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기사는 뉴탐사 측과 특약으로 뉴탐사의 기사 ‘한동훈 10억 소송 또 선고 연기…입증 실패에도 시간 벌어주기 의혹’을 그대로 전재하는 것입니다. |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10억원 손해배상 소송에서 재판부가 주요 정치 일정을 의식해 판결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중앙지법 제14민사부는 6월 25일로 예정된 선고를 8월 13일로 연기하면서 "휴정기간 중 소송기록 검토"라는 사유를 제시했다. 이는 6월 3일 대통령 선거와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라는 핵심 정치 일정을 정교하게 회피한 것으로 분석된다.
두 차례 연기로 드러난 수상한 패턴
재판 기록을 분석한 결과 이 사건은 이미 한 차례 선고가 연기된 바 있다. 지난해 8월 21일 첼리스트에 대한 증인신문을 끝으로 변론종결했으나, 54일 만인 10월 14일 변론재개를 결정했다. 당초 10월 16일 판결선고가 예정됐으나 선고 이틀 전 돌연 변론재개로 무산됐다.
재판부는 당시 "원고 측이 참고서면을 다수 제출하고 피고 측도 답변서를 여러 건 제출하면서 사실관계를 좀 더 확인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측이 제출한 새로운 자료의 실질적 증거 가치는 의문시됐다.
올해 들어서는 더욱 의혹스러운 연기가 이뤄졌다. 5월 14일 재차 변론종결 후 6월 20일 기일변경명령을 통해 선고를 7주나 연기했다. 재판부가 제시한 사유는 "휴정기간 중 소송기록을 찬찬히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2년 6개월간 진행된 사건에서 추가로 7주간 검토가 필요한 합리적 이유는 찾기 어렵다.
정치 일정과 정확히 일치하는 연기 시점
선고일이 주요 정치 일정과 정교하게 연동된다는 점이 가장 의혹스럽다. 지난해 10월 16일 첫 번째 연기는 하반기 재보궐선거와 국정감사가 집중된 시기였다. 왜 하필 이 시기를 피해갔는지 의문이다.
올해 두 번째 연기는 더욱 노골적이다. 원래 선고 예정일인 6월 25일은 6월 3일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 지 22일 후였다. 대선 후 정치 지형이 급변하는 민감한 시점이었다.
연기된 8월 13일은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시기와 절묘하게 맞물린다. 국민의힘이 8월 전당대회 개최를 확정했지만 구체적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전당대회 일정에 따라 8월 13일 판결이 전당대회 직전이 될지 직후가 될지 결정될 상황이다. 한동훈의 정치적 거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판결을 당내 최대 정치 이벤트와 연계시킨 것이다.
2년 6개월간 입증 실패, 그럼에도 기회는 무한정
한동훈 측은 2022년 12월 소장 접수 이후 지금까지 청담동 술자리 부재에 대한 구체적 알리바이를 단 한 건도 제시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여러 차례 "인증이 아닌 물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했지만 한동훈은 첼리스트 뒤에만 숨어 있다. 2022년 7월 19일 당일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한동훈 측은 답변서, 준비서면, 증거제출서 등을 수십 차례 제출했지만 핵심 쟁점인 부재 증명에는 모두 실패했다. 타워팰리스 출입 CCTV, 통신기록, 신용카드 사용내역 같은 가장 기본적인 객관적 증거조차 한 건도 제출되지 않았다.
지난해 첫 번째 변론재개 계기가 된 김한메 녹취록도 실상은 허무했다. 실제 녹취를 들어보면 첼리스트는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으며, 김한메 대표도 나중에 강진구 기자의 당시 발언이 허위 인식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해명했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에도 첼리스트가 청담동 술자리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계속 기회를 주고 있다. 원고인 한동훈의 패소가 예상되는 사건임에도 선고를 무한정 연기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친윤계 서정욱 변호사는 18일 "타워팰리스 아파트 출입 CCTV만 제시해도 입증이 된다"며 "요즘은 하루에 CCTV에 100번 이상 찍히는데 왜 간단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패소하면 소송비용을 한동훈이 물어야 한다"며 현실적 계산도 제시했다.
재판부의 납득 어려운 운영 방식
이 재판의 운영 방식은 일반적인 민사재판과는 거리가 멀다. 첫째, 변론종결 후 54일 만에 재개를 결정했는데 그 실질적 이유가 불분명하다. 둘째, 휴정기 검토를 위한 7주 연기는 민사재판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다. 셋째, 원고의 명백한 입증 실패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계속 끌고 가고 있다.
변론종결 후 재개는 중대한 절차상 하자나 새로운 결정적 증거가 발견됐을 때만 이뤄진다. 하지만 김한메 녹취록처럼 실질적 증거 가치가 의문시되는 자료를 근거로 재개를 결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민사소송의 기본 원칙은 명확하다. 입증책임은 주장하는 쪽이 져야 한다. 한동훈 측이 2년 6개월간 핵심 증거를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무한정 기회를 주는 것은 이상하다.
정치적 타이밍과의 기묘한 일치
두 차례 연기가 모두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점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것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지난해 10월 16일은 재보궐선거와 국정감사가 겹친 시기였고, 올해는 대선 직후에서 국민의힘 전당대회 시기로 옮겨갔다.
이런 정교한 타이밍 조절이 단순한 우연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재판부가 정치 일정을 의식해 판결 시점을 조정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당대회 앞둔 정치적 계산 의심
8월 13일 판결은 한동훈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분기점이다. 한동훈이 8월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정치권에서는 출마 가능성을 높게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19일 "한동훈 전 대표는 안 나온다고 하다가 나올 것"이라며 "나가면 이긴다"고 전망했다.
국민의힘이 8월 전당대회를 확정한 상황에서 김문수 전 대선후보와의 재대결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10억 손배에서 한동훈 전 대표가 승소할 경우 정치적 복권의 발판을 마련하지만, 패소할 경우 당대표 출마에 치명타가 될 것이다.
친윤 진영의 견제도 거세지고 있다. 서정욱 변호사의 18일 비판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한동훈에게 타격을 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재판부가 이런 정치적 역학관계를 의식해 판결 시점을 조절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국민들이 보고 있다
재판부의 연이은 판결 지연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두 차례 연기가 모두 정치적 민감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 받아들일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변론종결 후 재개, 휴정기 검토 연기 등 절차적 이례성도 재판부가 법리보다는 정치적 고려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의심을 부른다. 사법부가 스스로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 소송은 단순한 명예훼손 사건을 넘어 12.3 내란으로 파면된 윤석열 내란수괴와 한동훈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2년간 '가짜뉴스'로 일축하던 '청담동 술자리' 의혹에 대해 결정적 알리바이 하나 제시하지 못한 채 선고를 맞게 됐다.
사법부는 정치 일정을 보며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법리에 따라 신속하고 공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재판부의 의도적 지연은 법치주의 원칙을 훼손하고 사법 정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재판부의 선고 지연이 한동훈에게 청담동 술자리 보도를 '가짜뉴스'로 낙인찍을 시간만 더 벌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입증 실패가 명백한 상황에서도 판결을 미루는 것은 결과적으로 한동훈이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확대시켜주는 꼴이다. 8월 13일까지 또 두 달여의 시간이 주어지면서 한동훈은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의혹 제기를 회피하며 정치 행보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한동훈 10억 소송은 이제 단순한 민사재판을 넘어 사법부가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대가 됐다. 8월 13일 판결이 한국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가늠하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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