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이미 ‘삼성 8000억원’이 친노좌파 세력의 뒷돈으로 쓰일 가능성을 강력하게 우려했던 동아일보 권순활 논설위원 칼럼이 재조명 받고 있다.
권순활 논설위원은 2006년 3월 29일자로 ‘[광화문에서]‘삼성 8000억 원’이 가면 안 될 곳‘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권 위원은 24일 SNS를 통해 그런 칼럼의 존재를 알리면서, “노무현정부 시절 비자금 사건으로 곤욕을 겪던 삼성이 거액의 사회헌납계획을 발표한 직후였다”고 소개했다. 또 “10년 8개월전 우려한대로 재단 지원자금 중 상당액이 좌파세력의 뒷돈으로 흘러간 사실이 뒤에 밝혀졌다”고 언급했다.
당시 경제부 차장이던 권 위원은 칼럼에서 가닥을 잡아가는 ‘삼성 8000억원’의 향방을 날카롭게 짚었다. 삼성은 기금의 운용을 정부에 일임했던 상황. 권 위원은 재단 이사진의 선임이 중요하다고 봤다. 삼성이 이사진 선임에도 일절 관여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결국 참여정부 ‘코드’에 맞는 인사가 이뤄지면 특정 세력에 돈이 몰릴 것이라며 정확히 내다봤다.
칼럼은 8000억원에 대해 삼성이 권력에 굴복해 낸 돈으로 봤다. 칼럼은 “삼성은 지난달 7일 삼성이건희장학재단 출연금(出捐金)과 이 회장 가족 재산 등 8000억 원 규모의 사회 헌납 계획을 발표했다”며 “‘X파일 사건’ 등 잇단 악재에 시달린 이 그룹은 정부 여당의 눈총을 샀던 공정거래법 헌법소원(訴願)과 증여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도 취하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칼럼은 “삼성의 항복 선언”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른바 ‘주인없는 뭉칫돈’의 향후 용처에는 강한 우려를 내비쳤다. 칼럼은 “이왕 결정된 만큼 이젠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에 관심을 가질 때”라며 기금 운용 원칙을 제시한 곳으로 “청와대 국무총리실 교육인적자원부”라고 밝히고 있다.
칼럼은 소외계층 지원이라는 방향에는 찬성하면서도 “재단 이사진의 멤버가 어떻게 짜여질지, 또 실제로 돈이 어떻게 집행될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기금의 운영을 좌우할 재단 이사진 선임은 특히 중요하다”며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대거 장악하는 것이 가장 걱정되는 시나리오”라고 썼다.
미래를 예견하는 듯한 구절도 보인다. 칼럼은 “삼성의 헌납금 중 상당액이 결국 이런저런 명목으로 ‘대한민국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세력의 뒷돈으로 전용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며 “가뜩이나 ‘속성 출세’의 코스가 된 권력 주변의 단체에는 국고보조금과 기업 후원금이 몰리는 반면, 자유주의적 가치를 주창하는 단체는 재정난에 허덕이는 현실 아닌가”라고 전망했다.
불행히도 우려는 상당부분 현실이 됐다. 그것도, 10년 전 경제부 차장이 제기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닮았다.
삼성은 칼럼이 나온 지 7개월 만인 2006년 10월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현 삼성꿈장학재단)을 설립했다. 2009년 월간조선 8월호에 따르면, 친노좌파 인사들이 재단을 장악한다.
삼성이 8000억원을 출연할 당시 총리였던 이해찬 전 총리가 비리 기업인들과의 접대골프로 낙마하자, 후임으로 한명숙 전 총리가 취임한다.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이사장에는 한 전 총리와 크리스찬아카데미 활동을 하다 함께 구속 당하기까지 했던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이 임명됐다. 재단 이사에는 남민전 출신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과 친노 인사 이옥경 방문진 전 이사장 등이 포함됐다. 전형적인 측근인사이자 친노좌파 ‘코드인사’였다.
돈은 ▲이학영 사무총장 시절 한국YMCA전국연맹에 7000만 원, ▲민노당 선거운동을 지원한 노동실업광주센터에 2년간 1억5500만 원, ▲진보신당 창당발기인이 활동하는 청소년자활지원관협의회에 2년간 1억3000만 원, ▲전교조 해직 교사들이 결성한 부산경남대안교육협의회에 3000만 원 등으로 흘러들었다.
개인의 경우,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연구비 5000만 원 지원,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에게 배움터장학사업 지원금 등 총 2억7000만 원 지원, ▲좌파 성향의 인사 6명에게 '공익활동가' 지원 명목으로 7500만 원을 지원했다. 공익활동가라는 자들 중 일부는 아프간과 이라크에 주둔한 한국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주장하고 광우병대책회의에도 가담한 자들이라고 한다.
당시 권 위원은 칼럼을 끝맺으며 돈이 잘못 사용되면 참여정부 인사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경고’를 남겼다. 칼럼은 “이 돈은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건전한 통합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목적에만 써야 한다”며 “만에 하나라도 악용되고 변질된다면 정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 22일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더불어민주당 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건호 씨는 김경재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20억원의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도 마찬가지로 명예훼손 혐의로 김 총재를 고소했다. 김 총재가 지난 19일 애국단체 집회에서 “노무현 정권도 삼성이 출연한 8000억 원을 재단을 통해 거두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결과적으로 10년 만에 법적 논쟁이 불붙게 됨에 따라, 당시 칼럼의 지적대로 잘못이 있다면 ‘책임지는 사람’이 과연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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