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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결단과 싸움이 옳다

동사무소로 젊은 최고의 인재들이 몰려드는 현실

주민등록증을 또다시 분실했다. 완전 연례행사다. 1년에 한 차례씩 꼭 잃어버린다. 하도 자주 분실하다보니 언제 어디에서 분실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신분증을 제시해야 출입이 가능한 장소에 갔다가 분실사실을 깨닫지 않은 것만도 그나마 다행이랄 수밖에.

주민등록증 재발급을 신청할 경우를 빼면 동사무소를 찾을 일이 없다. 따라서 1년을 주기로 동사무소가 제공하는 행정서비스의 혁신을 본의 아니게 점검하게 된다. 해가 가면 갈수록 동사무소 직원들은 더 친절하지고 업무 속도 또한 향상된다. 공공부문의 이른바 경쟁력이 꾸준히 강화되고 있음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확실하게 체험하는 셈이다.

아마 이를 두고 참여정부는 스스로를 성공한 정부라고 자부하는 모양이다. 2002년 내내 수많은 사람들이 분투한 결과에 힘입어 노무현 정권은 탄생했다. 분당과 탄핵과 대연정과 FTA 등 온갖 소동을 거친 성과로 우리 국민들은 과거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게 되었다. 역시 대단한 노무현이다. 오늘도 노무현이 또 이겼다!

노무현 기념관인가, 노무현 대학원인가를 세운답시고 청와대가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소식이다. 기념관을 짓는 데만 무려 20억 원의 자금이 지출된단다. 민생경제도 어려운 판국에 국민의 혈세를 함부로 낭비해서야 쓰겠는가? 전국 주요 대도시의 동사무소 가운데 한 곳을 골라 기념관으로 개조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동사무소의 업무효율을 끌어올리는 치적을 거둠으로써 단군 이래 최고의 성군으로 자리매김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딱 어울리는 공간일 게다. 신축될 노무현 기념관에 나는 내 주민등록증 사본을 기념품으로 기증하련다.

우리를 진실로 슬프게 만드는 것은 동사무소의 경쟁력을 제고한 게 집권 5년 동안 기록한 가장 빼어나고 가시적 업적인 노무현 정권의 초라한 성적표가 아니다. 노무현이야 휘하의 영남 B급 양아치들 데리고 퇴임 후 고향인 경상도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물론 YS의 수제자답게 끊임없는 헛소리로 국민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겠지만 더는 현직 통치권자가 아닌 그에게 현재와 같은 스포트라이트가 비칠 리는 만무하다.

문제는 최고로 중요한 업무라고 해봤자 주민등록증 떼어주는 게 전부인 동사무소에 대한민국의 젊은 인재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데 있다. 명문대학 이공계를 졸업하고 대기업 연구소에 취직한 박사학위 소지자로부터 취업난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지방대 인문학도까지 인생의 승부를 동사무소에 걸고 있는 형국이다.

동사무소에 들를 적마다 절감하는 건 거기서 이루어지는 업무의 난이도가 특별히 높지 않다는 점이다. 툭 터놓고 이야기해서 중학교 3학년 정도의 지적 수준이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소화할 수 있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허드렛일들이 주류다. 지하철역에서 취객들 선로로 떨어질까 살피며 무전기로 막차도착을 알리는 공익근무요원들의 업무가 훨씬 변별력이 있을 터. 주민등록증 관련업무 처리시간이 2분에서 1분으로 단축됐다고 하여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이 두 배로 뛰었다고 규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정치적으로는 반대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무원 조지기’를 적극 응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분보장은 진정한 능력과 지속적 노력에 기초해야만 옳다. 실무현장에서는 커다란 쓸모가 없을 잡동사니 지식들을 몇 년간 죽어라 암기한 덕택에 평생 안정된 직장을 꿰찬다면 이는 매국노보다도 나쁜 짓을 저지르는 꼴이다. 솔직히 나라 팔아먹는 역적질에도 나름의 창의력과 모험정신이 요구된다. 한국의 공무원들은 직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국민의 고혈을 빨아먹는 거머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예전과 달리 대놓고 뇌물과 급행료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생적 성격이 본질적으로 변화한 건 아니다.

공무원들에게 청백리의 처신과 지고지순한 희생정신을 요구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공직진출을 시대를 대표하는 ‘보장자산’으로 믿고 공무원이 된 이들에게 국민이 한없이 물주 구실을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라가 있어 공무원이 존재하는 것이다. 공무원을 위해 나라가 있는 게 아니란 뜻이다.

겨우 3프로를 도태시키는 퇴출조치다. 이마저 일각에서는 잔인한 처사라고 주장한다. 황당무계한 궤변이다. 일반기업체에서는 3프로가 아니라 30프로만 쫓겨나도 약과다. 더욱이 최근에 공직에 입문하려는 청년들의 거의 모두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동기에서 공무원이 되기를 결심한다. 그들은 단지 안정된 일자리를 좇아 공직사회의 문을 두드릴 뿐이다. 보장자산 매니아들을 국가의 이름으로 배려할 까닭은 없다. 노무현 정권 들어서 살림살이 나아진 족속은 강남주민들과 공직자 가정밖에 없다는 여론의 비판은 일리 있는 항변이다.

회사가 부도나면 직업을 잃어야 정상이다. 10년 전 우리는 IMF 관리체제를 쓰라리게 경험했다. 나라가 망한 탓이었다. 나라가 망하면 나라살림을 책임졌던 벼슬아치들은 당연히 잘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당시 경제정책을 입안·집행한 관료들 대부분은 계속 승승장구했다. 국책은행을 비롯한 여러 공기업으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 천문학적 액수의 연봉과 판공비를 챙겼다.

열정이 없었으면 징기스칸은 양치기에 머물렀을 것이라는 광고가 있다. 현대의 대한민국에서 열정이 없는 인간들은 양치기 대신 공무원이 된다. 열정이 결여된 인간이 나라를 다스리며 다른 사람들의 열정마저 고사시키는 현실이다. 고깔모자 쓰고 한강변에서 풀 뜯는 걸 창피하게 생각하지 말라. 죽는 날까지 그런 일을 하는 국민들이 수두룩하다. 나는 어제 양수리에서 과장 보태면 송아지 만한 개가 사는 개집 옮기고 왔다. 개의 배설물과 기생충알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개집 짊어지는 거에 비하면 한강공원에서 잡초제거하는 건 그야말로 웰빙이다.

철밥통과 열정은 모순이고 상극관계다. 열정은 활력의 원천이다. 개인이건 집단이건 열정이 사라지면 미래가 없다. 열정이 메마른 작금의 한국사회는 아테네의 발랄함도, 스파르타의 규율도 없는 축소사이즈의 페르시아에 불과하다. 규모는 도시국가인데 나라의 운영방식은 페르시아인 상황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타오르는 열정의 불씨를 꺼뜨리는 만행에 국가가 앞장서서는 곤란하다. 열정이 모자란 종자들을 국가가 먹여 살리는 구조는 어불성설이다. 관료조직의 철밥통을 깨고 공직사회에 열정을 불어넣는 작업, 주민등록증 발급시간 1~2분 줄이는 과제에 견줘 단연 시급하고 중대하다.

민주화운동을 팔아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은 있으나 없으나 매한가지인 공무원들의 처우를 대폭 개선해 나라의 열정을 말아먹었다. 이미지밖에 없다던 오세훈은 서울시장에 취임하자마자 ‘공무원=보장자산’이란 망국의 공식을 깨뜨리는 중이다. 목전에 벌어지는 현상에 당황할 필요는 전혀 없다. 역사는 본디 역설적으로 발전하는 법이다. 박정희 군사독재의 산물인 그린벨트와 고교평준화를 이제는 개혁세력과 진보진영이 열렬히 지지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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