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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관 북한측 수석대표 |
(베이징=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벼랑 끝 전술이 북한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6자회담 일정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북한이 오히려 협상 상대국들의 역(逆) 벼랑 끝 전술에 직면하고 있다.
북한이 11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북.미 베를린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전격 공개하며 `미국의 배신' 운운하자 다른 참가국들이 `협상결렬도 불사하는' 자세로 북한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
특히 주요 협상 상대인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11일 `한가롭게' 미술관에 나타난 것은 북한엔 엄청난 심리적인 압박으로 다가갈 법하다.
힐 차관보는 전날에 이어 12일 오전에도 "오늘이 이번 회담 마지막 날"이라고 못박으며 "북한이 결정을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더 나아가 "이런 협상에는 어떤 주기가 있다"면서 "얼마 후일지 모르겠지만 정치적 기후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이번 회담이 북한에겐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넌지시 암시하기도 했다.
의장국인 중국도 북한의 복잡한 심사에는 아랑곳 않고 11일 수석대표 회의에서 사실상의 협상시한을 12일로 통보했다.
에너지 제공 문제에 적극적인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던 러시아측도 수석대표의 개인일정으로 인해 "13일에는 떠난다"고 못박은 상황이다.
일본은 납치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으면 대북 지원에 동참할 수 없다는 시큰둥한 입장을 보이며 북한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북한은 이처럼 자신들의 벼랑 끝 위협을 무시하며 `합의도출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상관없다'는 일부 대표단의 `오불관언(吾不關焉)'의 태도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다.
초강수 카드를 꺼내들어 위기를 최고조에 이끈 다음 실리를 챙기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그동안 여러 협상장에서 유감없이 `효력'을 발휘했었다.
과거 6자회담 때마다 명절이나 휴일을 활용, 막판까지 버티며 강공을 펴오던 북한은 이번만큼은 `민족 최대의 명절'로 일컫는 오는 16일 김정일 북한 위원장의 생일을 앞두고 오히려 심리적인 수세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에게 `명절선물'을 쥐여줘야 하는 북한 대표단은 다른 참가국만큼이나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상황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협상 상대국들은 이미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으로 북한이 내밀 수 있는 카드가 상당부분 고갈된 상황에서 더 이상 위기를 고조시킬만한 마땅한 소재가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북한이 1년5개월여의 대북 금융제재로 절박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는 점도 각국이 북한의 벼랑 끝 위협을 무시할 수 있게끔 만드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한국은 양측의 벼랑끝 전술 속에서 북한과 미국을 다독이며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날 회담장을 향해 숙소를 나서며 협상전망에 언급, "북한이 오늘 뭘 가져오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베이징 하늘은 밝은데 6자회담 앞길은 잘 보이질 않는다"고 답답한 심경을 표시했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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