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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창당 3년…실패한 정치실험'

지지율 곤두박질, 재보선 '40:0'…결국 해체의 길로

  • 등록 2006.11.10 16:29:02

 

10일 열린우리당은 창당 3년을 맞았다. 당연히 경축해야 할 이날, 그러나 당내외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당 정체성 사수" 소수로 전락

이날 김근태 당의장은 기념사를 통해 "지난 3년 열린우리당 창당을 계기로 돈으로 정치하던 시대는 분명히 끝났다. 제왕적 총재가 군림하던 전근대적 정당시대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됐다"고 자평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다. .

오히려 김 의장의 목소리는 "산에 오를 때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등반객의 시선에 영향받지 말고, 산에 몸을 맡겨야 한다. 평화와 번영의 길을 함께 걸어갈 길벗들을 두 팔 벌려 맞이해야 한다"며 정계개편에 대해 우회적으로 언급할 때 힘이 실렸다.

그는 "새로운 길벗들을 맞이하고 정치세력을 재편하는데 있어서 이해타산에 기초한 정치적인 계산이나 정치기술에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창당 3주년을 맞는 기념식장에서 당의 해체를 말하는 현실, 이것이 바로 열린우리당의 오늘이다.

김 의장은 이어 "원칙 있는 대연합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이 '통합신당'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당내 목소리는 김한길 원내대표에 이르러서는 더욱 명확해졌다. 그는 "다시 시작하는 아침을 준비하면서 가져가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가 말하는 '다시 시작하는 아침'이란 다름 아닌 '통합신당'을 말한다. 그는 이날 기념사에서 "해방 이후 처음으로 개혁세력이 의회에 과반수를 넘었지만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국민들의 공감대도 못 얻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또 "우리는 대통령에게 이건 아니라고 제 때에 할 말을 못해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더 어렵게 만든 책임도 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으며 주저앉으면 그것은 또 한 번 죄를 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김근태 당의장의 "새로운 길벗들을 맞이하자"는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열린우리당의 창당 주역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이다. 그러나 이들 중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전 의장은 이미 수 차례에 걸쳐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말했다. 그리고 이들은 '평화번영세력 혹은 범여권의 통합'을 설파하며 다니고 있다.

이들 창당 주역 중 신기남 전 의장만이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그리고 기념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지지층의 자존심과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그릇으로 정당을 유지하고 발전시켜가야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 의원과 같은 발언은 이미 당내에서 소수자로 전락한지 오래다. 또 창당 당시 천신정과 함께 열린우리당의 정체성 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는 유시민 의원(현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최근 언론에 "통합신당이 창당될 경우 정치를 끝내겠다"는 발언을 했다.

특히 유 의원의 경우, 그가 '기간당원제'로 상징되는 열린우리당의 창당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기간당원을 비롯한 '당사수 재창당론자'들에게 맥 빠지는 소리였다.

총선 직후부터 삐걱거려, 과반 확보가 무색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먼저 열린우리당의 창당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2003년 11월 당시 민주당을 탈당한 40여 명의 의원과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른바 '독수리 5형제', 개혁국민정당 출신 의원 2명을 중심으로 총 47명의 의원들이 창당했다.

열린우리당은 출범 초기 과 소수여당으로서 '한계'를 절감했으나 창당 이듬해인 2004년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태풍 속에서 "힘을 달라"고 호소, 과반수가 넘는 152석을 가진 거대여당으로 재탄생했다.

그러나 총선 직후 당내에서 벌어진 '실용주의 논쟁'은 의원 상호 간에 '난닝구'와 '빽바지'라는 극한적인 용어를 동원한 감정싸움으로 비화됐고, 이는 곧 기간당원들의 실망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당과 원내지도부를 분리한 정치실험과 당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중앙위원회는 현역의원들이 배제된 채 운영되면서 초기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러한 잡음은 '개혁을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이런 가운데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 이후 처음으로 열린 2004년 후반기 정기국회에서 4대개혁 입법을 들고 나왔지만, 이를 관철시킬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당내의 의견 불일치로 인해 개혁입법 통과에 실패하고 말았다.

특히 국가보안법 폐지와 형법 보완이라는 획기적인 법안의 통과 실패는 아직까지도 열린우리당의 개혁 드라이브를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주범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2004년 겨울 여의도를 가득 메운 '국가보안법 폐지 무기한 단식농성단'과 이를 지지하는 '240시간 연속 의원총회'에도 불구하고, 김원기 의장의 직권상정 거부와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타협주의적 태도는 기간당원들의 질타의 대상이었다.

그 후 2005년 4월 개혁입법 실패를 이유로 물러난 지도부를 대신할 새로운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는 열린우리당 내 각 계파의 치열한 정치선전장으로 전락했다. 이 전당대회에서 기간당원제 강화와 당내 개혁을 부르짖는 인사들은 유시민 의원을 제외하고는 당 지도부에 선출되지 못했다.

이때 들어선 문희상 당의장 체제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문 의장 체제는 '들러리'라는 오명과 의혹 속에 무너졌고, 초대 정동영 의장부터 현 김근태 의장까지 2년 10개월 동안 총 9차례에 걸쳐 의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교체되는 수모를 겪었다.

같은 시기 최대의 정치적 라이벌인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 체제 하에 착실하게 국민적 지지도를 올리고 있었다. 민주당 역시 17대 총선 당시 처절하게 무너졌던 호남 지역에서 권토중래했다.

곤두박질 친 지지율, 당청은 끊임없이 대립만

지지율 역시 곤두박질치기는 마찬가지였다. 17대 총선 직후 50%에 가깝던 당 지지율은 현재 10% 대에서 오를 줄을 모르고, 의석 역시 11월 10일 안병엽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함에 따라 139석으로 줄어들었다.

또 총선 이후 치러진 각종 재보선은 '40:0'이라는 참담한 결과가 말해주듯, 국민들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당은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국민들의 지지도를 깎아먹는 경쟁을 벌이는 듯 보였다. 총선 직후 김혁규 의원의 총리 내정 문제부터 최근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사퇴, 그리고 가장 최근의 김만복 국정원장 내정자 문제에 이르기까지 당청은 대립으로 일관했다.

이는 결국 강한 여당과 작지만 강한 정부를 추구하던 양자에게 모두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 됐고, 결국 당 지도부의 "대통령은 국정에만 전념하라"는 발언으로 이어졌다.

'해방 이후 최초의 개혁세력에 의한 의회권력 획득' 빛 바래

현재 열린우리당은 당 해체와 통합신당 창당을 공론화 하고 있다. 김한길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주장한 "새로운 아침을 맞아야 한다"는 발언과 천정배 의원의 "신당 창당 추진" 발언, 그리고 정동영 전 의장의 "열린우리당 실패론" 등을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당내 다수 의원들은 통합신당으로 기울어 있는 상태다.

이들은 또 '노 대통령이 정치에서 손을 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9일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여당 의원들의 '거국 중립 내각 구성' 촉구는 이러한 시각의 연장선이라는 관측이 우월하다.

따라서 현재 열린우리당은 정파별로 시기가 차이가 있지만 전당대회 혹은 기타 다른 방법을 통해 당의 간판을 내리거나 이른바 '친노그룹'만이 남는 소수정당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결국 김한길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연설에서 언급했던 "열린우리당 창당이라는 정치실험"은 실패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현재의 지리멸렬한 모습을 딛고 민주당이나 고전 전 총리 등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범여권 통합신당'으로 갈지 아니면, 또 한 번 '분당'의 아픔을 겪을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해방 이후 최초의 개혁세력에 의한 의회 권력 획득'은 한낱 '정치실험'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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