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오는 11일(수)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개최되는 ‘제2차 JTBC 태블릿 특검 토론회’에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이 낭독할 감사의 글입니다. 지난 5월 17일 약 1년여의 투옥생활을 마치고 석방된 지 4개월 정도 지났습니다. 구속 기간 중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가 주도하여 홍문종 공동대표와 김진태 의원, 박대출 의원 등등이 참여하여 발의한 태블릿 조작 특검법, 그리고 태극기혁명운동본부 국본의 줄기찬 구명집회, 태블릿특검추진위의 전방위 홍보 활동 등으로 저는 석방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제가 구속된 기간에 채명성 변호사는 ‘탄핵 인사이드아웃’이란 책에서 태블릿 조작 의혹을 제기했고, 제가 석방된 이후에도 우종창 기자, 이경재 변호사, 정준길 변호사는 사기 탄핵 관련 자신들의 책에 모두 태블릿 사건을 비중있게 소개하였습니다. 미국 지식인 20명의 제 석방 탄원 서명을 받아준 미국의 타라 오(Tara O) 박사는 저의 재판을 참관해주었고, 미국 월드트리뷴(World Tribune) 紙는 태블릿 사건을 다룬 타라 오 박사의 공개 보고서를 상세히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본의 겟칸하나다(月刊Hanada) 紙는 저의 옥중수기를 게
※ 본 칼럼은, 일본의 유력 시사잡지 ‘겟칸하나다(月刊Hanada)’의 인터넷판인 ‘하나다프러스(Hanadaプラス)’에 2019년 8월 23일자로 게재된 ‘헌법에 무지한 ‘표현의 부자유전 · 그후’, 아사히신문의 병리(憲法に無知な「表現の不自由展・その後」と朝日新聞の病理)’를 ‘겟칸하나다’ 측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이다. (번역 : 황철수) 헌법에 무지한 ‘표현의 부자유전 · 그후’, 아사히신문의 병리(憲法に無知な「表現の不自由展・その後」と朝日新聞の病理) [필자소개] 본 칼럼의 필자는 키사 요시오(木佐芳男) 씨로, 1953년 시마네(島根) 현 이즈모(出雲) 시 출생. 1978년 요미우리신문사에 입사했으며, 외보부(外報部, 현 국제부), 뉴델리 특파원, 여론조사부(일본·미국, 일본·미국·유럽, 일본·소련 국제여론조사를 담당), 요미우리 헌법 연구위원, 독일 본 특파원, 독일 베를린 특파원 등을 거쳐 1999년부터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다. 2013년 가을, 부모를 돌보기 위해서 이즈모로 U턴했다. 저서에 ‘'반일'이라는 병’ GHQ 미디어에 의한 일본인 세뇌(마인드콘트롤)를 풀다(「反日」という病 GHQ・メディアによる日本人洗脳(マインド・コントロール) を解く)
<조국 교수, 일본어 문헌 표절 및 버클리대 전문박사 논문 표절 재검증 문제 관련 기사> 1.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의 비위 혐의 관련 미디어워치의 특종들 2. 조국 석사논문 일본 문헌 대거 표절, 미디어워치 자료로 조선일보 대서특필 3. 미디어워치가 적발한 조국 일본 문헌 표절, 문화일보 1면으로 다뤄 4. TV조선도 미디어워치가 적발한 조국 일본 문헌 표절 문제 다뤄 5. 조국 일본 문헌 표절, “서울대 연구윤리지침 상으로도 연구부정행위” 6. 서울대, 조국 장관 석사논문 일본 문헌 표절 재조사 결정 7. 조국, 논문 표절 조사 대비하나 ... 장관 사표수리 20분만에 긴급 교수 복직신청 8. 서울대, 조국 버클리대 전문박사(JSD) 논문 표절도 조사 검토한다 9. 조국 표절 등 ‘논문 3대 의혹’ 서울대 본조사...주요 신문들 대서특필 본지 산하 연구진실성검증센터가 조선일보와 공동으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일본 문헌 대량 표절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조선일보는 5일자 ‘조국 석사논문, 日 법학책 33군데 출처 안 밝히고 베꼈다’ 제하 사회 12면 기사로 조국 후보자의 서울대 법학 석사논문이 십여 개 이상 일본 문헌을 짜깁기 식으로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공학박사)가 유튜버 안정권, 김정민 씨의 학력-경력 위조 의혹과 이를 둘러싼 각종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지만원 박사는 3일 ‘지만원TV’ 103화 방송 이후 시스템클럽에 남긴 글에서 “오늘 방송에서 내가 강조한 것은 우선순위로 볼 때, 거짓말 잘 하는 조선인의 DNA를 정직한 말만 하는 한국인의 DNA로 체인지 하자는 호소내용과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및 일본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소개하는 것이었다”며 “그런데 이 방송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니 학습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내편 네 편 각자의 주장들을 내세우며 지만원을 공격하는 글들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지 박사는 “이 나라에는 ‘반일종족’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친안정권 종족주의’도 있고, ‘친김정민 종족주의’도 있는 모양”이라며 “오늘 댓글을 보니 오늘이나 조선시대나 입는 옷만 다르지 내면의 정신세계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 박사는 안정권-김정민 진영에 공개 질문을 했다. 안정권씨에게는 정말로 세월호 설계를 했는지, 또 세월호 설계를 했다는 것을 유죄로 인정한 판결문이 있는지를 물었고, 김정민씨에게는 박사학위와 박사논문을 제시하고 논문의 대강(Abstra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전세계 70여 개 도시에 지사를 둔, 화교자본으로 설립된 미국 방송국 NTD(New Tang Dynasty Television, 新唐人電視臺)가 한국-대만 국교정상화 선언식을 집중 조명했다. NTD는 중국 공산당의 눈치를 보지 않고 ‘검열 없는 뉴스(uncensored news)’를 보도하는 언론으로 이름 높다. 해외 화교 자본으로 미국에서 설립된 덕분에 NTD는 중국 내 인권문제와 공산당의 부패를 정면으로 다룬다. NTD는 에포크미디어그룹(the Epoch Media Group) 계열사이기도 하다. 에포크미디어그룹은 2019년 페이스북과 유튜브, 트위터를 합쳐 30억뷰를 달성했다. 또 지난 미국 대선에서는 강력한 트럼프 지지성향 언론사로 등장해 국제사회에서 주목 받았다. NTD는 지난달 24일자로 ‘한국 사람들이 모여 대만과의 국교회복을 외치고, 대만을 한껏 높이다 (韓集會呼籲韓台恢復邦交 力挺台灣)’는 제목으로 2분3초짜리 보도를 내보냈다. 또 NTD 아태지국(NTDAP) 은 ‘대만을 한껏 높이다! 백여명의 한국사람이 대만과 한국의 국교회복을 외쳤다(力挺台灣! 南韓百人集會籲台韓恢復邦交)’는 제목으로 2분 49초 분량으로 보다 상세하
시스템공학자이며 5.18 전문가인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공학박사)의 국가경영포럼 강연이 8월 31일 저녁 6시 여의도 보훈회관 대강당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날 강연은 미디어워치 변희재 대표고문과 황의원 대표이사가 지만원 박사의 이력을 간략하게 소개한 후 지 박사가 애국우파 운동에 투신하게 된 계기를 설명한 다음, 청중들의 질문에 지만원 박사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질의응답에는 변 고문도 적극 참여했다. 최근 자신의 회고록인 ‘뚝섬무지개’를 발간한 지만원 박사는 이날 월남전 참전과 미국 해군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수료하던 과정, 김대중 좌익정권 말기에 겪은 고초 등을 설명하며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지 박사는 “월남전에 44개월간 참전했는데, 임시대위 신분으로 포대장이 됐다”며 “베트콩의 지속적인 기습공격과 폭염으로 인해 저하된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더운 날씨를 감안해서 병사들에게 군복 바지를 잘라서 입어도 좋다고 했으며, 병사들의 사격 능력을 개선시키기 위해 당시 생소했던 분임토의 방식을 통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했다”며 “결국 일부 병사들의 총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결
이전기사 : [전강수 교수에게 답한다 ②] “작업배치에서의 민족차별”과 ‘노예적 일상’의 문제 [이우연 ·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왜 이리도 천박할까? 이렇게 무례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올까? 무식하면 예의라도 갖춰야 더 배울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다음은 전강수 교수가 비판이랍시고 내뱉어낸 저열한 그의 인격이다. “한 탄광에서 나온 사료 하나로 민족 간에 임금 차별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또 어떤가? 설사 그 사료가 일반적인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조선인이 일본인에 비해 위험한 작업을 맡았다면 양자 간에 임금이 비슷해지는 것은 당연하니 말이다. 그걸 가지고 조총련계 학자 박경식의 '민족적 임금차별론'을 격파한 듯 호들갑을 떠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여기서 전 교수가 거론한 “한 탄광”이란 나가사키에 있는 일본질소(日本窒素) 계열의 에무카에(江迎) 탄광을 말한다. 하지만 필자는 에무카에 탄광 한 사례로 민족간 임금차별이 없었다고 결론내린 것이 아니다. 임금에 있어서 민족차별이 없었다는 서술의 저본이 된 것은 2016년에 ‘경제사학’ 61호에 발표한 필자의 논문, ‘전시기(1939-1945) 일본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반공 애국보수 잡지 ‘겟칸하나다(月刊 Hanada)'가 10월호에 본지 변희재 대표고문의 옥중수기와 의견광고를 게재했다. 잡지는 8월 26일부터 일본 시중 서점에 판매가 시작됐고 발매 첫날부터 일본 현지에서 매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겟칸하나다’는 이번호에서 ‘한국이라는 병(韓国という病)’을 테마로 다루면서 친한파 논객인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사쿠라이 요시코(櫻井よしこ) 등은 물론, 한일 양국의 대표적인 징용공 문제 전문가인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하지만 이중에서도 특히 화제를 모으고 있는 기고문은 역시 변희재 고문의 한국 옥중수기 기고문인 ‘문재인의 정치범수용소(文在寅の「政治犯收容所」)’다. 변희재 고문은 이번 기고문에서 문재인 정권하 위선적 언론탄압과 극단적 반일조장이 빚어지고 있는 원인으로 태블릿조작과 사기탄핵으로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의 취약한 헌정 정통성 문제를 제시했다. 탁월한 진단에 ‘겟칸하나다’ 편집진들은 물론, 평범한 일본 독자들도 깊이 공감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기고문의 한국어판인 ‘가짜 대통령, 문재인’은 8월 24일 온라인판 ‘겟칸하나다’인 ‘하나다프러스(Hanadaプラス)
본지가 변희재 대표고문과 황의원 대표이사의 투옥 기간, 변 고문과 본지를 음해한 방송사들과 신문사들에 대해서 지난 19일자로 언론중재위원회(이하 언중위)에 반론보도 제소조치를 진행했다. 본지는 ‘한겨레’와 ‘중앙선데이’, ‘인터넷중앙일보’에 대해서, 변희재 고문은 ‘JTBC’, ‘KBS’, ‘MBC’, ‘SBS’에 대해서 각각 제소했으며 총 13건(중복 제외하면 총 10건)의 관련 보도가 이번 제소의 대상이 됐다. 이들 언론사는 특히 금년 초 자유한국당 대표 경선 당시 황교안 후보의 태블릿 관련 발언을 공박하면서 확정되지도 않은 태블릿 재판 1심 판결 내용을 인용, 본지와 변 고문을 허위주장을 하는 이로 몰았다. 이번 제소를 주도한 본지 황의원 대표이사는 “확정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피고인이 받는 혐의 내용은 아직 확정적 사실이 아니라 잠정적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며“때문에 형사재판 관련 보도는 원칙적으로 피고인의 사정이나 주장도 제목과 기사에 충실히 반영되어야 하는데도 관련 주류 언론들의 보도는 하나같이 전혀 그렇지 못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황 대표는 “더구나 변 고문과 미디어워치는 1심 판결에 불복, 즉각 항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과수가 태블릿PC가
이전기사 : [전강수 교수에게 답한다 ①] “강제징용”에 대한 오해와 왜곡 [이우연 ·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전강수 교수의 말을 계속 옮겨보자. “이 박사는 ‘반일종족주의’ 82-4쪽에서 조선인이 작업 배치에서 불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는 바로 뒤 85-6쪽에서는 위험한 작업을 맡은 조선인의 비율이 일본인보다 2배나 높았고 그 결과 사망률도 높았다고 말한다. 이건 자가당착 아닌가?” 타인을 주장을 비판하려면, 힘써 그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진정한 비판은 그 뒤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하지만 전 교수는 논리적 모순을 찾겠다는 욕심이 과하여 필자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조선인 전시노동자 중 가장 많은 것이 탄광의 채탄부였다. 그들의 작업은 2:1의 비율로 일본인들과 함께 작업조를 구성하여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였다. 채탄 작업에서는 작업의 안전과 효율을 위하여 경험이 풍부한 광부가 탄을 캐는데, 그들을 선산(先山)이라고 한다. 선산이 캐낸 석탄을 모아 담고 컨베이어까지 운반하는 사람들을 후산(後山)이라고 했다. 일본인들은 선산, 조선인들은 후산이었고, 선산과 후산의 비율은 대체로 1:2였다. 작업조의 구성과 역할분담은 첫째, ‘조
※ 본 콘텐츠는 ‘위키피디아 일본어판(ウィキペディア 日本語版)’에 게재된, ‘한국해군 레이더 조사 문제(韓国海軍レーダー照射問題)’ 항목을 번역한 것이다(기준일자 2019년 8월 24일판, 번역 : 박아름). 본 항목 편집 공개는 한일 상호 이해를 위한 ‘위키피디아 일본어판’ 번역 프로젝트의 다섯번째 사업으로, 이번 항목은 기존 역사적 논의와 관계된 항목들과는 다소 궤를 달리 한다. 하지만, 본 사안은 근래 한일 정부간 가장 첨예한 입장 차이가 있었던 사안이면서, 차후에도 두고두고 심각한 한일 외교안보 분야 갈등으로 번져나갈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일본 쪽 입장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위키 내용 일체를 번역해 소개한다. (관련기사 : 니시오카 쓰토무, “한일 레이더 갈등 문제, 주요 탈북인사들 강제북송 공작이었나”)기술적인 내용을 다루는만큼 정확한 논의를 위해서 이번 항목은 각주까지도 모두 번역했다. 이 사안에 대한 일본 측의 공식 입장은 일본 방위성의 다음 링크를 참고하라. 일본 방위성 - 한국해군 함정에 의한 화기관제 레이더 조사 사안 (한국어판) 한국해군 레이더 조사 문제(韓国海軍レーダー照射問題) ‘한국해군 레이더 조사 문제(韓国海軍レーダー照射問題)’란 20
※ 본 콘텐츠는 ‘위키피디아 일본어판(ウィキペディア 日本語版)’에 게재된, ‘일본해 호칭 문제(日本海呼称問題)’ 항목을 번역한 것이다(기준일자 2019년 8월 23일판, 번역 : 황철수). 본 항목 편집 공개는 한일 상호 이해를 위한 ‘위키피디아 일본어판’ 번역 프로젝트의 네번째 사업이다. 사실 본 항목 번역 자체는 이전 사업인 ▲ ‘일본의 위안부(日本の慰安婦)’(한국어 번역) 항목, ▲ ‘일본통치시대의 조선인징용(日本統治時代の朝鮮人徴用)’(한국어 번역) 항목, ▲ ‘다케시마(竹島), 시마네 현(島根県)’(한국어 번역) 항목과 엇비슷한 시점에 이미 1년여 전에 이뤄졌으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뒤늦게 빛을 보게 됐다. 대신에 그래도 최신 내용을 반영시켰고 감수에도 더 노력을 기울였다. 동해/일본해 호칭 문제에 일본 측의 공식적 입장은 일본 외무성의 다음 링크를 참조하라. 일본 외무성 - 일본해 호칭 문제 (한국어판) 일본해 호칭 문제(日本海呼称問題) ‘일본해 호칭 문제(日本海呼称問題)’는 국제적으로 '일본해(日本海)' 또는 그 동의어로 불리고 있는 해역의 명칭을, 대한민국(한국)이 변경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호칭 문제이다. 한국은 1992년도에 문제 제기를 한 이후
이전기사 : [위키피디아 일본어판 번역] ‘일본해 호칭 문제(日本海呼称問題)’ (1) 6 양국의 주장 7 '일본해' 표기에 대한 한국의 국제 항의 활동 7.1 한국 국내 7.1.1 미술품 철거 7.1.2 정부 발행 편람의 회수 7.1.3 이케아 7.2 미국에서 '동해 '표기 활동 7.2.1 Google Earth 7.2.2 뉴저지 허드슨의 한국 전쟁 기념비 7.2.3 뉴욕타임스 의견광고 7.2.4 J. 크루의 일본 지진 재해 부흥 T셔츠에 항의 7.2.5 버지니아 주 '동해' 병기법 7.3 유럽에서 '동해' 표기 활동 7.4 유엔에서 '동해' 표기 활동 7.4.1 유엔 본부 콘서트에서 배포한 팸플릿 7.5 일본에서 '동해' 표기 소동과 활동 7.5.1 JTB 가이드북 7.5.2 돗토리 현 '한국인 구출 기념비' 비문 7.5.3 산토리 한국 소주 7.5.4 게임 관련 7.5.4.1 대항해시대 Online 7.5.4.2 PlayStation 3 7.5.5 대영박물관 전 7.5.6 무사시노 시립 중학교 교재 8 연표 9 다른 해역에서의 유사한 문제 ‘일본해 호칭 문제(日本海呼称問題)’ [위키피디아 일본어판 번역] ‘일본해 호칭 문제(日本海呼称問題)’ (1) [위키
[이우연 ·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전강수 교수(이하 전 교수로 칭함)가 우리가 최근 발간한 단행본 ‘반일종족주의’(이영훈, 김낙년, 김용삼, 주익종, 정안기, 이우연 저, 미래사)에 대해 지난 8월 14일, 오마이뉴스에 비판문을 기고했다. 필자(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가 집필한 식민지기 말기, 전시 조선인노동력 조달 문제, 소위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전 교수의 비판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강제동원 파트 집필을 담당한 이우연 박사는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가 관련 없는 사진으로 일제 강제동원의 참상을 알린 사실을 발견하고는 의기양양해진 모양이다. 마치 서 교수가 실수한 것이 강제동원이 없었다는 증거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우연 박사 스스로 인정하는 대로, 1944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8개월 동안 무려 10만 명 가까운 조선인 노동자가 징용, 즉 강제동원을 당했다.” 필자는 서경덕 교수가 이용한 사진이 엉뚱한 것이었다는 이유로 징용과 같은 “강제동원이 없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저 문장조차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필자는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한, “염전노예”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사역되던 1926년
이전기사 : [위키피디아 일본어판 번역] ‘다케시마(竹島), 시마네 현(島根県)’ (2) 4 한국에 의한 점령 상황 4.1 섬의 현황 4.2 관광지화 4.3 사격 훈련 실시 5 러시아 중국의 주변 해역에서의 활동 6 다케시마에 관한 사회 정세 6.1 한국 사회의 상황 6.1.1 한국의 영토 교육 6.1.2 “독도의 달”· “대마도의 날” 6.1.3 학술계에서의 활동 6.2 일본 사회 상황 6.2.1 일본의 영토교육 6.2.2 일본 정부에 의한 자료 데이터베이스화 6.2.3 오자와 이치로 비서의 발언 6.2.4 홋카이도 교직원 조합에 의한 자료 배포 6.2.5 도로치바의 일본 정부 규탄 6.3 우표 발행 6.3.1 “다케시마 우표” 6.4 지도 등의 명칭 · 위치 표기 6.4.1 '다케시마 박물관'의 릴리프 6.4.2 Xbox Live 6.4.3 오레곤 자동차 관리국 한국어판 설명서 6.4.4 한국 지폐의 지도 표기 6.4.5 Google 지도 등의 기술 6.5 기타 견해 7 연표 7.1 에도 시대 7.2 메이지 이후 7.3 포츠담 선언 수락 후 7.4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 서명 후 7.5 일한 국교 정상화 후 8 다케시마에 상륙한 유명인 9 참고문헌 다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