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재보선 참패 이후로 당 지도부 쇄신을 놓고 주류와 비주류 간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정세균 대표는 재보선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으나 지도부의 만류로 일단은 보류되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어, 결국 당권을 놓고 주류와 비주류 간의 갈등이 극대화될 전망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당이 붕괴될 위험성도 내포되어있다. 전당대회의 당권의 향배에 따라 사실 상 2012년 4월 총선의 공천과 12월 대선후보까지 결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쇄신의 최대 장애물은 정세균 대표의 독재 체제이다. 정세균 대표는 2년 간 당 대표를 역임하면서 당 구석구석을 완전히 장악해놓았다. 특히 486 친노세력과 탄탄한 공조를 하고 있어, 정동영, 손학규, 추미애 등 당 비주류가 현행 선거 방식으로는 도저히 정세균 체제를 뒤엎을 수 없다는 비관론이 팽배하다.
민주당은 당 대표 선거와 최고위원 선거를 따로 하는 기형적인 제도로 운영된다. 이는 정세균 등 당권파들의 권력을 공공히 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 정동영, 손학규, 추미애 등이 당 대표 선거에 도전했을 경우 당선되지 못하면 지도부 참여는 배제된다. 실제로 추미애 의원은 지난 2008년 전당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으나 주류 측의 비토에 의해 당무 참여는 배제되었다. 당의 2인자가 당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정세균 등 당권파, 대표와 최고위원직 싹쓸이 위해 기형적인 제도 고집
이미 일찌감치 전당대회 참여를 기정사실화 해놓은 정세균 대표 측은 여전히 이런 기형적인 제도를 고집하고 있다. 정세균 대표가 당대표에 출마하고 486 측근들인 최재성 의원 등등이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하여 대표와 최고위원직을 싹쓸이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민주당 쇄신파와 박지원 원내대표 등이 제도 변경을 요구하고 있으나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또한 민주당은 100% 대의원 투표로만 당 대표를 선출한다. 2년 간 당을 장악해온 정세균 대표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식. 한나라당의 경우는 30% 여론조사 표를 반영하고 있다. 비주류에서는 국민참여 경선을 주장하고 있으나, 설사 그렇다고 해도 조직력에서 앞선 정세균 대표 측을 압도한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정세균 독재 체제 이외에도 손학규, 정동영, 추미애 등에게는 또 다른 불리한 요소가 있다. 모두 노무현 정권 당시 친노 측에 찍혀있는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손학규는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시민으로부터 “짐싸들고 다니는 보따리 장수”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듣기도 했다. 정동영 의원은 노정권 당시 대표적인 실용노선의 인사로서 친노들에게 전북의 지역주의나 부추기는 수구 인사로 인식된다. 추미애 의원은 2004년 민주당 최고위원으로서 노 전 대통령에 탄핵을 주도하기도 했다.
친노좌파 언론과 시민사회, 정동영과 손학규 지원할 수 있을까
현재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등 친노좌파 언론과 시민사회 등에서는 현재의 정세균 체제애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막상 선거전에 돌입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반노, 비노 측 인사인 정동영, 손학규, 추미애 등에 친노좌파 언론과 시민사회에서 도움을 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또한 친노언론과 시민사회는 정동영, 손학규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특히 486 친노그룹의 양 축인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광재 강원지사가 정세균 체제에 힘을 실어줄 경우 자연스럽게 친노언론과 시민사회에서도 이 흐름을 따라갈 공산이 크다.
이에 비주류 측이 내세우는 카드는 강력한 좌클릭이다. 친노세력과 결합하고 있을 뿐, 이념적으로는 온건 좌파에 속하는 정세균 대표의 보수성을 공격하면서 더욱 좌클릭을 강조하면서 친노좌파 언론과 시민사회의 지지세를 확보해보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비주류 측에서 강경 좌파 노선을 걷고 있는 인사는 천정배 의원과 이종걸 의원 등등이 주도하는 쇄신연대는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민주당을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수준의 좌파 정당으로 노선을 변경하는 작업을 꿰하고 있다.
이런 흐름 탓에 노정권 당시 실용노선의 상징이었던 정동영 의원마저 좌경화 주문에 나서고 있다. 그는 한겨레신문 기자와 만나 “6·2선거 이후 국민들은 민주당이 ‘야당 같은 야당’ 이 되길 바라고 새로운 정체성과 노선을 정립하길 원한다”며 “이제 민주당은 ‘중도진보’ 노선에서 ‘중도’라는 꼬리표를 떼고 ‘담대한 진보’로 가야 한다”고 민주당에서 중도노선을 제거할 것을 선언했다. 정의원의 이러한 행보는 정세균 대표와의 한판 승부를 위한 좌측 포지션 점령의 측면으로 분석되고 있다.
민노당 식 좌경화된 민주당 내에서 정세균보다 더 좌클릭하는 건 불가능
그러나 이러한 정동영 의원의 전략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친노좌파 언론과 시민사회, 또한 민주당 비주류 모두 더욱 더 강력한 투쟁 야당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에 정세균 대표와 당권파들도 이런 흐름을 따라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정세균 대표 입장에서 더욱 더 강력히 4대강 반대투쟁을 선언하고, 혈세낭비식의 퍼주기 좌파 파퓰리즘 정책을 강조만 해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현재 친노좌파 언론과 시민사회의 지형도 상 이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수준의 좌경화된 민주당 내에서 정세균 대표보다 더 좌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동영, 손학규 등이 정세균 대표와 이념적 차별화에 실패한다면, 민주당 전당대회는 결국은 당 내외의 친노세력의 협조와 조직력 싸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친노세력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정동영, 손학규가 이 싸움에서 정세균 대표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문제는 만약 이번 재보선에서 무능함이 입증된 정세균 대표가 친노세력의 협조로 또 다시 당대표로 선출되었을 때이다. 이번 당 대표의 임기는 2012년 8월까지로서 4월 총선의 공천권을 갖게 된다. 그럼 당대표로 선출되자마자 당 내에서는 정세균에 줄서기가 시작되고 이 여파는 총선 뒤의 대선후보 선출까지 미치게 된다. 사실 상 이번 당대표가 총선 공천권과 함께 대선 후보권까지 갖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 때문에 박지원 원내대표 등은 이번에 선출되는 당대표는 대선 불참을 선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세균 대표는 물론 정동영, 손학규 등도 모두 지난 대선 후보로서 차기 대선을 꿈꾸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3자 모두 이해가 일치한다. 이 때문에 지난 대선 때 불출마를 선언한 김근태 상임고문이 대권 불출마를 선언하고 당대표에 출마하는 방안도 물밑에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서로 신뢰관계가 없는 정세균, 정동영, 손학규 간에 합의를 이루기란 쉬지 않다.
만약 김근태 카드도 불발되면 박지원 원내대표가 출마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러나 원내대표에 선출된 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점과 본인 스스로 대권의 꿈을 버렸는지도 확실치 않다.
결국 정세균 독재체제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전당대회 일정이 진행되면 현재로서는 뜻밖의 당 붕괴 수준의 파행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정동영, 손학규 등이 정세균 대표를 이길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전당대회 전에 탈당 분당을 감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비주류를 대표하는 쇄신연대의 경우 민주노동당과 아무런 노선 차이가 없을 정도로 좌경화되어있다. 즉 민주당 비주류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이 합당하여 좌파신당을 창당하는 방법이다.
30여명으로 파악되는 민주당 중도파의 움직임도 관심거리
상황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면 30여명 정도로 파악되는 강봉균, 김효석 등 관료와 전문가 출신 중도파들도 독자세력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과 좌파신당이 선명한 좌파 경쟁을 벌이게 되면 이들 중도파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당권을 누가 잡든 민주당은 민주노동당 수준의 좌파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정세균 대표가 연임되면 당이 좀 더 일찍 붕괴될 것이고, 만약 당권교체가 되면 조금 더 시간이 지연될 차이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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