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심규진 | 정치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원칙과 현실이 충돌할 때다. 지도자는 그 순간 두 가지 선택 앞에 선다. 끝까지 버티다 몰락하느냐, 아니면 현실을 인정하고 살아남느냐.
최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선택한 길은 분명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 복귀를 반대하는 이른바 ‘절윤 선언’에 국민의힘 의원 106명이 서명하며 원내 압박이 극대화됐다. 그 상황에서 장 대표 역시 그 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정치적으로 보면 굴복처럼 보일 수도 있는 선택이다. 실제로 일부 지지층에서는 “결국 항복했다”는 비판도 터져 나왔다.
그러나 정치의 역사는 종종 그런 선택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평가해 왔다.
프랑스의 왕 앙리 4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파리는 미사를 드릴 가치가 있다.”
위그노(프랑스 개신교) 지도자였던 그는 프랑스 왕위에 오르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당시 프랑스 정치 현실 속에서 왕이 되기 위해서는 가톨릭으로의 개종이 사실상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신앙적 배신이라는 비난이 거셌지만, 그 결정 덕분에 그는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집권 이후 그는 프랑스 종교 전쟁을 종식시키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 낭트 칙령이다.
낭트 칙령은 주류 가톨릭 세력에 의해 박해받던 위그노에게 종교적 자유와 정치적 권리를 인정한 조치였다.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서로 적대하던 두 종교 세력이 일정한 공존의 질서를 인정한 정치적 타협이었다.
앙리 4세의 개종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국 공존 질서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현실주의였다.
지금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슷한 정치적 긴장이 나타나고 있다.
한쪽에는 원내 권력 구조가 있다. 106명의 의원들이 동시에 압박하는 상황에서 당대표가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는 당원들이 있다. 과거 보수 정당의 정치 구조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이었다. 조중동과 같은 제도권 미디어, 당내 중진 정치인들, 그리고 공천권을 쥔 권력자들이 정치 질서를 설계했고 당원들은 동원의 대상에 가까웠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원 중심주의, 상향식 정치, 그리고 뉴미디어 정치가 등장했다. 그 구심점이 바로 이른바 ‘대자유총’으로 불리는 뉴미디어 정치 생태계다.
최근 열린 ‘당대표를 지키다’ 집회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당대표의 연임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린 것은 사실상 전례가 없다. 원내 권력과 별개로 당원들이 직접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흥미로운 장면도 있었다. 그동안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해 왔던 전한길 씨까지 집회에 참석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것도 매우 겸손하게 몸을 낮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개인 지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금 윤석열 지지층 상당수는 정치적 낭인 의식 속에 있다.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다는 상실감, 정치적으로 소외됐다는 감정이 강하다.
그런 상황에서 장동혁 대표는 완벽한 지도자가 아니라 “같이 밀려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샌드위치 리더십, 코너에 몰린 당대표라는 이미지가 오히려 정서적 연대의 기반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앙리 4세 역시 비슷했다. 그는 완벽한 신념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개종을 반복하며 정치적 현실과 타협했던 지도자였다. 그러나 위그노는 그의 정치적 ‘바람기’를 어느 정도 흐릿한 눈으로 용인했다. 그에게 왕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때로 완벽한 순수성보다 살아남을 수 있는 플랫폼을 요구한다. 지금 장동혁 대표에게도 비슷한 역할이 부여되고 있는 듯하다.
원내 권력과 장외 민심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그는 한쪽에 완전히 투항하지도 않았고, 다른 한쪽과 완전히 결별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양쪽의 요구 사이에서 최소한의 접점을 찾는 길을 선택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굴복이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자신만의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려는 현실주의일 수도 있다.
보수 진영은 지금 사분오열 상태다. 윤석열 이후의 리더십 공백 속에서 원내 권력, 당원 정치, 뉴미디어 정치가 서로 충돌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다. 장동혁은 지금 당원들의 지지를 받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정치의 역사에서 새로운 리더십은 종종 이런 균열 속에서 등장한다.
그래서 질문은 이것이다. 장동혁의 절윤 선언은 단순한 정치적 후퇴일까, 아니면 훗날 보수 정치 내부의 공존 질서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낭트 칙령’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역사는 아직 그 답을 쓰지 않았다.
□ 심규진 스페인 IE대학교 조교수 약력
정치 문법을 문화 전쟁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며, 우파의 문화적·정치적 복권과 승리를 이끄는 담론을 제시하는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 연구자다. 호주 멜버른대학교, 싱가포르 경영대학교(SMU) 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싱가포르 교육부 미디어개발국 및 스페인 과학혁신부의 지원을 받아 국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사,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석사, 미국 시러큐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국제 커뮤니케이션 학회(ICA)에서 최고 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지역민방 청주방송과 미디어다음에서 기자로 활동했고,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학문과 실무를 아우르는 보수 우파의 브레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국민스피커 심규진 교수〉를 통해 정파적 이해에서 자유로운, 독립적 민심과 데이터 기반 정치 평론이라는 대중적 실험에 나서고 있다.
▶ 유튜브 검색: @kyujinshim78
저서로는 『하이퍼젠더』,『K-드라마 윤석열』, 『새로운 대한민국』(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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