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디자인연구소의 김대호 소장과 방통대 김기원 교수의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관련 비판글이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물론 뉴데일리, 독립신문, 프런티어타임즈 등 보수우파 인터넷신문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희망버스 사태에 대해 보수우파 언론이 심각하게 우려를 하는 상황에서 진보좌파 진영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반면 이들의 글은 자신들의 진영인 진보좌파 언론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이후 기자협회보, 프레시안, 미디어오늘 등에서는 이들의 뜻은 생략한 채, 오직 보수우파 언론의 정략만 부각시켰다. 김대호 소장과 김기원 교수는 마치 보수우파 언론에 이용당하는 허수아비들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시각은 강준만 교수가 제기한 안티조선의 기본 노선이다. 강교수는 안티조선의 실천적 방법으로 진보좌파 진영의 지식인들이 조선일보에 칼럼기고와 인터뷰를 거부하는 것을 제안했다. 이러한 안티조선 운동은 노무현 정권 들어서면서 조선 뿐 아니라 중앙과 동아에도 확산되었고, 이들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인물들은 무차별적으로 매도당했다. 이는 보수신문과 사사건건 부딪혔던 노무현 정권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었고,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했던 인물들은 다수가 정권에서 한자리씩을 차지했다. 그러다보니 안티조선 초기 시절에 이러한 운동방식에 부정적 의견을 냈던 인물들이 갑자기 강경 안티조선 투사로 변신하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벌어졌다. 안티조선 운동의 변천은 하나의 사회운동이 어떻게 권력화되고 타락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안티조선의 실패를 선언한 강준만, 그러나 그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어
강준만 교수는 노무현 정권 시절 ‘안티조선의 실패’를 선언하며 “한국의 신문사들이 너무 당파적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에, 논조에 상관없이 다양한 칼럼들을 수용해야한다”며 운동방식의 변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한번 권력에 타락한 운동은 그 운동의 제창자라 해도 바로잡을 수 없었다. 이러한 타락한 운동의 잔재가 이번 김대호 소장과 김기원 교수의 내부비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보수우파 진영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 조갑제 대표와 함께 애국우파 운동에 참여하던 중앙대 법대의 이상돈 교수가 우파진영을 맹비판하기 시작하면서, 이 교수의 주장을 보수우파 진영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된 반면, 뷰스앤뉴스 등 진보좌파 언론에는 단골로 소개되는 현상이다. 형식만 토론의 형태를 띄고 있지 모든 조작기술을 동원해 ‘PD수첩’ 수준의 정략을 보여주는 MBC ‘100분토론’에서 이상돈 교수는 늘 보수 논객으로 참여한다. 보수우파 진영에서는 누구도 보수인사로 보지 않는 데도, 그는 MBC와 경향신문 등 진보좌파 언론에서는 보수논객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섬세하게 검토하면 김대호 소장과 이상돈 교수의 사례는 전혀 다르다. 보수우파 진영의 최대 현안은 ‘북한’이다. 그 다음 이슈인 전교조와 노조의 문제 역시 북한 이슈의 한 줄기이다. 북한 문제에 대한 입장이 분명하지 않고는 보수진영에서 논객이 될 수 없다.
이상돈 교수는 보수우파 진영을 비판하면서부터, 천안함 사태, 연평 폭격 사건 등에서 이른바 친북좌파 진영을 비판하지 않는다. 보수우파 논객이 북한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는 건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면 이상돈 교수가 만약 북한 문제로 친북좌파 진영을 비판했다면 그가 MBC와 경향신문 등에서 우대를 받았을 리도 없다. 이상돈 교수의 태도는 고도의 언론플레이적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이다. 고로 양심적인 진보좌파 언론이라면 이상돈 교수를 보수우파 논객의 대표로 띄워서는 안 된다. 그러나 조작도 서슴없이 해대는 MBC와 같은 정치세력에게 양심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사치이다.
반면 김대호 소장과 김기원 교수는 진보좌파 진영의 최대 이슈인 ‘공정’, ‘분배’, ‘평등’, '정의‘의 이슈를 다루고 있다. 그 해법과 대안이 다를 뿐이지, 기본 노선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겨레, 오마이뉴스, 미디어오늘 등 진보좌파 언론에서는 이들의 문제의식에 대해 일체의 지면도 할애하지 않고 있다. 진보좌파 언론이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 ’완전철폐‘라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지령과 다른 일체의 대안적 논의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최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편집상으로 중도노선으로의 확장 전략을 쓰는 것으로 파악된다. 조선일보에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를 고정 칼럼니스트로 스카웃하고, 중앙선데이에서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등을 소개한 것들도 그러한 시도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보수우파 진영에서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불편하게 보는 시각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조선과 중앙은 200만명의 독자들에게 보급되는 메이저 신문사들이므로 노선의 원칙 하나로만 지면을 채울 수는 없다. 더구나 급격히 부각되는 강남좌파 세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독자층이다. 그 점에서 언론사의 특성은 이해해주어야 한다.
아니, 오히려 이를 더 적극적으로 격려해야 할 필요도 있다. 진보좌파 진영은 공고한 운동권 인맥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은 물론, 지식계, 언론계의 세력교체가 매우 더딜 수밖에 없다. 기존의 낡은 좌파적 관념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세력이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한겨레, 경향, 프레시안, 미디어오늘 등에서 들어본다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하다. 그럼 이들은 대체 어떤 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대중에 전달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 하더라도 언론이 지닌 권위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글 대부분은 언론과 포털의 상호작용으로 널리 유포된다. 즉 진보좌파 진영 내부 개혁에 대한 콘텐츠는 현재로서는 언론의 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유통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김대호 소장의 희망버스 관련 글을 중앙일보가 보도하지 않았으면 사회적 이슈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보수언론은 진보좌파 내의 내부비판 세력을 적극 보도해야
그렇다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추구해야 하는 중도 전략의 틀이 나온다. 조국, 장하준, 장하성 등 진보좌파 진영의 기득권 세력의 목소리를 정보 차원에서 전달하는 것 이외에, 이들 기득권 세력의 문제를 짚어내는 신세력을 찾아내라는 것이다. 대부분 진보좌파 진영의 내부비판은 보수우파적 기준으로도 충분히 수용할 만한 것들이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결코 말처럼 쉽지는 않다. 안티조선의 어두운 잔재 탓에 보수우파 언론에 메시지를 전한 진보좌파 논객들은 암묵적인 보복을 당하게 된다. 특히 김대호 소장이나 김기원 교수가 비판한 거대 노조 중에서도 가장 정치적인 KBS, MBC, SBS 등 방송노조는 이들의 목소리를 방송에서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논객이 꼭 방송에 출연해야 하느냐는 반문도 있겠지만, 논객이 자신의 메시지를 더 많은 대중에 알리는 것은 논객의 사회적 책임과도 연관이 있다. 그 점에서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에 한번 소개되었다가 방송3사로부터 섭외가 끊기게 되면 이만 저만 손해보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한겨레신문보다 더 한 좌파적 선동에 나서고 있는 미디어다음 등 포털사로부터의 보복도 신경 써야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실력은 형편없는 데도, 미디어에서 뜨고 있는 논객들 대부분은 포털사 직원들이 띄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년 전 필자는 보수언론사 데스크에 “한 진보논객을 눈여겨 보라”고 권한 적이 있다. 데스크는 “훌륭한 논객이고 잘 활동하고 있는데 괜히 우리 신문사에서 소개했다가 폐나 끼치지 않을까 모르겠다”는 답을 했다. 이 정도로 매체와 논객 간의 관계가 정략적으로 뒤틀려 있는 것이다.
강준만 교수가 솔선수범하여 보수우파 신문에 기고해야
필자는 여전히 강준만 교수가 그릇된 안티조선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해주기를 바란다. 지금의 안티조선의 잔재는 오직 진보좌파 진영의 내부비판 세력의 입을 틀어막는데 악용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강교수가 누구보다 앞장서서 좌우소통을 주장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논객과 매체 간의 벽을 이렇게 높이 쌓아놓고 무슨 좌우소통을 말하는가. 본인부터 조선일보까지는 몰라도, 동아일보, 중앙일보에 ‘강남좌파’ 관련이라도 기고를 하는 게 마땅하지 않겠는가.
또한 진보좌파 언론은 정당의 기관지를 자임하지 않는다면, 소재의 폭을 넓혀라. 아무리 당파성을 존중한다 해도, 북한인권 문제나 거대 권력 포털 비판 칼럼마저 금기시하면서 언론의 타이틀은 왜 달고 있는지 모르겠다.
선거만 보면 진보좌파와 보수우파가 대충 5:5로 분할되는데 유독 신문시장에서는 8:2 구도가 변하지 않는 것은 다른 환경적 문제도 있겠지만 오직 당리당략만으로 편집을 하는 진보좌파 신문사들의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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