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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9일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발의할 경우 국회에서 연설하기 위해 직접 작성해뒀던 '개헌 발의에 즈음한 국회연설문' 원고를 청와대브리핑에 게재했다.

청와대측은 "비록 국회연설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했던 취지가 소상하게 담겨 있다"며 "개헌에 대한 책임있는 공론과 역사의 기록을 위해 공개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연설문 요지다.

"존경하는 국회의장, 국회의원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저는 이미 말씀드렸던 대로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대통령의 연임을 허용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키자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개헌이 꼭 필요한 이유를 다시 말하라고 한다면, 저는 규범, 신뢰, 기회 이 세 가지 단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헌법은 모든 규범의 근본입니다. 헌법에 문제가 있다면 헌법을 고쳐야 합니다. 지금의 헌법은 20년 전 6월항쟁의 결과로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이전과는 크게 다릅니다만, 이 또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통령 단임제는 당시의 특수한 사정으로 만들어진 제도로서 특별히 손질이 필요한 제도입니다. 대통령 단임제는 80년 신군부가 국민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이미 채택한 것으로 민주주의 제도로서는 합리적 근거가 미약한 것입니다.

단임으로는 책임정치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연임을 걸고 국정을 수행하고 국민의 평가를 받아 진퇴를 결정하는 것이 책임정치의 본질에 맞는 것입니다. 단임제는 미래를 내다보는 정치를 불가능하게 합니다.

단임제 아래서는 연임이 없으니 임기 3년이 지나면 당정관계에 레임덕이 옵니다. 당정 분리를 하지 않더라도 이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13대 대통령 이후 모든 대통령이 탈당을 해야 하는 사태는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임기 6년차의 저주'라는 연구논문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대통령제 아래서는 레임덕 문제가 책임정치의 장애사유가 되는 것을 회피하기 어려운 일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우리의 경우는 미국의 경우와 비교하면 '임기 3년차의 저주'라고 해야 할 형편입니다.

대통령 단임제보다 더 국정을 어렵게 하는 것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임기가 서로 다르니 선거가 너무 자주 돌아오고,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용해서 여소야대의 국회가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여소야대의 국회 아래서는 정부가 일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13대 국회 이후, 정부입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이 여대야소 국회에서는 평균 2.6개월이 걸린 반면 여소야대 국회에서는 평균 4.1개월이 걸렸습니다. 따라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선거를 동시에 실시하여 여소야대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자는 것입니다.

국회의 본분이 견제에 중심이 있다는 생각도 옳은 것이 아닙니다. 국회도 책임은 없고 반대를 본분으로 생각하는 야당보다는 책임을 지고 일을 하는 여당이 더 많아야 국정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상 더 독재의 시대가 아닙니다. 견제가 필요하다고 국회를 여소야대로 만들 일이 아니라 다음 선거에서 책임을 묻고 정권을 바꾸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일을 할 수 있게 해놓고 책임을 물어야지 일을 할 수 없도록 발목을 잡아 놓고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올바른 견제가 아닙니다.

여소야대로 인한 국정의 비효율을 방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각제를 하는 것입니다. 내각제에서는 국회의 다수가 아니고는 정부가 성립될 수조차 없으므로 여소야대로 인한 이원적 정통성 문제나 국정의 비효율 문제도 없고, 국정의 책임자가 물러나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서 패배하는 그날이 물러나는 날이어서 레임덕 문제는 생기지 않습니다. 원래 이것이 저의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이를 개헌안으로 제기할 만한 상황이 아니므로 개헌안으로 내놓지는 않습니다.

결국 우리가 지금 여소야대 국회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개헌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여소야대 국회가 되는 경우에는 동거정부, 연합정부, 대화와 협력의 정치문화 등의 관행을 만들어 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대로 가면 선거가 너무 많습니다. 올해 대선을 비롯해서 2008년 총선,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과 대선 등 올해부터 2016년까지 10년 동안 전국단위 선거가 7번이나 있습니다. 재·보궐 선거까지 합친다면 그 수가 너무 많아 헤아리기 힘들 지경입니다. 단지 선거가 많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권의 심판을 주장하고, 일상적인 국정운영이 선거운동으로 시비가 걸려 정책 수행이 어려워지고 정책의 신뢰가 떨어지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저의 생각만은 아닐 것입니다. 정당뿐만 아니라 학계, 언론 모두가 개헌을 말해 왔습니다. 그리고 국민 대다수도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개헌을 발의하는 두 번째 이유는 '정치의 신뢰'를 위해서입니다. 저는 후보시절 개헌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당선자 시절에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대선 이전부터 최근까지 많은 정치인들이 개헌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특히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분들은 현직에 있을 때 대부분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열린우리당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태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정치인도 언론도 모두 저의 개헌 발의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 대부분이 2006년이나 2007년이 개헌에 적절한 시기라고 말했던 분들입니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말을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먼저 말을 바꾸고 다른 정당들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 한나라당이 말을 바꾸기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입니다. 한나라당 소속 차기 대선 예비후보들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높이 올라가서 굳어져 버린 것처럼 보인 때부터입니다. 그때부터 한나라당은 대선구도가 흔들리면 안 된다는 이유로 개헌에 대한 말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안한다는 것은 아니고 다음으로 미루자는 것이었습니다.

개헌을 하면 어떻게 되어서 대선 구도가 흔들리게 되는 것인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나, 어떻든 말 바꾸기는 이렇게 정략적인 계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의 개헌 발의가 정략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이어서 개헌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음 정권으로 미루자고 합니다.

개헌으로 유리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사람일 것입니다. 개헌이 되면 다음 대통령은 8년까지의 임기를 내다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 4년 후에도 국회가 여소야대가 될 가능성이 줄어들어서 안정되고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책임 있는 국정운영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서 국민들이 이익을 보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차기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분들이 개헌을 반대하는 것을 보면, 이 분들은 당장 대통령이 되는 데만 급급할 뿐, 당선된 다음에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 당장의 유리한 상황을 지키는 데 급급한 나머지, 상황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만으로 무엇이 유리한지 아닌지도 판단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라의 먼 장래를 위해서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1년 앞의 유리함도 내다보지 못하는 그런 근시안적인 지도자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나라당은 개헌을 다음 정부로 미루자고 합니다. 다음 정권에서 개헌을 하자면 대통령의 임기를 1년이나 단축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사정이 이러하니 다음 정부에서 개헌을 하겠다면 이런 장애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밝혀달라고 요청했는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과연 다음 정부에서는 개헌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두 번이나 말을 바꾸었으니 또 다시 말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말을 바꾸는 것이나, 당장 눈앞에 닥친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되지도 않을 일을 약속하는 일이야말로 정략입니다. 그리고 이런 정략적인 행동이 정치 불신을 만듭니다. 정략이 있을 수 없는 데도 정략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야말로 정략입니다. 이 또한 정치 불신을 조장하는 일입니다.

되지도 않을 개헌을 왜 발의하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참여정부 최고의 목표는 원칙과 신뢰입니다. 후보시절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고, 참여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첫 번째 국정원리로 천명했습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정치하는 것을 보고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던 것을, 훗날 스스로 정치를 경험하면서 다시 확인하고 다짐한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 사회의 신뢰를 바로 세우기 위해 개헌을 발의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저는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역사의 진보를 믿습니다. 나라의 미래를 믿습니다. 한나라당이 대북 정책에 관해 입장을 바꾸었듯이 개헌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회입니다. 이것이 지금 개헌을 발의하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변화와 개혁은 제 때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헌법 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 발전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입니다. 할 수 있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해야 합니다. 개혁과제 중에서도 헌법 개정은 기회가 특별히 까다롭습니다.

현행 헌법 아래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비슷해지는 시기는 20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옵니다. 올해가 바로 그 해입니다. 올해에 헌법을 고치지 못하면 다시 20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개헌의 기회가 영영 물 건너 갈 수도 있습니다. 그로 인해 장기간 국가 발전이 지체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헌법에는 위의 두 가지 말고도 고쳐야 할 부분이 더 있을 것입니다. 내각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모든 문제를 포함하여 개헌을 논의하기 위해 다음으로 미루자는 주장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시간은 충분합니다. 20년 전, 87년에는 6·29 선언이 있고 난 다음에 개헌도 하고 선거도 치렀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시간은 아직도 넉넉합니다. 고치자는 내용도 간단합니다. 그 누구도 손해 볼 일이 없는 일입니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보다 나은 규범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아울러 정치의 신뢰가 무너지는 것을 막자는 것입니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것입니다. 결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서울=연합뉴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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