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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벌어진 틈새에서 한국영화산업 호기 맞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침공은 변수 아닌 상수 나머지 중급영화 시장 완전히 붙잡아야


미국영화산업이 한바탕 발칵 뒤집혔다. 지난 3/4분기 이후 어느 정도 예상은 되고 있었지만, 4/4분기가 끝나고 막상 2011년 산업결산이 나오자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기 때문이다. 북미지역 총 흥행수익은 101억7380만 달러로 그리 나쁘진 않았다. 2009년, 2010년에 이어 역대 3위다. 그러나 이는 전반적 인플레이션에 따른 입장료 상승 탓이었을 뿐 실제 대중호응도는 달랐다.

팔린 영화 입장권 수는 12억7810만장. 역대 최고였던 2002년의 15억7570만장에는 한참 못 미치고, 바로 지난해와 비교해 봐도 4.6%가 하락한 수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는 지난 1995년 이후 16년 만에 최초로 전체 입장권 수가 13억장 아래로 내려간 수치다. 한국처럼 관객수 기준으로 산정한다면 영화흥행에 있어 지난 16년 간 최악의 한 해였단 얘기다.

북미 영화미디어는 이 같은 대참패에 대해 일제히 열변을 털어놓았다. 박스오피스모조는 1월6일자 기사‘속편들과 3D도 2011년을 구제할 수는 없었다’에서 이 같은 현상이 2011년만의 문제가 아님을 지적했다.“2011년과 2010년을 가른 것은 약 4억 달러 차이”라면서“이것은 2010년 초반‘아바타’가 4억78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갈라진 차이다. 2010년과 2011년은 사실상 1/4 분기에 21%나 차이가 나면서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아바타’가 없었더라면 이미 2010년부터도 13억장 이하로 입장권 판매가 떨어졌으리란 얘기다.

극단적 경제 불황에 3D로 추가수익 기대한 할리우드의 오판

그럼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물론 기본적으로 모든 부진의 원인은 미국의 불안정한 경제상황과 극단까지 치달은 고용불안에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의 고용불안이 극심한 상황인데, 그 젊은 층은 바로 영화 등 대중문화상품 소비의 주역이기도 하다. 주 소비층의 경제사정이 악화되기 시작하면 당연히 산업은 전반적으로 저하될 수밖에 없다. 단순한 논리다.

그러나 그저 그런 정도 사정이었다면 지금처럼 극단적인 추락은 없었을지 모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적어도‘16년 만의 최악’수준까지 떨어지진 않았으리란 것이다. 영화소비는 여가활용에 있어 일종의 행동심리다. 아무리 경제상황이 악화돼도 한꺼번에 폭락하진 않는다. 소위‘하던 까라’가 남기 때문이다.

미국영화산업의 진정한 문제는, 이처럼 안 그래도 안 좋은 상황을 자신들이 알아서 더욱 악화시켰다는데 있다. 가장 큰 문제가 바로 3D 범람이었다. 2011년 3D로 전국개봉에 나선 영화의 수는 총 35편이었다. 22편이 등장한 2010년에 비해 59% 성장한 수치다. 이 같은 3D 전략의 핵심은 단순했다. 전반적으로 영화 관객층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소위‘볼 사람’만 붙잡고 더 우려먹겠다는 발상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3D 입장료는 일반 2D에 비해 25~40%가량 비싸다.

그런데 그런 전략도 개체수 측면에서 범람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진다.‘전반적으로’입장료가 상승한 듯한 인상을 줘, 역시‘전반적으로’영화관람 자체가 기피되는 현상을 낳게 된다. 1년에 3~4번 정도라면 어느 정도 비싼 가격으로 나와도 유원지 방문 차원에서 극장을 찾기도 하지만, 시장이 아예 3D 중심으로 재편되면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1년에 10번이나 유원지를 방문하는 일반대중은 거의 존재하질 않는다.

그리고 3D 영화는 2D로 관람했을 시‘뭔가 부족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어, 입장료에 불만이 생길 시 대신 2D로 관람하는 게 아니라 아예 관람을 포기해버리는 상황을 낳곤 한다. 의외로‘구멍’이 많은 전략이었던 셈이다.

그런 탓에 2011년 전체 3D 입장료 수익은 대략 17억 달러 정도로 떨어진 상태다. 2010년엔 대략 20억 달러 선이었다. 영화 개체수는 59% 상승했는데, 수익 15% 정도 감소한 셈이다. 이러면 영화 편당 수익률은 당연히 그보다 훨씬 더 떨어지게 된다. 한 마디로‘3D의 악몽’이 이제 막 발동하기 시작했단 얘기다. 최소한 2011년 이후로 기획될 영화들은 3D를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해외시장 승부 위해 자국시장 파탄 선택한 할리우드

미국영화산업의 또 다른 오판은, 시장을 지나치게 속편 위주로 재편해놓았단 점이다. 현재 개봉중인‘미션 임파서블-고스트 프로토콜’과‘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등의 추정 최종수익을 감안했을 때, 2011년의 최종 북미흥행 베스트 10은 다음과 같다.

1.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
2. 트랜스포머 3
3. 브레이킹 던 1부
4. 행오버 2
5. 캐리비언의 해적 4: 낯선 조류
6. 미션 임파서블-고스트 프로토콜
7. 분노의 질주 : 언리미티드
8. 카 2
9.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
10. 토르: 천둥의 신

이중 속편이 아닌 영화는 10위에 랭크된‘토르: 천둥의 신’뿐이다. 물론 그 뒤 25위권까지 범위를 넓혀 봐도‘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쿵푸 팬더 2’ ‘장화 신은 고양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앨빈과 슈퍼밴드 3’ ‘파라노말 액티비티 3’등 속편/스핀오프/프리퀄 등이 넘실댄다.

물론 미국영화산업이 속편의 안정적 흥행에 기대는 구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도가 좀 심하다. 특히‘해리 포터’나‘트와일라잇’ ‘캐리비언의 해적’ ‘미션 임파서블’ ‘분노의 질주’ ‘엑스맨’ 등 프랜차이즈 한계로 일컬어지는‘3편’이상을 넘어가는 초장기 프랜차이즈 속편들이 너무 많다.

왜 그 정도로 속편에 집착하고 있는 걸까. 이유는 단순하다. 북미시장의 경우 프랜차이즈가 장기화되면 대중피로도가 일어 당연히 흥행이 떨어지게 마련이지만, 해외시장은 정확히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해외시장은 프랜차이즈가‘지속될수록’더 안정적일뿐더러, 더 높은 수익을 올려주기 일쑤다. 기본적으로 진지한 상품은 자국영화를 통해 소비하고, 대신 유원지적 성격의 블록버스터를 할리우드영화로 소비하는 패턴이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어차피 유원지 온 기분으로 즐기는 상품이라면 신선도에 대한 요구보다는 신뢰감이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실제 유원지에 가 봐도 입장객들이 가장 많이 타는 놀이기구는 새로 들여놓은 것이 아니라 십 수 년 전부터‘보장된 재미’를 선사해온 롤러코스터나 자이로드롭 따위다.

결국 미국영화산업은 해외시장에서의 승부를 위해 정작 자국시장에서의 파탄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실제로 성과를 거두긴 했다. 2011년은 미국영화산업 사상 최초로 세계흥행수익 10억 달러 이상 영화가 3편이나 나온 해가 됐다.‘해리 포터’ ‘트랜스포머’ ‘캐리비언의 해적’프랜차이즈 신작들이다. 5억 달러 이상작도 최종적으로 11~12편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전체 장사’는 성공한 한 해였던 셈이다.

공룡산업 문제점 한 몸에 안고 있는 할리우드

그러나 이런 식의 흥행전략은 당연히 위험하다. 어느 문화상품이건 기본적으로 안에서 끓어오르지 않으면 밖으로 넘쳐나지도 않는다. 자국 내에서 열기가 일어나야 문화상품의 발전과 진화도 더 빨리 진행되기 때문이다. 1970년대 미국영화산업이 증명해준 부분이다. 반면 안은 죽여 놓고 밖에서의 승부에만 집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는, 이미 한국도 2004~2006년 사이 한류드라마 열풍 당시 경험해본 일이 있다. 해외에서 무엇이 먹히는지만 연구하다 졸속‘겨울연가’유사작들만 넘실댄 채 열풍이 끝나버렸다.

이런 상황임에도 아직 미국영화산업은 전체 방향성 전환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상태다. 2011년을 몸살 나게 한 속편 중심 전략은 올해도 똑같이 진행될 예정이고, 3D에 대한 미련도 아직 버리지 못한 상태다. 그 정도 공룡산업이 한 번 움직이려면 적어도 2~3년 이상은 더 걸릴 것이다. 지금 같은‘자국시장 붕괴-해외시장 활황’상황은 앞으로도 수 년 간 꾸준히 재연되리란 얘기다.

이런 점에서 세계영화산업을 이끈다는 미국영화산업의 체질은 확실히 위험하다. 한국 등 여타 영화산업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침략을‘받아온’입장이다. 그런 만큼 미국영화산업의 전략에 민감하다. 그러나 미국은 반대로 침략을‘해온’입장이다. 그만큼 시장변화에 민감성이 크게 떨어져 있는 상태인데다, 산업규모가 너무 비대해 여타 국가들처럼 재빠른 전략수정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한 마디로 공룡산업이 지닌 문제점을 한 몸에 안고 있는 셈이다.

한국 등 미국 외 영화산업은 어떤 의미에선 호기를 맞았다고 볼 수도 있다. 미국 외 영화산업의 가장 큰 악몽은, 미국영화산업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블록버스터들을 밀고 들어오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건 당연히 시장침략의 상수로서 어느 정도 대비가 되고 있었다.

문제는 미국영화산업이 그 외 진지한 드라마, 날카로운 코미디, 예리한 호러 등 자국 상품으로의 대체가 원만히 이뤄진 장르들을 들고 침략해올 때 발생했다. 그런데 지금 미국영화산업은 그런‘틈새’공략을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패턴이 고착되면서 무조건‘큰 파이’를 향해서만 달려가고 있다.

시장전략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타이밍’

이 시기를 잘 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언급했듯, 한국이나 프랑스, 홍콩, 스페인 등 눈치 빠른 영화선진국들은 시장상황에 적응해 자국대중심리를 치는 중급영화들로 시장을 재편한 상태다. 그리고 그만큼 성과도 얻고 있다. 한국은 5년 만에 시장점유율 50%대를 회복했고, 홍콩에선 7년 만에‘쿵푸 허슬’기록을 깬 중화권영화가 등장했다.

이제 남은 일본, 독일 등도 서서히 전략수정에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영화산업에서‘간만에’드러난 균열을 양껏 이용해봐야 한다. 이 기회를 자국 상품 신뢰도 확충의 기회로도 삼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엔가,‘자막 읽는 것이 귀찮아’자국영화들만 관람한다는 새로운 관객층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 상황까지 가버린다면, 미국영화산업이‘트랜스포머’28편을 만들어 내건,‘캐리비언의 해적 17: 잭 스패로우, 화성에 가다’를 만들어 내건, 각자의 시장파이를 확실히 쥐고서 다시는 1980~90년대 같은 미국영화침략 상황을 맞이하지 않게 될 것이다. 모든 시장전략의 핵심은, 역시 뭐니 뭐니 해도‘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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