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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이용수의 법정 증언은 명백한 위증” 제18차 기자회견

“법원과 여성가족부는 가짜 위안부 의혹 이용수의 증언을 다시 검증하라”

한일우호 시민단체인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이 13일 수요일 오후 1시 명동에 위치한 ‘남산 위안부 기억의 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국민행동은 이용수 씨가 법정에서조차 거짓 증언을 했다며, 명백한 위증에 해당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이 씨는 2019년, 위안부 재판에 나와 자신이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의해 ‘가미카제 부대’로 끌려가 ‘전기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국민행동은 “1928년에 출생했다는 이 씨가 14살 때면 1942년으로 이때는 아직 가미카제 특공대라는 이름조차 없었을 때”라면서, “(당시 경찰범처벌규칙 행정집행령에 따라) 14세는 애초에 창기나 위안부 영업이 불가능한 나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당연히 존재하지도 않은 ‘가미카제 부대’에 끌려가서 전기고문을 받았다는 것도 역시 말이 안 된다는 것이 국민행동 측의 비판이다.

전날 서울지역에 내린 폭설로 인해 기억의 터에도 눈이 많이 쌓여서 기자회견 시간은 평소보다 늦었으나, 이날 기자회견 행사는 평소대로 잘 진행됐고 마무리됐다. 

다음은 국민행동의 성명서와 사진.












[제18차 국민행동 성명서] 가짜 위안부 의혹 이용수의 증언을 다시 검증하라!


“저는 수요 데모를 마치렵니다. 이것 때문에 학생들이 마음에 상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데모를 마치고 일본, 한국 간 젊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제가 사죄 배상은 적어서 백년이고 천년이고 가도 사죄배상을 받아야합니다. 저는 나이가 많아 이제 기력이 없습니다. 저는 할 만큼 했습니다. 시작은 김학순 할머니가 했지요. 마지막은 예, 당당한 특공대 피해자, 가미가제 피해자 이용수가 마지막을 할 겁니다.” 


이는 2020년 5월 7일 대구의 한 카페에서 있었던 이용수씨의 기자회견 내용 중 일부다. 이에 앞서 이씨는 2016년 7월 “15살에 가미카제 부대에 끌려가 온갖 전기 고문, 매를 맞아가지고 지금도 아야 아야 죽지 못해서 이렇게(산다)”고 하였고, 2016년 12월 20일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에서 열린 박유하 세종대 교수 결심공판 증언에서는 “16살에 자다가 군인에게 붙들려 대만 가미카제 부대로 끌려가서 1946년에 나왔다”고 증언하였다. 2017년 4월에는 “세상을 하나도 모르는 열다섯 살짜리가 끌려간 곳은 일제가 점령한 대만의 신주 가미카제 공군부대”라 하였고, 2019년 11월 13일에는 “14살에 일본군에 끌려가 가미가제 부대에서 전기고문까지 당하고 돌아왔습니다.”라고 증언하였다. 그리고 2020년 5월 25일 정대협의 윤미향 관련 2차 기자회견에서도 “끌려가서도 대만 신주 가미카제부대, 특공대 부대로 끌려가서도 그 장교가 가타가나로 써줘서 대화를 했다.”고 하였다. 


이렇듯 이씨의 ‘일본군에 의해 가미카제 부대로 끌려가 전기고문을 당했다’는 증언은 일관되게 이어졌다. 이 중에 우리는 2019년 11월 13일에 있었던 법정 증언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날 증언은 바로 오늘 1심 선고가 예정되었으나 3월 24일로 미루어진 고 곽예남씨 등 20인의 원고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청구소송 1차 심문기일에 있었던 법정 증언이기 때문이다. 


이 증언의 핵심은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의해 ‘가미카제 부대’로 끌려가 ‘전기고문’을 당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증언은 단언컨대 위증(僞證)이다. 


1928년에 출생했다는 이씨가 14살 때면 1942년으로 이때는 아직 가미카제 특공대라는 이름조차 없었을 때다. 일본군이 최초로 가미카제 특공대를 조직한 것은 1944년 10월 20일이며, 같은 해 10월 25일 레이테 만 해전에서 최초로 작전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인 가미카제 특공대의 활동은 1945년 1월에야 시작되었다. 따라서 이씨가 14살, 15살, 16살일 때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이름조차 없었던 시기이므로 이씨의 ‘가미카제 부대’ 증언은 명백한 허위다. 


다음으로 14살에 끌려가 위안부가 되었다는 부분이다. 당시 경찰범처벌규칙 행정집행령에는 창기(娼妓)가 되고자 하는 자는 본적, 주소, 씨명, 기명(妓名), 생년월일, 영업장소를 기재하고 영업주(포주)와 함께 날인한 허가원, 부친이나 일정한 사람의 승낙서, 호적등본 등 서류를 첨부하여 해당 관서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이 때 나이는 17세 이상으로 14세는 애초에 창기나 위안부 영업이 불가능한 나이다. 


이는 당시 18세 이상으로 명시한 위안부 모집광고나 김학순씨가 ‘기생 허가를 얻기 위해서는 19세가 되어야 하는데 자신은 17세여서 허가를 받지 못해 양아버지를 따라서 중국으로 갔다’는 증언으로도 확인된다. 따라서, 14살에 위안부가 되었다는 이씨의 증언은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허위다. 


1993년 초기 증언에 따르면 전기 고문도 이씨 스스로 대구에서 대만까지 자신을 데려간 위안소 주인 남자, 즉 포주에게 당했다고 하였다. 당연히 존재하지도 않은 ‘가미카제 부대’에 끌려가서 전기고문을 받았다는 법정 증언은 있을 수 없는 허위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씨의 “14살에 일본군에 끌려가 가미가제 부대에서 전기고문까지 당했다”는 법정 증언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위증임이 분명하다. 


이에 우리는 이씨가 원고로 포함되어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담당재판부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록을 담당하는 부서인 여성가족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담당 재판부는 이용수씨의 증언을 철저히 검증하여 판결에 반영하라! 

2. 여성가족부는 이용수씨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여부를 재검토하라! 


2021. 1. 13. 

국사교과서연구소/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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