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이슈] “경찰이 안 하니 우리가 한다”... 모텔 연쇄살인 女 무단 신상공개 논란

모텔 연쇄살인 여성 피의자, SNS상 사진·개인정보 무단 유포
중대범죄신상공개법 신상공개 요건 충족 가능성 크지만... 경찰, 신상공개 불허 결정
신상공개 판단 ‘고무줄 잣대’... ‘잔인한 범행 수법’ 명확한 해석 마련 필요

인싸잇=한민철 편집국장 | 서울 강북의 모텔에서 2명의 남성을 연쇄 살해한 혐의를 받는 20대 여성의 사진과 신상정보가 SNS 등에서 퍼지고 있다. 수사기관이 해당 피의자의 신상공개를 결정하지 않았음에도 이를 무단으로 유포하는 건 범죄행위의 소지가 짙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이슈가 피의자 신상공개 요건을 충족함에도 이를 실행하지 않아 다수의 반발 심리를 자극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4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상에는 강북 모텔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 A씨에 대한 사진을 그대로 드러낸 게시글을 다수 접할 수 있다.

 

이 중에는 사진뿐 아니라 A씨에 대한 이름과 나이, 범행 수법, 과거 행적 등에 대해 상세히 기재된 게시글도 있다.

 

어떤 게시글에서는 ‘서울 강북구 숙박업소에서 같은 수법의 남성 변사가 잇따르자, 경찰이 20대 여성을 체포, 신상을 공개했다’며 수사기관이 A씨에 대한 신상 공개를 적법하게 허용했다는 취지로 소개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미 경찰은 A씨를 피의자 신상공개 대상에 포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현행 특정중대범죄피의자등신상정보공개에관한법률(중대범죄신상공개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피의자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나 재범 방지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의자의 얼굴·이름·나이를 공개할 수 있다.

 

그런데 경찰은 A씨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고, 범죄 수법이 잔인하다고 볼 수 없다며 신상공개 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게 잔혹한 범죄가 아니란 말인가”... 신상공개 ‘고무줄 잣대’ 논란

 

수사기관이 법에 따라 용의자의 신상공개를 허용하지 않았음에도, 이를 SNS 등 공적인 공간에 유포한다면 정보통신망을 통한 명예훼손이나 개인정보법 위반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 신상을 SNS에 유포해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남성이 지난 10일 항소심에서도 징역 8개월에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A씨에 대한 사진과 개인정보가 공개된 SNS의 댓글창에는 그에 대한 비난과 함께, 해당 게시글을 옹호하는 코멘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이는 불법 행위 소지가 짙지만, 그중에는 “수사기관이 하지 않으니 우리가 한다”는 지적에 여럿이 공감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A씨에 대한 신상공개를 불허한 수사기관의 판단 잣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앞서 언급한 중대범죄신상공개법 기준에 따르더라도, 3명의 남성을 유인해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을 탄 피로회복제를 마시게 했고, 결국 이중 2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만큼 잔인한 범행 수법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특히 A씨가 범행을 저지른 게 명백한 상황이다. 처음에는 그가 혐의를 부인하며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그가 1차 범행 후 약물을 늘린 점 그리고 챗GPT를 통해 ‘수면제 과량 복용’과 ‘음주 후 복용하면 어떻게 되는지’ 등을 검색한 점, 범행 전 약물을 섞은 음료를 미리 만든 사실을 입증할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경찰도 A씨가 계획적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존 상해치사 혐의에서 살인 혐의로 변경해 검찰에 송치했다. 그렇다면 범행을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객관적 증거의 조건도 어느 정도 충족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으로 많은 이들이 이번 사건에 대한 알 권리 보장과 재범 방지 등 공공의 이익을 원하기에, 불법 행위임을 알고 있음에도 A씨에 대한 무단 신상공개에 호응하고 반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세 번째 조건도 충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에도 수사기관이 A씨의 신상공개를 결정하지 않은 만큼, 이에 따른 반발 심리가 이번 이슈에 작용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일각에서는 피의자가 여성이라서 신상공개를 더 까다롭게 검토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현재까지 중대범죄신상공개법에 따라 살인 혐의로 신상이 공개된 66명 중, 여성은 전 남편 살인 사건의 고유정, 과외 교사 아르바이트생 살인 사건의 정유정, 대전 초등학교 피살 사건의 명재완 등 4명에 불과하다.

 

‘잔인한 범행 수법’ 명확한 해석 마련 필요


<인싸잇>의 취재에 응해준 법무법인 넥스트로 신홍명 변호사는 “A씨가 1명도 아닌 3명에게 같은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러 2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자택에서 범행에 활용할 것으로 보이는 다량의 약물과 피로회복제도 발견된 만큼, 계획범죄와 잔혹성 등이 성립한다고 보인다”며 “경찰도 상해치사에서 살인죄로 혐의를 변경해 검찰에 넘겨 중한 혐의에 대한 확증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A씨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명확하다고 판단한 상태임에도 신상공개를 하지 않은 건 다소 납득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대범죄신상공개법에서 ‘잔인한 범행 수법’이라는 기준을 사람의 신체를 흉기로 해하거나 시체를 유기하는 등의 행위만으로 오해할 수 있다”며 “현재 국민 다수가 수사기관의 이번 신상공개 결정에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명확한 해석의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A씨의 범죄 사실이 중대범죄신상공개법에 따른 신상공개 조건 대부분을 만족한다는 여론이 강하고, 이미 그의 신상이 SNS상에 광범위하게 퍼진 상황에서 향후 검찰이 그의 신상공개를 결정할지도 주목받을 전망이다.

 

 

한편, A씨는 정신과 병원에서 처방받은 벤조디아제핀 등 향정신성 의약품이 섞인 피로회복제를 건네 20대 남성 3명을 죽거나 다치게 한 혐의로 지난 19일 구속 송치됐다.

 

경찰에 따르면, 1차 범행 대상이었던 남자친구는 지난해 12월 14일 경기 남양주시의 한 카페 주차장에서 음료를 마신 뒤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 병원으로 이송됐다 회복했다. 이후 A씨는 같은 수법으로 강북 모텔에서 20대 남성들에 2차, 3차 범행을 저질렀고 피해자들은 모두 사망했다.

 

당초 경찰은 A씨에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조사를 진행해 왔으나 모든 정황을 종합해 범행이 계획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살해 혐의로 변경해 검찰에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