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행정구역 중의 하나인 명례방(明禮坊)의 명(明)자를 따서 지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명치정(明治町)으로 불리다가 해방 후 1946년에 밝은 마을, 밝은 고을이란 뜻에서 명동(明洞)이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밝을 ‘명(明)’자 이름대로 명동은 1882년 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한 이후 중국 상인이 처음 자리 잡았고,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상인의 본거지가 되어 일제 강점기 때 전성기가 시작된다. 또한 별다른 공간이 없던 예술인들에게 작업과 사교의 장소로 70년대 명동만의 독특한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그 후 2000년대까지 신촌 또는 강남에 밀려 침체기를 경험한 명동은 10여년 부터 일어난 ‘한류열풍’으로 인한 다시 부활의 날개를 펴고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에 신호탄으로 계속된 일본인 관광객의 급증과 최근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같은 중국내 뜨거운 한류열풍으로 중국인들이 즐겨 찾고 있다.
이에 따라 명동은 외국인들에게 호평을 받는 관광지다. 편리한 면세점 쇼핑과 친절한 안내 등은 한국인지 외국인지를 분간하기 어렵게 한다. 특히 명동의 길거리 음식은 매우 유명하다. CNN이 선정한 서울의 대표 길거리 음식 TOP 10에 들 정도다.
현재 명동에는 350여개의 노점이 있다. 그간 노점상들은 음식조리 과정에서의 화재문제 등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중에는 생계형 노점상도 있지만 일부 기업형 노점상은 억대 연봉 수입을 올리고 있다. 또한 노점은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권리금만 1억이라는 설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병폐로 인해 오는 6월부터 ‘노점상 실명제’가 실시된다. 1인 1노점을 원칙으로 하고, 노점으로 생활하는 '생계형 노점'은 보호하고 여러 개의 노점을 가지고 임대·매매를 통해 큰돈을 챙기는 '기업형 노점'을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노점상 실명제’는 그동안 노점상인과 음식점 업주들 및 중구청 간의 끊임없는 타협의 결과물이다. 명동외식사업모임 김창수 대표(명동 고시레)는 "노점상인 측의 입장과 주변 음식점들의 입장을 최대한 절충하며 공생하여 명동의 전통을 살려나가는데 앞장섰다"고 밝혔다. "외국 관광객이 다시 찿고 싶어하는 한국음식의 명소로 만들어 명동의 이미지를 개선시키고 서로 상생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김 대표는 ‘2016 한국국제요리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을 정도로 전통음식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명동의 음식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원했던 김 대표는 길거리 음식문화와 주변 음식점간의 상생을 찾고 싶었고, 이에 따른 결과물이 ‘실명제’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130여년 전 조선의 근대화 상징이던 명동은 이제 한류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연 800만에 가까운 관광객으로 가득차고 다양한 음식문화가 즐비한 곳으로 번창하고 있다. 명동에서' 제2의 르네상스'를 영구히 지속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상생과 조화의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유범진 칼럼니스트, 한국환경체육청소년연맹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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