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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선생 유골사진으로 본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몇가지 의문...

피해자를 묶어서 옆으로 뉘여놓고 내려치지 않는한, 그런 흔적은 불가능!


이미 37년이나 지난 1975년, 등반중에 의문의 추락사를 했던 장준하선생사건은 발생당시부터 떠들석한 논란을 불렀던 커다란 의문사의 하나로 수많은 의혹과논란꺼리였거니와 ,최근에 묘소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나타난 장선생의 유골사진은 누가봐도, 어떤 인위적인 물체의 가격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보기 딱 좋을만큼 오른쪽 귀 관자노리부터 지름이 무려 6센티나 되도록 원형으로 파손되어 있는 자국이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필자역시 그런분야에 전문성이 전혀 없는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하지만 아무리 봐도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몇가지 의문을 갖지 않을수 없다는 것이다.


첫째: 그렇게 큰흔적이 누군가의 가격으로 생긴것이라면 못이나 박는 망치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크고 무거운 오함마로 친게 분명하다ᆞ

둘째:오함마로 쳤다해도, 이마나 뒤통수도 아닌 오른쪽 귀 관자노리부위를 그렇게 정확하게 내려 치려면 그전에 피해자를 완전히 기절시키거나 온몸을 묶어서 옆으로 뉘여놓고 단번에 즉사할 정도로 내려쳤다면 모를까 그당시 등산도 자주 다니던, 60도 채 안된 피해자가 눈뜨고 걸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앞도 뒤도아닌, 관자노리를 망치보다 훨씬 큰 오함마나 그 비슷한 둔기로 정확히 겨냥, 즉사케 한다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게 옳다.



셋째:눈뜨고 걸어가고 있는사람의 관자노리를 그렇게 큰 둔기로 번개같이 내려 치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나머지 가능성은 등반중에 어떤바위 같은데 걸터앉아 쉬면서 잠시 한눈팔고 있는 피해자를, 바로 뒤나 옆에서 선 자세에서 야구방망이 휘두르는 정도로 힘을 모아 내려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뒤에서 갑자기 절벽으로 밀어버렸거나 본인의 실족으로 추락사 했을 세가지 가능성밖에 없다고 봐야한다는 것.


넷째:등산중에 잠시 쉬면서 잠깐 한눈파는 틈을 노려서 오른쪽 관자노리를 오함마나 그비슷한 둔기로 내리 쳐서, 단번에 즉사토록 하는건 걸어가고있는 상태에서 보다는 다소 가능할수 있다해도,그런경우 결국 가해자는 그만큼 강력한 왼손잡이로(앞에서 가격했다면) 일격필살의 대단한 전문 킬러였다는 것이지만 , 그역시 아무래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것이 상식에 맞을것이고, 더구나 범인이 최후의 목격자이자 동반자였던 김모씨라면 그 직전까지 상당히 크고 무거운 그둔기를 (70년대 중반에는 요즘처럼 그렇게 깔끔하고 세련된 오함마가 거의 없었다)깜쪽같이 숨겨서 동행해야 하는 점등ᆢ그역시 사실상 불가능했을것이고, 사건발생 직후부터 수십번이나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렇게나 용의점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을리가 만무하다는 것.



다섯째: 결국나머지 가능성은 누군가 뒤에서 갑자기 절벽밑으로 밀었거나 본인이 운나쁘게 실족했을두가지 가능성밖에 없다고 봐야하지만,뒤에서 밀었던 실족해서 추락했던, 머리뼈에 그만큼이나 큰 타격을 입었다면 팔ᆞ다리. 등 온몸이 부러지고 절단났을텐데..왜 다른 신체부위는 별다른 손상이 없냐는것???

여섯째: 이도 저도 아니라면, 마지막 남는 의문은 그역시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결국 ,근 40년만에 이장하는 과정에서 땅속에서 삭아버린 탓으로 손상되기 쉬운 유골이 이장하는 과정에서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해도 왜 하필 그부위만 집중적으로 그토록 선명하게 훼손되었느냐 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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