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선대위 출범식에서 "한계에 부딪힌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 경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 청와대와 중앙부처부터 옮겨가겠다"고 공약했다. 노 전 대통령은 “수도권 집중과 비대화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국가적 결단이 필요하다"면서 "고속철의 건설과 정보화 기술의 발전, 청주국제공항 등은 행정수도 건설의 여건을 성숙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노 후보는 "특히 청와대 일원과 북악산 일대를 서울시민에게 되돌려 줌으로써 서울 강북지역의 발전에 새 전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010년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세종시 문제의 시작이었다. 노대통령이 대선을 3개월 가량 앞두고 불쑥 행정수도 이전론을 던진 것은 지역균형발전의 소신도 있겠지만, 충청권 득표 전략의 일환이었다. 실제로 수도 이전 수준의 공약이라면 선대위 내부의 치열한 정책토론이 필요했음에도, 이 과정이 없었다. 당시 노후보 캠프에서 경제 정책을 담당했던 한 인사는 “지역균형 발전은 노대통령의 원칙과 신념이긴 하나, 충청지역에 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는 것은 사실 상 득표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 조선일보 아침논단 기고글입니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9월 30일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을 갖고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경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 청와대와 중앙부처부터 옮겨가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대선을 불과 3개월가량 남겨둔 시점에서 선대위 내부에서조차 정책적 논의없이 던진 발언이다. 노대통령은 이 공약 하나로 충청권에서 득표 1위를 차지했다. 노대통령은 2003년 11월6일 '신행정수도건설 국정과제회의'에서 “이 주제로 재미 좀 봤다. 이것 하지 않으면 한나라당이 정치적으로 불리할 것”이라며 총선을 앞둔 시기에 한나라당을 압박했다. 이에 당시 한나라당의 최병렬 대표는 충청권 의원들로부터 극심한 압력을 받으며 권고적 당론으로 ‘찬성’을 채택, 12월 29일 본회의에서 신행정수도특별법은 199명 중 167명의 찬성으로 재적 의원 3분의 2를 가볍게 넘어서며 통과되었다. 박근혜 전 대표도 이때 찬성표를 던졌다. 2004년 탄핵을 거치며 박근혜 대표는 새로운 한나라당 대표로서 총선을 지휘하고 있었다. 박 대표는 충청권 선거유세에 다닐 때마다 행정수도 이전 관련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니 아무런 걱정 안 해
지난 2월 26일 창간준비위를 띄우며, 창간준비호를 발행한 미디어워치에 대해 꽤나 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시각을 보냈다. 첫째는 대표를 포함하여 상근인력 3명에서 어떻게 전문 매체비평 주간지를 낼 수 있냐는 것이었고, 둘째는 언론노조 기반의 공고한 기득권 벽을 치고 있는 미디어오늘과 경쟁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이제 미디워치 41호를 송년호로 내는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그런 우려와 걱정은 대부분 맞아들어갔다. 그러나 반대로 이야기하면 바로 그렇게 걱정을 하는 분들이 조건없이 자발적으로 도와주었기 때문에 무사히 41호를 마치며 한해를 보낼 수 있기도 했다.미디어워치를 도와준 분들, 미디어워치가 망하기를 바랬던 분들 시민을위한변호사들의 이헌 공동대표와 미디어발전국민연합의 강길모 대표, 그리고 방문진의 최홍재 이사, 한국자유연합의 김성욱 대표는 필요할 때 언제든지 칼럼을 게재해주었다. 또한 뉴데일리, 독립신문, 프리존뉴스 등 인터넷미디어협회 소속사에서는 미디어 단신을 무상으로 제공해주었다. 방문진의 김영 감사 같은 분은 그 먼 곳에서 찾아와 젊은 사람들이 수고한다며 피자 한 판 사주고 가는 등등 크고 작은 도움을 주신 분들은 수없이 많다. 이들 이외에도 언론계와
MBC의 상황이 점입가경이다. 방문진은 12월 7일 엄기영 사장을 비롯한 7명의 본부장의 사표를 제출받은 뒤, 제작, 보도, 편성, 경영 등 4명의 본부장의 사표만 처리했다. 엄기영 사장은 자신의 팔다리가 잘린 채 살아남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방문진의 김우룡 이사장과 엄기영 사장 간의 모종의 협상이 있었다는 설이 우세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상황을 보면 전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4명의 신임 본부장 인사에서 경영본부장 이외의 보도, 편성, 제작본부장이 모두 임명되지 못한 것이다. 엄기영 사장이 추천한 인물도, 김우룡 이사장이 추천한 인물도 모두 방문진 투표에 부결되었다. 대체 MBC와 방문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또한 이러한 파행사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신임 본부장 임명이 결국 해를 넘어갈 전망이다. 방문진은 신임본부장 임명 표결이 부결된 이후 뚜렷한 움직임을 보여주지고 못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내년 1월 6일에 잡힌 방문진 정기 이사회 때까지는 사태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즉 해를 넘기는 셈이다. 이러한 파행 사태의 1차 책임은 엄기영 사장의 무능과 탐욕 탓으로 보인다. 이미 엄기영 사장은 지난 9월 유임의 조건으
한명숙 전 총리의 곽영운 전 대한통운 사장 금품수수 자리에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동석했다고 한겨레신문이 보도했다. 물론 한 전 총리 측은 금품수수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나, 로비의 목표인 석탄공사 사장의 관리권자인 당시 산자부장관 정세균 대표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현재 민주당은 친노인사인 안희정 최고위원이 중심이 되어 한명숙 전 총리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이다. 그러나 한 전 총리 이전에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에 대해서도 검찰발 보도가 잇따랐지만, 민주당은 오히려 이를 ‘게이트’라 명명하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남의 당의 인사가 검찰발 보도에 피해를 당하면 수사를 촉구하고 자당의 인사가 당하면 탄압이라 주장하는 논리적 파탄에 이른 것이다.정세균 대표는 더 이상 한명숙 지킬 명분 상실 현재로서 정세균 대표의 과거 행적 탓에 이제 더 이상 민주당이 한명숙을 지키기 위한 명분을 상실했다. 한명숙 지키기란 곧 정세균 지키기로 귀결되기 때문에 제 3자가 볼 때는 자당의 이권을 위해 법질서를 유린하는 불법 세력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한명숙씨는 노무현 정권 당시 총리를 지냈고
이명박 정부의 촛불 운동 탄압에 맞선다며, 구속자 석방·촛불 운동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에 13개국 143명이 서명한 호소문이 발표되었다. 노암 촘스키나 하워드 진과 같이 대표적인 미국의 좌파 지식인이 포함되어있어 친노좌파 매체에서는 이를 대서특필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 14개국 중에 눈에 띄는 두 나라의 지식인 혹은 시민운동가가 포함되어있어 눈길을 끌었다. 필리핀의 허버트 도체나(남반구초점 활동가)와 방글라데시의 바드룰 알람(방글라데쉬 크리속 연맹 회장)이다. 대체 이 두 명의 인물이 그간 무슨 민주화 활동을 해왔는지 국제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정치 후진국 필리핀과 방글라데시 인사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걱정한다? 그럼 해당 국가로만 이야기해보자. 필리핀의 경우 한국보다 월등히 앞서있던 경제를 파탄을 내버린 마르코스 독재 정권 이후에 경제와 민주주의가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부정축재로 구속되어 종신형을 받은 바 있는 영화배우 출신 대통령 에스트라다가 다시 정계 복귀를 시도할 수 있는 수준의 나라이다. 이런 에스트라다를 군부와 결탁하여 끌어내리며 대통령직을 승계한 현 아로요 대통령은 최근
언론인 조갑제 대표는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유력했던 지난 대선 직전 서울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10년 간 좌파 정권이 끝나고, 우파정권이 들어선다면, 삼성 등 대기업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서, 우파시민사회도 바른 목소리를 내야한다”, “우파시민사회가 끝까지 명백히 잘못된 기업의 관행마저 보호해줄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조갑제 대표의 주장은 논리적으로는 타당하나, 현실적으로 실천하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다. 12월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는 도청 녹취록을 인용해 '삼성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전 매체가 줄을 이어 보도하는 가운데 이른바 인터넷미디어협회 소속의 우파 인터넷매체는 4일 오후 6시까지 한 줄도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노회찬의 삼성X파일 관련 항소심, 보도 한줄도 하지 않은 우파 인터넷매체 물론 많아야 10명의 기자들이 일하고 있는 우파 인터넷매체의 보도 조직 특성 상, 여러 매체가 다 쓰는 기사는 오히려 누락하는 경우가 많다.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매체가 강점을 보이는 분야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 당시 중도우파 인터넷신문사들의 모임인 인터넷미디어협회(이하 인미협)와 소속사는 온갖 설움을 다 겪었다.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이 중심이 된 인터넷신문협회, 대자보와 민중의소리가 중심이 된 인터넷기자협회와 달리 인미협 소속사 기자들은 청와대 등 정부기관에 출입할 수 없었다. 당시 청와대 측과 협의할 때, “당신들은 보수라서 출입할 수 없다”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듣기도 했다. 또한 인미협의 주력 정책 사업인 포털 개혁과 관련하여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유독 인미협만 제외하고 정책협의체를 구성했다. 포털 측에서는 인미협의 포털 개혁방안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에 “영세상인들이 만들어놓은 정책은 고려해볼 가치도 없다”고 건의했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인미협 측은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던 필자와 사무국장이 항의 방문하였으나, “시장논리를 따르라”는 말을 듣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인미협은 물론 인미협 소속사가 가난하고 힘이 없으니 아예 낄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인미협 소속사가 정부 광고를 수주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인미협 소속사가 정부 광고를 받은 사례는 손에 꼽아야 한다.
2009년 타임지 11월 표지 모델로 필리핀의 복서 파퀴아오가 등장했다. 세계적인 시사 주간지 타임지의 표지에 권투선수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1930년대 미국의 황금시대 당시 KO열풍을 일으켰던 잭 뎀프시와 헤비급 25차 방어에 성공한 조 루이스, 그리고 무하마드 알리와 마이크 타이슨 등만이 타임지 표지모델로 선정되었을 뿐이다. 타 스포츠 종목으로 확대해도,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골프 황제 타이거우즈, 베이징올림픽 수영 8관왕인 마이클 펠프스 수준이 되어야 타임지 표지 모델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 파퀴아오의 세계적인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타임지 표지 모델이 입증해준 셈이다. 파퀴아오는 1978년생으로 빵가게를 하는 아버지 밑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하게 자랐다. 주로 빈곤을 탈출하기 위해 복싱을 시작하는 여타의 필리핀 복서들과는 다른 환경이었다. 1995년 주니어플라이급(48KG)이라는 최경량급에서부터 시작하여 99년 한체급 위인 플라이큽의 챔피언 태국의 사사굴을 KO로 이기며 첫 세계타이틀을 획득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파퀴아오는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경량급의 우수한 필리핀 복서였을 뿐이다. 그러나 파퀴아오는 놀랍게도 1999
유시민이 국민참여당 서울시당 창당대회에서 "행동하는 양심,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는 대통령을 다시 만들자"면서 "제가 할 수 있으면 하고, 제가 못하면 할 수 있는 사람과 힘을 합쳐 함께 하겠다"며 대권 출마 선언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미 유시민의 대권 출마 선언은 친노 성향의 라디오21에서 생방으로 중계되었는데, 뒤늦게 참여당 지도부에서 언론에 다시 알린 것이다. 최근 참여당은 한국사회여론조사의 공식 여론조사에서 20%의 민주당에 13%로 바짝 추격하는 놀라운 상승세를 보여주었다. 창당도 하지 않은 정당이 벌써 이 정도이고, 유시민 역시 박근혜에 이어 부동의 대선후보 지지율 2위를 굳건히 지켰다. 유시민의 대권출마 선언은 이런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 지자체를 앞두고 참여당이 바짝 가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표현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유시민당, 1월 창당 전에 민주당 지지율 훌쩍 뛰어넘을 것 유시민은 현재 원내외 정치인 모두를 합쳐, 조직을 동원하지 않고, 자발적 참여자를 집회나 행사에 천 명 이상 모을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다. 현재 한나라당에서는 전여옥 정도가 간신히 가능할 것이며, 우파를 통틀면 정계에서는 없고, 조갑제, 김동길 선생 등 이른바
MBC로부터 9억 5천만원이라는 거액의 출연료를 받고 있는 유재석 측이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제작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유재석의 소속사인 디초콜릿 측은 “3년 전 MBC 부사장이 유재석의 소속사에 ‘무한도전’의 외주제작을 맡길 것을 약속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됐고, 또 하나는 소속사가 유재석과 ‘무한도전’ 출연 연장을 위한 재계약 시 외주제작건을 포함시킬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헤럴드경제 측이 보도했다. 유재석의 계약기간이 올해 12월로 종료되면서 유재석의 하차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디초콜릿 측은 3년 전 MBC 부사장이 외주제작권을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상기시키며 MBC 측을 압박하고 나선 것. 디초콜릿 측이 거대 방송권력 MBC를 대상으로 압박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과도하게 집중된 스타 권력 때문이다. 디초콜릿은 MC계의 1인자인 유재석은 물론, ‘무한도전’에 함께 출연하고 있는 노홍철, MC계의 2인자 강호등을 비롯, 김용만, 박경림, 윤종신 등등 스타급 MC를 보유하고 있다. 아무리 거대 권력 방송사라 해도 디초콜릿과 사이가 틀어질 경우 변변한 예능프로그램 하나 만들지 못하는 처지이다. 또한 유재석의 경우 같
지난 7월 31일 건국대 총학생회 등 좌파 학생들이 주최한 ‘20대 위기론’ 토론회에서 필자는 미국의 크리스휴즈와 마크주커그의 예를 들며 학생들에게 “386세대가 만들어놓은 판에 촛불 들고 있어봐야 아무 것도 변하는 것이 없으니, 스스로 기업을 만들고 정당을 만들어 정권을 창출하라”고 권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한 학생 청중은 “우리는 미국의 20대와 달리 그런 진취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교육을 받지 못했고 여유도 없다”고 반론했다. 20대 스스로 아고라에서 댓글이나 쓰고 촛불이나 들고 있는 것 이외에는 배운 게 없다고 실토한 이 발언은 국가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사안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는 대한민국의 20대가 어떻게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 학생의 말대로라면 대한민국의 젊은세대는 미국의 젊은세대에 한참 뒤떨어진 무능한 존재라는 것이고,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를 담았을 뿐이다.인터넷과 대중문화 영역, 대한민국 청년들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 하지만 외부로 표출된 현실과, 그 이면의 잠재적 가능성은 전혀 다르다. 지금 언론의 보도로만 볼 때, 20대는 낮에는 도
필리핀의 권투영웅 매니 파퀴아오가 푸에르토리코의 미구엘 코토를 12회 TKO승으로 이기고 6체급 정벌에 성공했다. 미구엘코토는 1회에 강력한 인스텝으로 파퀴아오를 압도하며, 예의 체급차에서 오는 힘과 맷집의 우위를 보이는 듯해다. 그러나 3회 파퀴아오의 번개같은 라이트훅 카운터에 다운을 당하면서, 경기는 기울기 시작했다. 특히 4회에 코토가 파퀴아오를 로프에 몬 채 연타를 퍼부을 때, 파퀴아오는 그림 같은 레프트 카운터 펀치를 장렬, 코토가 두 번째 다운을 당하면서, 경기는 원사이드 흐름으로 전개. 안면이 퉁퉁 부운 코토는 8회부터 마라톤 선수마냥 도망다니는데 급급했고, 보다 못한 심판은 12회에 경기를 중단시키며 파퀴아오의 TKO승을 선언했다. WBC 플라이급, IBF 슈퍼밴텀급, WBC 슈퍼밴텀급, WBC 라이트급, IBO 라이트웰터급을 석권한 파퀴아오는 WBA 웰터급 타이틀마저 가져오며 대망의 6체급 챔피언이 됐다. 파퀴아오는 최근 미국의 영웅 오스카델라 호야, 영국의 리키해튼을 모두 KO로 이끈데 이어, 중남미 복싱 최강국인 푸에르토리코의 영웅 코토마저 꺾으며, 아시아 영웅으로서의 위치에 우뚝 섰다. 이제 파퀴아오와 겨룰 만한 상대는 미국 복싱의 최후
내가 방문진 이사직에 지원했을 당시, 나는 좌파언론단체 측 지인에게 KBS와 방문진 이사직 지원자들 중 원하는 사람을 불러, 공개 공청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물론 KBS 이사직에 지원했던 김민준 실크로드CEO포럼 이사는 반드시 참여하고 검증 패널에 우파언론단체 측의 지원도 약속을 했다. 이 건은 성사되지 않았고, 좌파언론단체는 별다른 이유없이 우파단체 소속이라는 이유로 나를 비롯하여 여러 명을 부적격자 후보라 낙인 찍었고, 결국 좌파세력 측의 상상을 초월하는 결사적인 반대로 나는 탈락하게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방문진 이사 공개 공청회 때 패널 전원을 MBC 노조 측 인사로 구성해도 당당히 이들 앞에서 “MBC는 지금 한참 잘못되어있고, 내가 방문진을 통해 다 뜯어고치겠다”고 말할 자신이 있었다. 즉 방문진 이사 선임이 공개적이고 투명하면 할수록 선임여부를 떠나 나의 MBC 개혁관을 알리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방문진 이사들이 MBC 개혁에 역부족이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MBC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나를 떨어뜨린 친노좌파 언론세력의 선택은 그들로서는 올바른 판단이었다. 아마 내가 방문진 이사가 되었다면, 젊은 여성 아나운
유시민이 결국 친노신당에 입당하여 정치재개를 선언했다. 이는 손학규 대표 체제의 민주당에서 탈당한 유시민의 행보로 볼 때 충분히 예견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미 민주당의 간판으로 집권을 한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에서야, 굳이 사후 신변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신당창당에 소극적일 수 있으나, 유시민을 비롯한 친노세력으로서는 자신들의 정치 활동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유시민은 2002년도 개혁당 창당, 2003년도 열린우리당 창당에 이어 세 번째 신당 창당을 한 셈이다. 개혁당 창당의 명분은 후보 노무현을 흔드는 구 민주당 세력들로부터 노무현을 지키기 위하여, 열린우리당 창당은 2004년 총선에서 영남의 의석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그때에 비한다면 이번 친노신당 창당은 명분에서 크게 떨어진다.유시민, “민주당에는 꿈과 이상이 없다” 그래서 유시민이 내놓은 명분은 “민주당에는 꿈과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시민이 참여한 친노신당은 오마이뉴스, 한겨레, 프레시안, 경향신문 등이 주최한 진보연합 토론회에서 바로 이러한 창당 명분으로 공격받았다. 특히 경향신문의 이대근 정치국제 에디터는 “정당을 창당하려면 노선이 있어야 하는데 민주당의 노선과 무엇이 다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