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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참패하였다. 대통령과 親朴세력은 자기 합리화만 거듭하면서 개혁을 거부하였다. 親朴세력이 스스로 뒤로 물러나야 할 때 오히려 朴 대통령 盲從者를 대표로 뽑았다. 그는 아직도 黨論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망할 힘도 없는 정당이 된 것이다. 새누리당의 분열은 보수의 無力化 내지 분열로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분열주의자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신라의 마지막 왕 敬順王(경순왕)은 後(후)백제의 견훤이 경주로 쳐들어와 신라의 경애왕을 죽인 뒤 왕으로 세운 사람이다. 경순왕 9년(서기 935년) 왕은 나라를 고려 王建(왕건)에게 바치려고 회의에 붙였다. 마의태자는 이렇게 말했다(三國史記).
'나라의 존망에는 반드시 天命(천명)이 있는 것입니다. 다만 충신, 義士(의사)와 함께 民心(민심)을 수습하고 스스로 굳게 하다가 힘이 다한 후에 말 것인데 어찌 1000년 사직을 하루아침에 경솔히 남에게 줄 수 있습니까.'
이에 경순왕이 말했다.
'이와 같이 외롭고 위태로운 형세로는 보전할 수 없다. 이미 강하지 못하고 또 약하지도 못하여 무고한 백성만 간과 뇌를 땅에 바르는 것이니, 나는 차마 할 수 없다.'
'간과 뇌를 땅에 바른다'는 말은 原文(원문)에 '肝腦塗地(간뇌도지)'라고 적혀 있다. 무고한 백성들이 전쟁에 휘말려 거리에서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처절하게 묘사한 문장이다. 경순왕의 말에서 '강하지도 못하고 약하지도 못하다'는 말이 흥미롭다. 나라를 지킬 만큼 강하지도 못하고 나라가 폭싹 망해버릴 정도로 약하지도 못하니 王族(왕족)들이 구차한 목숨을 근근히 이어가면서 백성들만 고생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요사이 새누리당의 모습이다. 야당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해도 반대할지 찬성할지 黨論조차 정하지 못한 조직이다. 당 해체도 당 유지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이다. 해체할 지혜도 유지할 용기도 없는 것이다. 전 대표 김무성 의원은 야당과 합세, 자신들이 배출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한다. 이런 용기가 1년 전(혹은 총선 공천 기간)에만 나왔더라도 대통령 새누리당 그리고 본인이 이 모양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겨울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이 총퇴각하자 한국을 버리라는 압박에 시달린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은 중국 본토를 공격할 수 없다면 한국을 포기하고 일본만 지키자고 건의한다. 영국 애틀리 수상도 워싱턴으로 달려와 한국을 포기하고 유럽을 지키자고 했다.
트루먼은 맥아더에게 한국 철수는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다만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면 철수하라고 못 박는다. 애틀리에겐 유명한 말을 한다.
'미국은 친구가 위태로울 때 버리는 나라가 아닙니다.'
경순왕은 후계자인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시하고 고려 王建에게 항복할 뜻을 전했다. 그해 11월에 王은 백관을 거느리고 경주를 떠나 송도(개성)의 태조에게 귀순한다. 마차, 牛車(우차), 말이 30여리에 잇달아 도로가 막히고 구경꾼이 담장과 같았다. 경순왕은 王建으로부터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경주를 食邑(식읍)으로 받았고 경순왕 백부의 딸을 왕건에게 시집 보냈다. 여기서 난 사람은 고려 현종의 아버지가 된다.
신라의 귀족들도 고려에서 重用(중용)되었다. 경순왕이 싸워서 망하지 않고 스스로 귀순함으로써 백성과 귀족들이 亡國(망국)의 피해를 보지 않고 오히려 득을 본 셈이다. 삼국사기의 著者(저자) 金富軾(김부식)은 이렇게 평했다.
"경순왕이 태조(왕건)에게 귀순한 것은 비록 마지 못한 일이나 또한 아름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때 만약 죽음으로써 힘껏 싸워 항거하다가 힘이 꺾이고 형세만 궁급함에 이르렀다면 반드시 그 종족은 멸망되고 무고한 백성에게 해만 끼쳤을 것이다. 현종은 신라의 外孫(외손)으로 寶位(보위)에 올랐고 그 후 大統(대통)을 이은 자가 모두 그 자손이었다. 어찌 음덕의 보답이 아니겠는가."
나라가 망하면 왕족과 백성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東西古今(동서고금)의 사례에서 보는 바이다. 新羅(신라)처럼 싸우지 않고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왕이 스스로 결단하여 귀순함으로써 그 스스로는 물론이고 귀족과 백성들을 살린 예를 찾기는 매우 힘들다. 고구려는 지배층의 自中之亂(자중지란), 백제는 지배층의 부패가 심각했다. 두 나라가 싸워서 망한 것은 一見(일견) 장렬하게 보이지만 그 후유증은 當代(당대)의 사람들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싸워서 망하든지 끝장을 확인할 때까지 가서 망하면 망하는 쪽에서 남는 것은 없다. 따라서 접수하는 쪽에서는 물건과 노예를 줍듯이 하니 예우해줄 이유가 없다. 新羅 경순왕은 군사적, 경제적 餘力(여력)이 있을 때 귀순하니 王建으로서도 대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신라 지배층이 고려의 지배층으로 轉入(전입)함으로써 신라사람들은 고려시대에도 대접을 받으면서 살았다. 邊太燮(변태섭) 교수는 '韓國史通論(한국사통론)'에서 고려 성종 때 국가체제가 확립되었을 때의 지배세력은 '지방호족 출신으로 중앙관료가 된 계열과 신라 6頭品(두품) 계통의 유학자들이었다'고 썼다. 成宗(성종) 때 국가체제를 정비하는 데 主役(주역)이었던 유학자 崔承老(최승로)는 신라 6두품 출신 귀족이었다. 그는 28개조의 개혁안을 成宗에게 제시하여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와 유교 정치이념을 확립했다.
인간이든 조직이든 헤어질 때, 죽을 때, 해산할 때, 망할 때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삼국통일로써 韓民族(한민족)이란 집단을 만들어내고 이 공동체의 무대를 한반도에 설정했던 신라는 망하는 것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신라정신 속에 있는 실용정신, 자존심, 그리고 관용과 지혜 덕분일 것이다. 에밀레鐘(종)에 새겨진 銘文(명문)에 나오는 '圓空神體(원공신체)'란 말이 새삼 생각난다. '둥글고 속이 빈 것이 하느님의 본성'이라는 의미이다. 원만하고 겸허하면서도 강력한 존재가 신라였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前職(전직) 고위 공직자 한 분은 '세월호 사고를 수습하는 새누리당과 대통령에 실망하였다. 이들의 國政(국정) 스타일이 바뀌지 않으면 큰 위기가 올 것 같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善防(선방)하든지 어중간하게 지지 않고 完敗(완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래야 정신을 차릴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진정한 개혁은 자기 부정에서 출발하는데, 벼랑에 서지 않으면, 死生決斷(사생결단)의 개혁의지가 생기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善防하였다. 정신을 차릴 기회를 놓쳤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참패하였다. 대통령과 親朴세력은 자기 합리화만 거듭하면서 개혁을 거부하였다. 親朴세력이 스스로 뒤로 물러나야 할 때 오히려 朴 대통령 盲從者를 대표로 뽑았다. 그는 아직도 黨論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망할 힘도 없는 정당이 된 것이다.
새누리당의 분열은 보수의 無力化 내지 분열로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분열주의자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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