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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프랑스와 중국의 위험한 관계’ ... 중국 공산당의 프랑스 잠식 공작을 폭로하다

프랑스 경제·안보 전문기자가 파헤친 중국 공산당의 프랑스 침투 공작 ... 또 하나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인 프랑스는 신흥 패권국 중국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Pierre Choderlos de Laclos, 1741~1803년)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풍속이 극도로 문란해져 파멸적 상황에 이른 프랑스 상류사회를 소설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를 통해 묘사했던 바 있다. 중국 공산당에 침투당해서 헤매고 있는 오늘날 프랑스 엘리트들의 상황 역시 그에 못지않은 듯 하다.

‘프랑스와 중국의 위험한 관계(France Chine, les liaisons dangereuses)’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경제 주간지인 ‘샬랑쥬(Challenges)’의 경제·안보 분야 전문 기자 앙투안 이장바르(Antoine Izambard)가 쓴 책이다. 21세기 들어 특히 본격화된 프랑스와 중국 사이의 물밑에서의 음험한 전쟁 문제를 파헤친 그는 이 책을 통해 프랑스 내에서는 대서양 쪽으로 뻗어있는 브르타뉴 반도가 특히 이 전쟁의 중요한 전장임을 고발하고 있다.



중국은 하필 왜 브르타뉴 반도를 노렸을까. 브르타뉴에는 무엇보다도 프랑스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핵잠수함(SSBN) 기지가 있다. 게다가 프랑스 방위산업청도 인근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이버산학단지와 특별군사학교는 물론, 안보산업 분야와 관련 400개 기업이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 국방의 핵심 지역인 것이다. 문제는, 언제부턴가 브르타뉴에 주둔한 군인들과 젊은 중국계 여학생들의 혼인 사례가 이상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프랑스 국방·국가안보사무국(SGDSN)이 관련 보고서까지 냈을 정도다. 때맞춰 인근 대학에는 공자학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연일까.

앙투안 이장바르는 프랑스의 한 공학계열 그랑제콜 박사과정 학생 30명 중에 10명이 중국 하얼빈기술연구소 출신이라는 점도 한번 눈여겨 보라고 말한다. 하얼빈기술연구소는 하얼빈공업대학 산하 연구소로, 이 연구소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무기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매하는 중국국방과학기술산업국이 관할하고 있다. 문제의 중국계 박사과정 학생들은 프랑스에서 군용으로 운용할 수 있는 탐색장비 개발에도 참여한다고 한다. 앞서 ‘로제 나슬렝 사건’, ‘스트라스부르대학 연구원 사건’ 등 중국이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프랑스에서의 여러 기술 불법 탈취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이런 문제들을 바라봤을 때 상황은 분명하다. 그렇다. 프랑스는 중국에 의해 잠식되고 있는 것이다.

앙투안 이장바르에 따르면 이러한 중국의 프랑스 침투 배경에는 시진핑이 제시한 경제비전인 ‘중국제조(메이드 인 차이나) 2025’가 도사리고 있다. ‘중국제조 2025’에 따르면 2025년까지 로봇 공학, 항공 및 생명 공학과 같은 약 10개 핵심 산업의 70%가 중국 국내에서 생산·보급되어야 하는데, 결국 순진하면서도 애매한 입지의 강국인 프랑스가 새롭게 떠오르는 패권국인 중국의 경제적, 기술적 야심의 첫번째 먹잇감이 되어버린 것이다. 중국의 사이버공격 및 선진기술 탈취 주타깃은 바로 프랑스이며, 실제로 프랑스 고위 관리나 정보 전문가들도 프랑스 기업들에 가장 공격적인 국가는 중국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중국과의 ‘위험한 관계’는 프랑스에 때로 전혀 뜻하지 않는 큰 대가를 치르게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프랑스의 적극 협력으로 지어진 중국의 우한 P4 실험실이다. 루이 파스퇴르로 대표되듯 전 세계 생물학 발전을 선도해온 국가인 프랑스는 호의로서 중국이 우한에 자국 최초로 생물안전도 최고등급(P4) 실험실을 만드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우한 P4 실험실은 건립 초기부터 비용 문제와 여러 문화 차이 문제로 인해 난항을 겪었으며, 프랑스는 결국 중국으로부터 실험실 안전 문제로도, 연구협력 문제로도 아무 보장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더욱 결정적으로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중국에 이어 프랑스가 덩달아 미국 및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게 될지도 모를 상황까지 치달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우한 P4 실험실 유래설에 프랑스의 누군가는 분명 전전긍긍했을 것이 틀림없다. 

중국에 그토록 휘둘리긴 했어도 어떻든 프랑스는 5대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 강국이다. 그리고 그런 강국의 지위에 걸맞는, 여전히 수준높은 정보기관들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실제로 프랑스 정보기관들은 우한 P4 실험실 문제부터 시작해서 사이버공격 문제, 항공기술 및 원자력기술 도난 문제 등 중국 공산당의 침투 공작 문제와 관련 우려와 경고를 일찍이 여러 차례 프랑스 정치권에 전달했던 바 있다. 하지만 안보는 늘 정치의 제물이 될 수 밖에 없는 법. 저자인 앙투안 이장바르는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의 정보기관들과 고위 관료들은 중국 문제를 과소평가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순진하게 구는 경향이 있습니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특히 전직 총리들을 중심으로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 공작에 다들 형편없이 무너져 버렸다. 중국어로 공산당 일당독재를 찬양하는 책까지 출간한 장-피에르 라파랭 전 총리를 비롯, ‘알리바바’ 마윈 회장의 열렬한 팬을 자처하는 로랑 파비위스 전 총리, 홍콩에 거주하며 중국과 비밀스런 사업을 진행하는 도미니크 빌팽 전 총리 등 현직 때는 차마 대놓고 하지는 못했던 ‘중국에 대한 사랑 표현’을 퇴직 이후에 열렬히 실천하고 있는 친중파 정치인들이 넘치는 게 오늘날 프랑스의 현실이다. 정보기관이나 언론사로부터 나오는 상식적인 중국경계론은 “중국의 경제보복”, “중국의 시장규모”, “중국의 성장가능성” 등 상투적 수사 앞에서 그저 무력할 뿐이다.

앙투안 이장바르는 중국이 압도적인 자금력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전통 세력권인 북아프리카까지 거침없이 침투해 들어오는 문제에 대해서도 특별히 한 장을 할애해 다루고 있다. 사실, 중국의 첫 아프리카 군사기지가 설치된 지부티부터가 프랑스가 지금도 영공 방어를 책임져주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이 주도권 다툼에 이제는 미국까지 본격적으로 가세한 상황으로, 프랑스의 대아프리카 외교 방정식 풀이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한편, 이 책에서는 깊이 다루어지지 못했지만 프랑스는 제국주의 시대부터 인도-태평양 지역에도 강력한 기득권을 갖고 있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서, 이 지위에 대해서도 역시 중국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영해의 80%가 실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있으며, 폴리네시아 등을 다 합쳐 160만 명의 프랑스 국민들과 7천 명의 프랑스 군인들이 인도-태평양에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령 뉴칼레도니아 등에서 친중파 주민들을 중심으로 독립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중국 공산당의 침투 공작은 물론이거니와 뉴칼레도니아가 자국산 니켈 등과 관련 최대 수출국이 바로 중국인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아프리카 지역은 물론이고, 인도-태평양에다가 본토까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는 과연 언제까지 중국의 악덕 문제에 대해 그저 구경꾼 노릇만 할 것인가. 프랑스가 물론 압도적 패권국이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역시 단 한 번도 강국이 아니었던 적도 역시 없었다. 그런 프랑스가 이제 신흥 패권국에 도전하는 중국에 대한 대응 문제로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프랑스와 중국의 위험한 관계’는 라클로의 책처럼 프랑스가 이미 스스로에 대해서 ‘진단’ 단계에 돌입해 있음을 출간 그 자체로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프랑스가 중국 문제로 곧 실천하게 될 ‘임상’이 자뭇 궁금해진다.


[ 앙투안 이장바르, '프랑스 엥포' 인터뷰 ]



[ 앙투안 이장바르, '프랑스 24'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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