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과 한때 총부리를 겨눴던 베트남 참전용사(월맹군) 9명이 9일 오후 베트남전 이후 처음으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했다.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고엽제협회 주석단 소속인 이들 9명은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초청으로 이날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첫 일정으로 한때 적으로 싸웠던 한국군 파월장병이 영면한 국립 서울현충원을 찾았다.
이들은 서울현충원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현충탑 앞에 일렬로 도열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분향한 뒤 가벼운 목례와 함께 호국영령들을 참배했다.
특히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소속인 한국군 파월용사 120여 명이 한때 적이었던 이들과 함께 예를 올려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이들 월맹군 참전용사 가운데는 1975년 4월30일 탱크를 이끌고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현재 호찌민) 대통령궁을 접수했던 도 수엔 디엔(DO XUAN DIEN.76) 예비역 소장도 함께 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국립현충원 참배 배경을 묻는 질문에 "옛날의 전쟁은 다 과거"라며 "베트남전에서 베트남군도 죽었고 한국군도 죽었다. 과거는 다 지나갔다. 한국을 동반자이자 친구로 생각해서 참배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석정원 회장은 이들의 국립현충원 참배에 대해 "그들이 방한을 계기로 스스로 참배 의사를 비쳤다"며 "이념의 벽을 넘어 과거 불편한 관계를 말끔히 씻고 앞으로 국익을 위해 새장을 열어 나가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고엽제전우회 법률자문단장을 맡고 있는 홍원식 박사도 "기대할 수 없었던 적과의 화해라는 역사적, 국제 전쟁사적 의미가 담겨 있다"며 "한때 적이었던 한.베트남이 화해를 하는 마당에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 민족도 화해를 못할 이유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방한한 베트남 참전용사들은 국립현충원 참배에 이어 국가보훈처를 방문해 박유철 보훈처장을 접견했으며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정기총회 참석, 서울보훈병원 방문, 고엽제전우회 부산지부 방문, 합천 해인사 관람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 오는 16일 출국할 예정이다.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는 약 47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한국인 베트남 참전용사들 가운데 고엽제 피해자는 약 1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는 1998년 미국 법원에 미 고엽제 제조사인 다우케미컬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2006년 1월 미 고등법원의 승소를 이끌어 냈으며 현재 상고심이 진행중이다.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들 역시 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기각 판결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디엔 씨는 "10일 열리는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제10차 정기총회를 계기로 방한하게 됐다"며 "방한을 계기로 한국 고엽제 피해자들의 미국에 대한 소송 노하우를 전해 듣고 싶다"고 말했다.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고엽제협회는 2003년 결성됐으며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는 이들과 2004년 자매결연한데 이어 현재는 사이공과 호찌민에 각각 지부를 두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lkw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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