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사태를 지켜보면서 만감이 교차되는 아픔을 느낀다. 그리고 진한 연민의 정을 느낀다. 필자(筆者)도 같은 사내이기 때문이요, 윤창중을 향한 연민과 아픔 속에는 이 험난한 시대에 ‘남자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일반의 남자들이 갖는 보편적이며 근원적인 회의(懷疑)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운창중이여, 남자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사랑하는 여인을 둔 남자는 더욱 무엇이겠는가. 그대는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자이기에 여인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이다. 꽃을 꺾는 남자는 진정한 사내가 아니다. 진정한 남자는 꽃을 가꾸지 꺾지 않는다.
사랑을 받는 남자는 드물다. 남자는 사랑을 주는 존재에 가깝다. 밤을 새워 편지를 쓰고,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에 안고 평생을 살아가는 못난 남자도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옛 시절 그녀가 다니던 길목을 찾아가 걸어보는 단심(丹心)어린 단 하나의 사랑. 그 사랑을 위해 천년을 기다려 다시 태어나는 일도 남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상대의 가슴에 서슴없이 총을 겨누기도 하고,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높은 절벽에 핀 철쭉꽃을 꺾어다 바친 노인의 이야기도 오직 남자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남자는 사랑을 얻은 후에도, 노동의 고단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랑을 보전(保全)하기 위해, 들로 밭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를 위해 아름다운 옷을 준비해야 하고, 그녀를 위해 먹을 것을 그리고 튼튼한 침대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잠들기 전에 남자는 잠들지 못 한다. 끝없는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고, 틈 날 때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어린 투정을 받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고, 그녀의 몸짓을 따라 함께 살아온 육신(肉身)을 부벼보는 긴긴 겨울밤. 하얀 눈 소복한 창가에 겨울별빛이 질 때까지 남자는 그녀를 두고 먼저 잠들지 못 한다.
남자는 사랑을 두고 먼저 죽지 못 한다. 없으면 외로워 할 것을, 나 없으면 굶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홀로 남은 여린 그녀의 어깨 위에 세상이란 무거운 짐을 지울 수 없기에 남자는 사랑을 두고 먼저 죽지 못 한다. 그녀의 무덤 둘레에 고운 영산홍 한 그루 심어 놓기 전에는 남자는 먼저 죽지 않는다.
남자는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남자는 죽어서도 떠나지 못 한다. 다시 그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남자는 사랑을 떠나지 않는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운명이 있을 뿐. 남자의 가슴에 영원히 떠나는 들길은 없다. 별이 되어서라도 찾아오고, 별의 운명을 노래하면서 저어기 밤하늘에 빛나고 있을 뿐이다.
어느덧 세상이 평등을 말하면서 호주제도 군가산점도 없어지고, 오직 남자에게만 성추행이 있고 오직 남자만 죄인처럼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세상의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오직 세상의 남자일 것이다.
그러나 이 많은 억울(抑鬱)함을 외면하고, 사랑을 위하여 다시 돌아오는 별처럼 억년의 바람이 부는 하늘 아래에서 다시 또 사랑한다는 것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오늘도 수많은 세상의 여자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지금도 나는 누군가를 위해 밤을 새워 편지를 쓰고 아침을 맞는다.
이것이 사내라면 사내다. 윤창중이여, 이 못난 사내여.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