곧 중앙행정부를 먹어야 이기는 것, 곧 지방 자잘한 전투는 회피하거나 지더라도 궁극적으로 수도만 점령하면 전쟁은 승리로 끝나는 것인 것과 같은 것이다. 특히 정당의 목적은 곧 정권획득임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렇게 볼 때 민주당은 왜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선거에서 패배했는지 가장 우선시 하여 문제삼아야 한다.

먼저 서울시장 후보를 보자. 민주당은 한명숙씨를 전략 공천할 때 이미 매우 많은 문제를 수반하는 모험적 행위였다. 이는 성실하고 실력있고 준비된 당원과 또 그동안 지지했던 지지자들을 더럽히는 해당행위였다. 그러나 어떤 목적을 위해서인지 이러한 반민주적인 해당행위를 무리하게 끌고나갔다. 그것은 단지 당선이라는 하나의 목표였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 수많은 무리수를 부채로 어깨에 걸머지고 자신의 말도 어겨가며 무리수를 걸며 시장 선거에 나온 후보는, 그 실패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인격에 문제를 보이던 한 후보는 역시나 누구보다도 특별한 부채를 끌어당겨 쓰고 나와 맞은 실패임에도 또다시 책임회피로 숨으며 인격상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필자는 한명숙씨가 서울시장 토론에 나왔을 때 매번 챙겨보면서 이미 시장으로써의 자격은 말할 단계가 되지 못하고, 인격적인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수준으로 진단한 바 있다. (이와 관련된 평론은 http://rbnkim.tistory.com/ 5월 23일 글 참조)

자신의 경쟁자로써의 실력이 되지 못하자, 룰을 어기고 링 밖으로 도망간 후 자신의 실력없음으로 질투심을 발휘하여 야비한 공격을 하는 것은, 약자의 잔인한 야비함으로 더욱 파괴적이며, 사회진화에 커다란 해악이 되는 자질인 것이다. 더러운 야비한 정치 공격이나 하다가 무한히 순환 반복하던 순환적 역사를 보이는 것이 동양의 문제였다.

그리고 이번에 패배의 변을 들어보니, 자신의 시장 후보로써의 패배에 대한 어떠한 책임지는 말은 사라지고 마치 논평객이 되어 국민은 선거에 승리했으니 다음에 더 큰 승리를 이루자는 식의 언변으로 일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민주당 선거본부에서 할 말인 것이지, 특혜를 받아 하나의 전사로써 나와 패배하여, 당원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 특혜를 무색케한 자의 변은 아닌 것이다.

그 특혜는 다른 사람의 피해와 희생을, 당의 희생과 부채를 더욱 크게 생성된 것을 담보로 한 것이었으며, 이 모든 투자가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 자신의 문제는 없는지 사과해도 모자를 판에 논평객으로 탈바꿈하여, 논평으로 시간 죽이기를 통해 자신의 책임은 피해가는 구역질 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저런 자들이 정권을 잡으면 꼴통 공산주의 같은 권위주의와 권력자의 무책임이 판을 치는 조직과 더 나아가 사회가 만들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됬다. 숱한 게릴라 전과 테러를 획책하는 공산 좌파들이 인명 희생이라는 큰 담보를 지면서, 정작 그것을 획책한 지도부는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조차도 마치 자신의 책임은 없는 듯 무한 책임 회피로 논평객의 모습을 보이며, 마치 책임이 없는 듯 회피하고, 그렇게 논평을 하는 최고의 수뇌부라는 권위를 보이며 피해가는, 전형적 공산주의 권력자들의 무책임한 수준을 보게 된 것이다. 노대통령의 무책임한 자살을 대표로 옹호하여 치러낼 수 있었던 이면에도 그녀의 이러한 소녀적 무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노 대통령이 스스로 실패했다고 인정했기에 그는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감성 수준의 소녀. 그러나 그녀가 소녀처럼 따르는 그 정신적 오빠는 반민주적 습태로 상징으로 산화해 가버린 사람이다. 그것을 그대로 따라 체현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를 볼 때 세계에 있어 남성적 정신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필자는 그녀가 그나마 적은 표수차이로 질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동생같이 여겨지는 유시민씨의 공이 크다고 본다. 곧 북풍을 여당 족에 역풍이 되게끔 돌려 치는 역할을 해냈다고 본다. 그러나 장렬히 희생당한 유시민은 자신의 탓과 책임은 지는 발언은 하는 반면 한명숙씨는 여성 특유의 책임 회피를 저렇게 패배의 변을 하는 공적인 자리에서 까지 책임회피하려 다른 논평이나 하면서 시간 죽이는, 곧 토론회에서 보였던 그 야비한 행태를 동일하게 또다시 보인 것이다.

서울시 선거의 패배는 어디까지나 더욱 인물의 문제였다. 왜냐하면 인물을 보고 전략공천하였기 때문에 그 패배는 더욱 인물 스스로가 평가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당이 아닌 말이다. 특히나 구청장, 시의원은 민주당이 대승을 하였음에도 정작 시장은 떨어진 것은 이러한 평가에 더욱 무게를 실어준다. 특히 강동구청장의 경우 6:4로 민주당이 이겼음에도 한 후보 자신은 정작 5% 차이로 크게 져서 당선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송파구의 경우 친노당인 국참당 후보에 의해 민주당 후보가 패배했는데, 송파구의 민주당이면서도 예외적 큰 인기를 누리던 김성순 서울시장 신청자가 친노열우당 세력에 억울하게 배제되었듯, 이 경우 또한 민주당으로써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서울시장선거 패배의 결정적 원인이 송파· 강동에 큰 패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최고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 무책임한 자살을 하고 이 무책임한 행동을 옹호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을 위해 이용하는 반민주적인 행태를 보이며, 당과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무책임하게 자신들의 알량한 이익을 위한 독단적 선택으로 자신의 패거리를 챙겨주던 선택으로 전쟁에서 결정적 패배를 당했음에도 공산주의 사회를 연상케하는 특유의 작은 성과로 결정적 과오는 분식하여 덮는 무책임함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며, 공희준씨도 그렇지만 필자와 경영학에서의 지론인 변화와 혁신이라는 조직 발전의 핵심가치는, 차라리 전쟁에서 이겼어도 많은 전투는 졌고, 국민개병제 같은 것으로 인해 그 피해가 더 컸다며 사퇴하는 한나라당에서 보며, 더 나은 승리를 외치는 민주당은 마치 무책임함으로 날로 쇠약의 일로를 걷는 공산권국가를 연상케 함이다.

민주당이 서울 행정과는 별 관련도 없음이 드러나고, 언론 보도상에서 드러난 것 뿐만이 아닌 토론에서도 인격면에서도 문제를 갖춘 것으로 다시 확인된 후보를 전략공천하여 죽음이 삶에 우선하는 제사 정치를 획책하여 선거를 호도했듯, 한나라당도 북풍에 기대려는 모습을 취해 거기에 다시 선거는 정치논리로 파뭍히게 되었다. 진정 지방자치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정당들은 이러한 욕구를 벗어야 스스로 민주주의 발전을 외칠 수 있는 체면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자잘한 전투에서 조차 승리를 거두고 주요 전투에서 낙승을 거둘 줄 알았던 여당이 인력위주의 방대하고 둔중한 개병제 같은 전략을 사용함으로, 곧 적의 공격은 곧 인명 피해라는 손실에 취약한 전략을 사용하여, 선거전에서 결과적으로 더욱 큰 손실을 입었다. 그것이 바로 안전할 줄 알았던, 지방지차단체장들의 대다수를 야당에 빼앗기게 된 것이다.

3. 친노세력의 아이덴티티, 분열 행위에 대한 심판

친노세력의 하나인 안희정과 이광재가 이겼다고 해서 친노세력의 그 행위까지 선택받았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한명숙이 생각보다 큰 패배를 당하지 않은 면, 친노의 길을 부정했고 민주당 내 변화와 혁신을 상대적으로 가장 잘 체현한 인물 송영길이 여론조사와 달리 큰 승리를 거둔 점, 민주당을 뛰쳐나간 유시민이 억지스런 단일화 도움에도 불구하고 크게 패한 점, 매번 지방선거때마다 거의 번갈아 가면서 하는 송파구청장이 대부분의 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긴 경우였음에도 국참당 후보로 인해 표가 갈려 패배한 것(그렇기에 친노세력들은 노회찬 탓이 아닌 더욱 유시민 탓을 해야한다. 민주당과 국참당의 간극과 진보신당과 민주당의 간극 중 어느 것이 더 큰가?), 모두 친노세력의 분열의 습성은 심판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토론을 주도하고 이벤트성과 이슈도 주도한 유시민이 그와 비교도 되지 않는 실력의 한명숙보다 크게 지지를 얻지 못한 점은 바로 민주당 내에 있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안희정, 이광재가 민주당을 나가 국참당에 있었더라면 과연 당선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국민은 사람을 심판하는 것이 아닌 그 친노의 분열적 습태를 단죄하여, 민주당을 깨고 국참당과 합당하려는 의도를 사전에 심판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친노세력이 마치 이기고 돌아왔다는 듯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게릴라 전술만 하여 항시 사회를 전쟁 상태로 만드는, 군사사회를 획책하는 집단은 진정 진보, 진화를 기대할 수 없다. 이 세상은 누군가의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 욕망과 상관없이 항시 전쟁상태가 본래의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전쟁상태의 이면에는 전쟁을 담당하는 권력자와 지도부의 과오와 모자라는 점은 항시 전쟁우선 논리로 뭍혀버린다.

특히나 세상을 군바리 사회처럼 만들어 자기편이 아니면 정적으로 만들어 숙청을 한후, 자신이 만든 패거리로 전쟁터로 끌고나가 대패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게릴라 각개전투를 각 자 숨어 획책하던 게릴라 습성의 친노세력, 그중에서도 대표주자 유시민 후보는 향촌에 숨어지내다 또다시 야외로 뛰쳐나가 국참당이라는 진지를 구축하고, 돈키호테적으로 자신의 내부 사회 뿐만아니라 외부의 적진까지 뛰어들다, 낡은 방대한(그래서 강함보다 온유한 이미지마저 주는) 인력위주의 개병제를 사용하는 후보에 크게 진 것이다. 진정 게릴라라면 잘 숨어서 의외의 경우에 피습하여야 하나, 자신을 드러내고 그래서 과거의 자신 사회의 내부에 적까지 잠재적으로 위협하는 우를 또다시 범하여, 전투력이 아무리 높아도 숨지 못하고 몸을 그대로 드러내어 인해전술 같은 것에도 캐발리고 말게 되었음을 보게된다.

기존 열우당이라는 나라가 있었을시 경쟁자이던 한나라당은 언론 등 기존의 외교까지 잘 이용하여, 게릴라 전이 아닌 정면에서 협공을 취하며 지속적으로 공격하여 궤멸적 피해를 열우당에 입혔다. 그래서 내부 싸움으로 분열된 그 조직은 궤멸당해 게릴라나 노려야 하는 정도로 뿔뿔히 흩어졌다. 그러나 말로야 후백제 같은 임시 정부를 만들었으나, 이미 그 나라 사회 내부적으로도 그 국가정부에 대한 불신이 심했고 그 국가 내부의 권력자들도 위협받고 잠재적 경쟁관계에 있다보니, 서로 돕지 못하고 외면하며, 후방에서는 오히려 그의 반대편에 도움을 주고 서로 이익을 나누어먹는 일이 벌어진 것으로 의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물론 이를 욕할 것도 아니다. 서로 평화상태에 있는 적과 일시적으로 손 잡아 이름만 같은 편이지 과거와 오늘 자신들을 위협하는 일부 세력을 제거하는 것은 자주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적과 영원한 동지도 없는 것이기에 그렇다. 단지 현실의 적은 명확할 뿐.

그리하여 유시민은 구민주당계, 동교동계, 호남인들에 대해 사과를 하며 지원을 부탁하였지만, 동시에 그 조금 이전에 박정희묘소를 참배하나 김대중 묘소는 무시하는 행동 등은, 마치 그 스스로라 한나라당의 북풍을 국민들이 공감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처럼, 그의 사과 또한 똑같이 과거의 행적이 있음에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달라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마치 중국의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나 자유월남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자신들의 이익을 탈취해가는 정부라는 생각을 들게 했기에 그들이 공산 정부보다 똑똑했지만 심핀받아 물러낫듯이 유시민 또한 토론도 할줄 모르고 자질도 없는 한명숙 보다 후보로써 자질은 훨씬 뛰어났지만 훨싼 큰 외면을 받은 것은 이러한 정치가로서의 능력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다.

마치 자유 타이완이 돈을 퍼 줌으로써 외교관계를 유지시키려 했지만 많은 남미의 국가들이 이것을 서서히 거부해가는 댓가로 중공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듯이 외교적인 면에서도 친노쪽이 몇몇 언론을 지원함으로써의 외교전술은 또한, 그렇지 못한 언론들의 반감을 사고, 더 강한 매력을 지원하는 경쟁자의 외교전술에 눌리는 것이다. 지금 타이완과 수교를 유지하는 나라들조차 크게 중공에 반대를 못 놓듯, 친노쪽 언론도 그러한 상황이다.

4. 이렇게 이번 선거를 보면 마치 전쟁과 같은 제로섬 게임, 서로가 정책간의 승부와 더 나은 행정·정치 서비스로 서로 성장하는 것이 되지 못하고 한 쪽은 더욱 지도부의 무책임함과 실력없음을 전쟁에서의 작은 성과로 분식하여 덮으려 하고, 그래서 날로 쇠약해짐이 예견되고, 한쪽은 지도부의 잘못된 선거 전략으로 인해 많은 당원들이 희생당하고 동시에 전체 국민으로 봐서도 선거를 통한 더 나은 정책과 국민의 필요와 니즈(needs)가 어디있는지 더 알게되는 것은 실종된, 한국 사회와 정치판의 수준을 보여준 한마당이었다.

이러한 면에서 오세훈 시장의 강남3구가 아닌 모든 서울시민의 시장이 되겠다고 한 것, 그리고 북풍을 별로 이용하지 않은 것은 진보한 모습으로 본다. 그래서 선거를 무조건 이기기 위한 야비함이 판치는, 제로섬식 전쟁으로 이용하는 것은 이제 탈피해야 한다. 마치 전쟁이란 미친 짓 후에는 사실은 아무런 승자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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