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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정책 실패 되풀이...제대로된 대책 세워야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천문학적인 혈세를 쏟아붓고도 농민들의 빚만 늘었다".

대표적인 개방 피해 산업인 농업 분야의 전문가들이 UR 협상 이후의 정책 실패를 지적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UR 등 과거의 주어진 개방과는 달리, 스스로 선택한 개방이기는 하지만 이에 따른 취약 산업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정부도 피해를 보는 농민의 소득을 보전해주고 일자리를 잃게 되는 근로자에 대해서는 전직 등 고용 지원책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 '졸속' 대책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되풀이된 정책 실패

한미 FTA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인 농업의 경우 1992년 UR 체결 이후 작년까지 보조금이나 융자 형태로 투입된 국고만 약 95조원에 달한다.

최근 농가의 부채 상환 능력이 개선되고는 있지만 가구당 농가부채는 작년 말 현재 2천816만원으로 1992년의 4.95배에 이른다.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배경에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예산지원 등 정책 실패가 자리잡고 있다. UR 직후 지방자치단체의 선심성 행정까지 맞물려 도저히 경쟁력을 갖출 수 없는 산간지역에까지 유리온실 설치 자금이 지원됐던 사실은 농정 당국의 뼈아픈 기억이다.

이에 따라 정부도 2003년 한-칠레 FTA의 타결을 앞두고 발표한 119조원 투융자 계획을 마련할 때에는 과거 정책실패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3년마다 투융자 사업을 평가, 조정하기로 했으며 지역클러스터 사업 등 현장을 중시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정책 실패 사례는 그치지 않고 있으며 가장 큰 원인중 하나로는 정치 논리의 개입이 꼽힌다. 119조원 투융자 계획과 거의 동시에 발표됐던 한-칠레 FTA 지원대책도 이런 사례의 하나다.

당시 정부 용역으로는 향후 10년간 발생되는 농업부문의 피해가 5천860억원이었지만 과수 농가와 정치권의 요구로 세 차례나 추가 대책이 발표되면서 FTA 이행지원기금만 1조2천억원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칠레산 포도.복숭아.키위가 밀려와 소득이 80% 이상 감소한 농가에 대해 지급할 계획이었던 소득보전 보조금은 이들 과일의 시장 수요 증가로 가격이 올라 지급한 사례가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또 폐과수원 지원 보조금은 1만1천여 농가에 지급됐지만 현재는 검역문제로 수입되지 않는 복숭아 과수원을 폐업하는 농가(9천여농가)에 주로 투입됐고,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됐던 포도는 오히려 재배면적이 한-칠레 FTA 발효전인 2003년보다 늘어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제도 개선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한 마을이 여러 부처의 지원사업으로 1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할당받게 되는 등 작년까지도 중복 지원 문제가 계속됐으며, 현장에서 정책을 집행하는 지방 농정체계가 허술해 정책 자금을 받아 엉뚱한 곳에 쓰는 농가의 '모럴 해저드' 사례도 사라지지 않고있다.



◇ 대책 제대로 만들어야

정부는 지난 2일 경제정책조정조정회의를 열고 한미 FTA 체결에 따른 국내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의 방향을 보면 농수산업의 경우는 직불금 등을 통해 피해 분야 종사자에게 소득을 보전해주거나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 폐업 지원금을 제공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시설 현대화나 브랜드 육성, 우수 품종 보급 등 경쟁력 제고 대책도 담았으나 이는 그동안 소관 부처별로 추진해왔던 방안들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대해서는 사업전환 지원과 경영자금 융자를, 해당 분야 종사자에게는 전직지원 장려금 등 지원책을 담고 있으나 구체성이 결여돼있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대책을 수립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던 탓도 있지만 과연 개방을 통해 우리 사회 전체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3일 장.차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워크숍에서 일부 장관들이 피해규모와 대책을 보고하면서 예상피해를 과장하고 실태에 어둡자 보고 부실을 질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일단 FTA에 따른 구체적인 예산이나 소요예산 등을 면밀하게 분석,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 밑빠진 독에 물붓기 이제 그만

전문가들은 직접 보상과 경쟁력 지원 정책 모두 필요하지만 농업 등 분야에 대한 직접 보상은 사회적인 형평성을 위해 철저한 근거에 의해 보상수준을 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서진교 무역투자정책실장은 "보상도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국민이 납득한다"며 "잘못 이뤄진 보상에 대해서는 사후 회수까지도 할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경쟁력 지원대책을 강화하되 전직.전업 프로그램이 시장 수요에 맞게 가동돼야 하며 정책 공급자의 시각이 아닌 일자리를 제공하는 수요자의 요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연구위원은 "현 고용안정센터만 해도 센터 종사자의 일자리만 늘렸다는 지적을 낳은 배경에는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시장 수요와 맞지 않는 점이 있기 때문"이라며 "현장에서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 여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농업의 경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라는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경영계획에 대한 검토와 컨설팅 등 정책 현장의 집행력이 담보돼야 한다고 배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KIEP 서 실장도 "농업의 경우 중앙 부처의 정책은 제대로 수립됐더라도 지방 농정이 이를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현장 집행 능력의 제고를 촉구했다.

철저한 사후 관리와 후속 평가 등 꾸준한 보완노력도 대책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는 개방에 따른 피해 지원대책의 효율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으로, 미국도 일반 실업자는 26주간 실업수당을 주고 개방에 따른 실업자는 2년간 실업수당을 지급하면서 직업훈련을 받도록 하고 있으나 이들이 재취업해 받는 임금은 일반 실업자보다도 오히려 낮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시욱 연구위원은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집행력"이라며 "정확하게 재원이 전달되고 대책의 목적이 효율적으로 달성될 수 있게 사후관리와 평가를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ev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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