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연의 머니클럽] 1997년 IMF가 터지기 전 100일, 그때도 괜찮다고 했다
인싸잇=박제연 | 1997년 11월 21일 우리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SNS가 없던 당시 환율이 얼마인지, 어떤 영향이 있는 것인지, 그리 관심도 없었고 몰랐던 우리에게 그 당시 언론과 정부는 어떤 경고를 줬을까? 100일 전으로 돌아가 보자. 1997년 8월 2일 “국내 외환위기 가능성 희박” 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한국은행은 헤지펀드의 환투기가 사실상 불가하다며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8월 말 우리 환율은 처음으로 900원을 넘겼다. 800원 밖에 되지 않던 환율이 900원을 넘어가며 이를 진정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됐다. 1997년 8월 25일 한국은행의 외환시장 과장은 인터뷰를 통해 “원화가치의 단기 폭락을 없을 것, 달러를 사재기할 경우 분명히 환차손을 보게 될 것, 한은은 달러당 905원 선을 넘지 못하도록 개입할 것” 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905원이 넘지 않도록 개입한다는 저 “905원” 이라는 숫자를 기억해 보자. 이 글의 뒤에 또 등장할 테니. 환율이 흔들리던 1997년 9월 신문지 상에는 “한국경제 단기불안, 중장기 전망은 밝아” 등의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환율은 진정되지 않았고 1997년 10월 29일 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