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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지던트' 낮은 시청률, 유권자 수준 탓

현실 정치와 유권자의 마음은 언제라도 변할 수 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프레지던트’에 대한 반응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일단 시청률은 5-7%대에 머물면서 수목 미니시리즈 기준으로는 크게 낮다. 현재 경쟁작인 ‘마이프린세스’ 등과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프레지던트‘는 시청률로만 보자면 실패작이라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매주 ’프레지던트‘를 보고 있는 5-7%대의 시청자들의 평가는 반대로 매우 높다. 프레지던트 게시판에는 연일 시청자들의 찬사의 글이 올라온다. 즉 ’프레지던트‘는 강력한 마니아층 팬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비례해서 각종 언론들의 평 역시 호의적이다. 시청률은 낮지만 마니아층과 전문가로부터 호평을 받는 이른바 ’명품‘ 드라마인 셈이다.

‘네 멋대로 해라’와 ‘프레지던트’의 공통점은 현실성과 고급 대사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2002년도 MBC에서 방영한 양동근, 이나영 주연의 ’네 멋대로 해라‘가 있었다. 고뇌하는 청년들의 방황과 사랑을 그렸던 이 드라마는 10%대 초반의 시청률에 머물렀지만, 깊이있는 대사와 구성으로 마니아층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 현재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화자가 될 정도이다.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리얼리티’와 고급스런 대사에 있다. ‘프레지던트’는 정치부 기자나 현직 정치인보더라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한국 정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정적에 대한 숙청 및 야합, 이 과정에서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지키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마키아벨리스트적 행태를 보일 수 밖에 없는 주인공 장일준(최수종 역)의 모습은 정치를 어느 정도 아는 시청자가 볼 때는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네 멋대로 해라’ 역시 2000년 대 초반을 살아가던 20대 청년들의 현실을 포장하지 않고 불편할 정도로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정곡을 찌르는 대사로 표현되다.

“대통령은 국민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투표하는 국민이 만드는 것이다”

“배신자보다 더 나쁜 건 패배자이다”

“상대가 조언을 하면 그 조언하는 상대가 누구인지부터 알아보라”

‘프레지던트’에서는 정치판에서 뛰는 기자들이나 정치인들 누구나 다 아는 진실이지만 유권자의 표를 의식해서 감히 발언할 수 없는 말들이 쏟아진다.

‘프레지던트’는 ‘침묵의 함대’로 고단샤 만화상을 수상한 가와구치 카이지의 ‘이글’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일본인 3세 야마오카가 미국의 대통령에 도전하는 이야기이다. 스토리 전개는 유사하지만 ‘프레지던트’는 원작에서의 미국 정치를 한국정치 현실로 바꿔내면서 오히려 원작의 작품성을 뛰어넘고 있다. 원작에 비해서 장일준의 부인인 조소희(하희라)의 역할과 비중이 훨씬 크고, 재벌 2세인 조소희의 오빠의 역할이 줄었다.

작가 손영목, 정현민 등 일본 원작의 작품성 뛰어넘어

‘프레지던트’의 메인자가는 손영목씨이다. 손영목씨는 1992년 역시 명품드라마로서 역사에 기록된 청춘물 ‘내일은 사랑’의 작가로 유명하다. ‘내일은 사랑’은 그 이전만 해도 왜곡과 포장으로 점철된 청춘물과 달리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현실 그대로 보여준 바 있다. 이런 ‘내일은 사랑’은 여전히 마니아팬이 존재하고 있다. 손영목씨 이외에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인 정현민씨가 공동작가로 참여하며 현실성감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프레지던트’는 방영 초기부터 조금 앞선 시기에 방영된 SBS '대물‘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정현민씨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물’과 ‘프레지던트’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물>은 절대선이 등장하는 등 정치를 소재로 한 판타지물이라면 <프레지던트>는 좋은 놈, 나쁜 놈 식의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라 최수종 캐릭터와 주변 참모 캐릭터를 통해 현실정치가 지닌 치열함, 정치인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사실적으로 그린다. 정치와 선거, 그 자체를 파고들어가는 드라마가 될 것이다.”

SBS ‘대물’이 노골적으로 노무현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주인공 고현정을 절대선으로 포장한 반면, ‘프레지던트’는 정현민 작가의 말대로 이분법적 접근을 자제한다. ‘대물’식 이분법으로 보자면 오히려 주인공 ‘장일준’보다는 경쟁자인 김경모(홍요섭)가 더 선에 가까운 인물이다. 또한 ‘대물’이 현실 정치에 적극 개입하여 정치적 선동을 목표로 했다면 ‘프레지던트’는 적절한 장치 등을 통해 특정 정치세력을 연상시키는 점을 차단하고 있다. ‘장일준’은 무상의료 공약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FTA를 찬성하는 일장 연설을 하기도 한다.

친노세력 지원위해 기획된 저질 드라마 ‘대물’의 20% 대 고공 시청률과 대조

각 언론에서는 이러한 명품 드라마 ‘프레지던트’의 시청률이 저조한 이유를 분석하고 있다. 대부분 “시청률이 낮은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다. 특히 정략적 저질 드라마 ‘대물’이 20%대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각 언론에서도 “언젠가는 시청률이 오를 것이다”라는 전망으로 분석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프레지던트’의 시청률 저하의 비밀은 바로 ‘프레지던트’ 드라마 내에서, 혹은 한국 정치의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장일준은 대선 출마 이후 후보자 중 최저 지지율에서 시작했다. 이런 장일준의 지지율을 올리는 방식은 정면 돌파이다. 물론 참모들과 함께 마키아벨리스트적 정치공학을 수시로 활용하고는 있지만, 큰 전략은 일단 “할 말은 다한다”이다. 정적을 잡을 때도 야합보다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공을 펼쳐나간다. 여당 내 실력자 고상렬 앞에서 “순수했던 초선 의원 당시의 마음을 되찾으라”며 각성을 촉구했고, 충청도의 지역 패권자 청암을 잡을 때도 “더 이상 특정 정치인의 지역 패권주의에 함몰되면 안 된다”며 다그친다. 20대 유권자들 앞에서는 “청년들의 실업은 당신들 책임이다”라고 발언하고, 농민들 앞에서는 “지금의 농촌이라면 이대로 망하는 게 맞다”라며 현실 정치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직언을 해내가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장일준, 유사 캐릭터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리 '절대 선' 자처 안 해

이러한 장일준의 모습과 가장 유사한 현실 정치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직설적이며 파격적인 발언으로 직접적으로 국민들의 표심을 잡아나갔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 역시 2%의 지지율에서 출발하여 1년만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장일준과 노 전 대통령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경쟁자나 상대에 대한 포용력이다.

노 전 대통령이 운동권 패거리들에 둘러싸여, 정치를 대립과 갈등의 선과 악 이분법으로만 보았다면, 장일준은 일단 큰 원칙이 합의되면 어떤 경쟁자나 정적도 포용한다. 그러기 위해서 장일준은 본인 스스로 ‘선’을 자처하지 않는다. 마치 개혁을 위해 출생증을 따로 받고 태어난 듯이 선동하는 친노세력과는 크게 다른 점이다.

현재 현실 정치에서 장일준과 같은 방식으로 정치를 하는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야당은 국익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직 권력만을 탈환하기 위해 큰 원칙도 다 뒤집고 특정 언론들과 함께 국론을 분열시키는 데에만 혈안이다. 여당은 이러한 야당의 공세에 지레 겁먹고 진정으로 숨어있는 국민의 뜻을 찾아내기 보다는 여론조사표와 포털 뉴스만 보고 파퓰리즘식으로 대중과 야합하려 들고 있다.

만약 현실정치에서 장일준과 같은 대선주자가 있다면? 당연히 후보군에도 들지 못한 채 바닥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현실 정치의 수준이자, 대한민국 국민들의 수준이며 대한미국 시청자들의 수준이다. ‘프레지던트’의 시청률 저하의 비밀은 대한민국의 유권자와 시청자들이 ‘프레지던트’에서 보여지는 고급 정치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재보선 3개월, 총선 1년, 대선 2년 남아, ‘프레지던트’는 한달 내 종영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민과 시청자들은 지나칠 정도로 역동적이다. 빙산의 껍데기에 불과한 표피적인 여론과 정파적 기관지들의 보도를 무시하고 자기 갈 길을 가는 정치인이 있다면, 얼마든지 급부상할 수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장일준 만큼만 할 수 있으면 된다.

‘프레지던트’의 시청률 역시 이러한 현실 정치, 전체 국민들의 정치의식의 변화에 따라 언제라도 상승할 것이다. 단, 재보선이 3개월, 총선이 1년, 대선이 2년이나 남은 반면 ‘프레지던트’의 종영은 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드라마와 현실의 시간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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