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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한다, regret 1219

다시 맞은 16대 대통령 선거일 12월 19일

 인간은 살면서 누구나 후회를 하기 마련이다. 바보가 아닌 바에야 후회 없는 완벽한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금 맞이하는 12월 19일이다. 4년 전, 16대 대통령 선거를 치렀던 바로 그 날이다.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통한의 목소리가 전국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수만, 수십만, 수백만 명이 동시에 대성통곡하는 현상, 혹시 기네스북에 등재할 수 없을까?

 땅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진정으로 후회해야 마땅할 종자들은 으리으리한 신문사 강당을 임대해 무슨 기념강연회인가를 연다는 소식이다. 한심하고 미련한 작자들 같으니라고. 발버둥치면 발버둥칠수록 지들 죽는 것만 빨라진다는 걸 여전히 모르니. 이회창을 찍었던 인물들이 대거 참석해 노무현의 대선승리를 축하하는 기막힌 현실, 참 대단한 노무현이다. 오늘도 노무현이 또 이겼다.

 온갖 기기묘묘한 상술이 기승을 부리면서 별의별 기념일이 달력을 빼곡이 채우고 있다.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한 기념일 중에서 후회의 날이 없다는 것이 희한하다. 영어로는 ‘Regret Day’ 비슷하게 번역될. 노무현 정권이 역사의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12월 19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도록 하자. 매년 12월 19일을 범국민적 후회의 날로 공식지정하면 어떨까? 국민 각자가 여태껏 살면서 가장 후회막급한 이야기를 남들 눈치보지 않고 털어놓는 기회로 승화시키자.

 내가 선봉에 서겠다. 내 삶에서 제일 후회되는 대목은 십 수년 전에 내린 어리석은 선택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종류를 불문하고 면접시험에 한번도 합격한 적이 없다. 면접이 요식절차에 불과한 검증만 서너 차례 통과했을 뿐, 면접점수가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테스트에서는 예외 없이 미역국을 마셨다. 못생긴 얼굴과 더듬거리는 말투가 원흉이었다.

 사실은 딱 한 차례 면접시험을 무사히 마쳤던 경험이 있다. 기억하시는가? 90년대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기까지 성인물 시장을 휩쓸었던 ‘HOT WIND’라는 잡지를. 다른 사람들이야 당연히 섹시한 자태의 표지모델들 모습이 떠오르겠으나, 나한테는 면접시험을 통과시켜준 너무나 고마운 회사로 뇌리에 남아있다.

 아직도 미스터리다. 입사전형을 주관했던 기획실장이란 양반이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나를 발탁했는지. 물론 한두 가지 이유는 추론할 수 있다. 그분 설명으로는 내가 응시자들 가운데 유일무이한 사회과학 전공자, 좀더 임팩트 있게 범위를 좁히면 정외과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부박한 신세대담론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뭔가 남들과 다르게 튀어야 각광받던 시대였다. 저항과 혁명의 요람 정치외교학과 졸업생이 중고등학생들이 교실에서 선생님 눈초리 피해 몰래 훔쳐보는 황색매체에 취직하겠다고 나섰으니 더는 튀려야 튈 수 없었다.

 진실은 따로 있다. 나는 정말 갈 데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컴맹인 관계로 말미암아 조악한 볼펜글씨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잡지사에서는 다행히 성적표를 요구하지 않았다. 새하얀 와이셔츠를 안에 받쳐입은 단정한 양복정장 차림으로 면접을 보러갔다. 오히려 요것이 플러스 요소로 작용한 모양이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화려한 의상에 더해, 머리에 무스를 잔뜩 바르고 쏘다니는 것이 청춘의 표상인 양 통했으니까. 튀지 않으려고 노력한 게 되려 튀었던 셈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다음이 문제였다. 거의 채용이 확정되자, 실장은 내게 잡지를 몇 권 쥐어주더니 신입사원 수습과정이라면서 시민들의 반응을 조사해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잡지내용이 쪽팔리기는 했다. 한데 그게 대수이겠는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허나 가라고 명령한 동네가 탈이었다. 청량리! 서울역도 아니고 영등포역도 아니고 청량리로 가란다. 588 집창촌이 조건반사적으로 따라붙는 홍등가의 메카로.

 아무리 먹고사는 게 다급한 처지이기로서니 차마 청량리만은 갈 수가 없었다. 잡지사와 나와의 인연은 그걸로 끝이었다. 배가 부른 탓이었는지, 어린 객기에 도덕적 엄숙주의에 빠졌기 때문이었는지 원인은 알 수 없다. 대충 그 두 개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였을 듯하다. 미끈한 몸매의 육감적 미녀들을 떡밥으로 삼아 독자들을 낚아 올리는 종합시사주간지. 솔직히 매우 하고픈 분야였다. 사회주의의 몰락에 충격을 받고 표류하던 1990년대의 한국사회에 레닌이 환생했다면 필시 이스크라 대신 HOT WIND를 창간했을 터이므로.

 당시 HOT WIND에 몸담았던 임직원들이 나중에 우리나라 대중문화시장을 석권하고 연예산업을 평정했다는 후일담을 전해들었다. 교양주의와 선정주의가 변증법적 통일을 이룬 콘텐츠 제작은 나 역시 자신만만한 영역이었다. 마음 독하게 먹고 청량리로 향했다면, 그리고 업계에서 악착같이 버티며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SM엔터테인먼트 규모의 기업을 직접 꾸리는 건 과욕일지언정, 최소한 YG 패밀리 정도의 사업체에는 대주주 자격으로 간여하지 않았겠는가. 쓸데없는 자존심이 낳은 중대한 판단착오로 인해, 지금은 대권주자들 참모들에게 이따금씩 밥이나 얻어먹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엄청 후회스럽다.

 시간은 불가역적이다. 저질러진 과오를 되돌릴 수는 없는 법. 단지 소원 하나는 있다. 그때 나를 면접에서 뽑아준 실장님과 꼭 언젠가 같이 일해봤으면 하는 희망이다. 그는 현재 내가 대한민국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유일한 인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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