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의 팸플릿- “일본의 침략과 전쟁으로 희생된 외국인들은, 전후 50년이 지나도 아무런 보상없이 버려져 왔습니다. 가해의 역사가 숨겨져왔기 때문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도 보상도 하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는 국제적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내각총리대신 담화- “전후 50주년 종전 기념일을 맞아” 발췌- “일본은 가까운 과거에 잘못된 국가 정책으로 인해 전쟁의 길을 선택하여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리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국가, 특히 아시아의 국민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중략) “미래에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의심할 여지없는 이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여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과의 뜻을 표명합니다.”
오카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 팸플릿- “1916년에 건설된 콘크리트 맨션에는 일본인 광부와 직원들이 살았고, 쇠창살로 된 허름한 건물에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수용되었다.”
오카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 팸플릿- “조선인 노동자들을 감시하기 위한 높이 10미터의 탑도 있었다”
주민1 증언 - “감시탑이라고? 10미터나 되는 탑이 어디 있었다는 거지? 하시마는 그런 쓸데없는 탑을 세울만한 땅이 없었을 텐데. 감시라는 것 자체가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조선인 우두머리한테 조선인 종업원들의 관리 책임을 맡겼어요.”
주민2 증언 - “감시탑 같은건 없었어요.
주민3 증언 - “그런일 없었어.”
주민4 증언 - “감시탑은 없어. 어디에 있었다는 거지? 그런게 있었다면 모를 리가 없어. 10미터나 되는 건물이면 금방 알아보지.”
오카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 팸플릿- “규슈 지역의 탄광은 굴착면이 매우 낮아 거의 누운 자세로 작업을 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그러한 자세로 하루 10시간 이상 고통을 견디며 석탄을 캐야만 했다.”
5. -탄광 사망자 절반 이상이 사고사이고, 나머지는 질식, 외상, 압사, 변사?-
오카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 팸플릿- “화장과 관련된 자료에 따르면 하시마 탄광 사망자는 사고사가 절반 이상으로 나머지는 질식, 외상, 압사, 변사 등이었다”
원폭과 조선인 나가사키현 조선인 피폭자 실태조사 보고서 제 4집(나가사키 재인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회) - 1925년부터 1945년까지 20년간 하시마의 조선인 사망자 수는 121명, 그중 병사가 58명, 사고사는 63명. 병사는 사산아와 발육불량의 영유아도 포함된다. 사고사는 매몰에 의한 질식, 압사, 외상, 가스폭발로 인한 폭발사(변사) 등이 포함된다.
오카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 팸플릿 -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이 지역의 ‘전체적인 역사’를 알림과 동시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정보 센터의 설립이라는 일본의 약속을 전제로 세계 유산 등록을 결정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2015년 7월)에서의 일본 정부 발언 발췌 - “일본 정부는 기술적, 전문적 견지에서 도출된 이코모스 권고를 존중한다. 특히 ‘설명 전략’의 책정에 관한, ‘각 장소의 역사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도록 하라’는 권고에 대해 성실히 대응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일본은, 1940년대에 몇 군데에서 본인의 의사에 반해 섬에 끌려와 힘든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당한 많은 한반도 출신자가 있었다는 사실과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 정부가 징용 정책을 실시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일본은 정보 센터의 설치 등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설명 전략에 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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