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국가 재정 파탄 벨트‘로 전락하고 있다. 일대일로의 육상 거점인 파키스탄은 물론 동서남 아시아를 연결하는 거점 구간 사업에 참여한 국가들에게 ’중공發 빚 폭탄‘이 휘몰아치고 있고 있는 상황이다.
중공의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했다가 거덜 난 파키스탄
WSJ는 새로 당선된 파키스탄 총리로 전직 크리켓 스타 선수 출신인 '이므란 칸(Imran Khan)'의 첫 시험대는 바로 파키스탄 금융위기 해결이 될 것이라며 사설 서두를 다음과 같이 뽑았다. “‘중공과 연계된 프로젝트의 구조조정이냐 아니면 베이징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기냐’, 선택 기로에 놓인 신임 이므란 칸 총리”
WSJ에 따르면 파키스탄의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기준 103억 달러로 이는 고작 2개월 치 수입대금을 지불하기도 부족한 수준이다. 파키스탄은 ‘통화 디폴트(Default)’ 상태를 막기 위해 100억 달러가 더 필요하다. 이처럼 파키스탄의 눈덩이처럼 불어난 외채와 재정적자의 원인을 WSJ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파키스탄의 불어난 외채는 중공에 빌린 차관액수와 비례한다. 대부분의 외채는 파키스탄에 각종 물류 및 에너지 인프라를 짓는 620억 달러 규모의 ‘중공-파키스탄 경제회랑(China Pakistan Economic Corridor)’에 투입됐다. 즉, 중공-파키스탄 경제회랑 사업은 중공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중국 서부와 유럽, 동남아, 인도,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이른바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육상 개발의 '본보기(Show Case)'이다”
바꿔 말해, 파키스탄 금융위기의 '진원지(Ground Zero)'는 정교한 금융기법이 전무한 ‘차이나 머니’를 무분별하게 차입한 결과인 것이다.
“중공과 맺은 이면 합의를 공개해 부실 채무의 규모, 범위를 먼저 확정해야”
통상적인 외환위기를 겪는 상황이면 파키스탄은 과거 1980년대 말 이후 12차례 금융 지원을 받은 것처럼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새로운 통화수급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WSJ는 “IMF 구재금융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채권국이 중공(But the Chinese debt is an obstacle)”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미국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IMF의 최대 공여국인 미국의 세금이 중공 채권자 혹은 중공을 구제하는데 쓰여야 할 논리적 타당성을 찾기 힘들다(There’s no rationale for IMF tax dollars” to “bail out Chinese bondholders or China itself)”.
한마디로, 파키스탄에 IMF의 지원금을 제공하면 결국 그 돈이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중공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이다.
미국과 IMF는 파키스탄 외환위기 해법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파키스탄이 중공과 맺은 채무 계약의 '비밀 이면 합의조항(the secret terms)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즉, 공개된 구체적인 합의 사항을 기초로 미국과 IMF는 파키스탄에게 중공과의 재협상 및 중공과의 일부 사업 축소 조정 및 중단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WSJ는 전했다.
파키스탄과 중공이 맺은 일부 에너지 프로젝트에는 중공에 30년간 연 34% 수익률을 보장하는 이면 계약 합의사항이 있다. WSJ는 이를 근거로 ‘차이나 머니’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중국 뒤치다꺼리에 골치 아픈 미국과 IMF
미국과 IMF가 파키스탄에 일시적인 자금 수혈을 해줌으로써 현재 파키스탄이 겪고 있는 자금 압박을 단기적으로는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파키스탄은 중공이 쳐놓은 ‘부채 함정(Debt Trap)’에 고스란히 빠지게 된다. 즉, 이는 미국과 IMF에게 두 가지 관점에서 상당한 골칫거리를 예고한다는게 WSJ의 지적이다.
첫째, 미국과 IMF가 파키스탄에 차관을 제공했다가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중공에게 ‘일대일로’ 사업 손실 보존으로 귀결된다.
둘째, 지급불능 상태인 파키스탄이 자국의 항만이자 ‘중공 일대일로’의 전략적 요충지인 과다르(Gwadar) 항만이 고스란히 채권국인 중공에 압류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중공은 겉으로는 일대일로 사업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군사 거점에 투자하면서 저개발 국가에 빚을 안겨주는 식으로 전략적 요충지를 획득한다. 이른바 ‘중공식 금융 투자 모델’인 셈이다.
이러한 미국의 우려가 작년에 스리랑카에서 현실화됐다. 중공 차관 60억 달러를 차입해 함반토타항(Hambantota port) 개발사업에 뛰어든 스리랑카는 부채 상환이 불가능해지자, 일부 빚 탕감 조건으로 함반토타항의 운영권을 99년 동안 중공 국유기업에 넘기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WSJ는 “파키스탄의 칸 총리는 강력하게 투명성을 요구해야 한다”며 “실제로 칸 수상은 전임자들이 중공과 맺은 불투명한 계약 조건을 맹렬히 비판했다”고 소개했다. 물론 중국과의 계약 과정에서 파키스탄 수뇌부들의 부패혐의도 포착되고 있다. 이에 대해 WSJ는 “칸 총리의 재무부 장관 내정자 역시 의회에서 중공과의 계약조건을 따져 물을 것”이라고 공개 천명한바 있다고 밝혔다.
부패하면서 후진적인 ‘파키스탄의 집권층’이 ‘금융위기 해법‘의 최대 장애물
하지만 동시에 칸 총리는 중공 파키스탄 경제 회랑 사업이 본인의 경제 정책의 핵심 기둥이라고 선거 기간 중에 밝힌바 있다. 또, 칸 총리를 뒷받침하는 집권당내 일각에서도 IMF 구제금융을 포기하고 중공과의 ‘전천후 우호 관계(All weather friendship)’에 ‘베팅(double down)’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지난 회계연도에 파키스탄이 중공 금융권 대출이 이미 5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이에 중공은 파키스탄에 20억 달러의 차관을 추가로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급한 불을 끄자는 행보를 취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칸 총리의 선택이 IMF가 아닌 중공 혹은 중동의 오일머니 등으로 자금 수혈을 받아 급한 불을 끈다고 해도, ‘IMF의 최종 허가(IMF’s imprimatur)‘ 없인 글로벌 투자가들의 신뢰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WSJ는 “칸 총리가 중공이 추가적으로 제공하겠다는 차관을 받아들일 경우 장기적으로 ’자금 압박(cash crunch)‘에 시달려 이른바 ’부채 블랙홀‘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불확실성 탓에 칸 총리는 그의 선거 공약인 ’일대일로 투명성 재검토’ 실천에도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 사회의 투명성 요구에 부흥하는 것이 파키스탄 금융위기 해결의 첫 단추
WSJ는 칸 총리가 국제사회의 투명성 요구 압력에 대해서 불쾌하게 생각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WSJ는 “현재까지 상황이 말해주듯 중공·파키스탄 경제회랑 사업은 최초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형적인 사업 구조와 과다 차입방식으로 인해 파키스탄의 재정 파탄이 다음세대까지 위협하는 형국이다”라며 ‘사면초가’에 놓인 파키스탄에 현실을 직시할 것을 강조했다.
WSJ는 비근한 사례로는 최근에 파키스탄에 이어 2번째 일대일로 수혜국으로 불리는 말레이시아 정부 역시 중국 남부와 연결하는 200억 달러 규모의 공사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중공 종속을 우려해 중공과 일대일로를 재검토하겠다고 나선 국가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을 전했다.
WSJ는 칸 수상에게 “말레이시아 정부와 같이 칸 총리에게 현명한 처신이 요구되는 시점(Mr. Khan would be wise to do the same)”이라고 주문하며 사설을 끝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