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개편의 한 축으로 급부상한 민주당이 ‘참여정부 주도세력 배제’를 고수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박상천 대표는 향후 통합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국정실패에 명백한 책임이 있는 인물, 전직 총리, 장관, 좌편향 진보노선을 고집한 전직 당 의장은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박상천 살생부’다.
이는 김근태(GT), 정동영(DY) 두 전직 의장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지난 11일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과 회동한 자리에서 “열린우리당과 당 대 당 통합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두 당이 통째로 합쳐질 경우, ‘잡탕식 정당’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는 ‘열린우리당=국정실패에 책임을 져야할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살생부 당사자인 GT-DY는 당내 ‘친노 대 반노의 대립구도’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노무현의 가치’, ‘참여정부의 정책계승’을 주장하는 친노 그룹과 대립각을 분명히 세움으로써, 범여권 비노 진영으로 합류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반자인 민주당 측의 차가운 반응, 열린우리당 내에서 이미 탈당 대기자로 분류되는 현실에서 ‘정치적 압사위기에 처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한편 이 둘은 박상천 대표를 향해 ‘기득권 정치’라며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섰다. ‘노무현 때리기’에 이어 ‘박상천 때리기’에 제동을 건 것이다.
정 전 의장은 15일 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기준을 가질 권력을 부여받은 사람이 있느냐”며 “나는 신당에 가장 맞는 사람이고, 나야말로 신당의 얼굴이며 다른 사람은 신당을 함께 할 수 없다는 논리는 국민이 수긍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의장도 1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어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한 줌도 안 되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에서 통합의 진정성을 느끼기는 어렵다”면서 “이 사람들 역시 노무현 대통령, 그 참모들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노무현 "열린우리당 '창당선언문' 낭녹한 사람들 맞나"
열린우리당 지도부 역시 박 대표를 향해 “이빨 빠진 호랑이가 천하를 호령하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며 맹비난하고 나섰지만, 여전히 '통합의 키'는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대철 상임고문 등 열린우리당 중진의원 등은 민주당과의 통합을 위해 물밑작업을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도 여전히 대통합 가능성은 열어 놨다.
한편 열린우리당 내 친노 의원들 사이에서도 GT-DY는 ‘비토세력 일순위’로 간주되고 있는 상황이다. 2003년 민주당 분당과정에서 김 전 의장은 사흘 단식 후, 민주당을 지역주의 정당이라고 탈당했고, 정 전 의장은 열린우리당 창당주역으로 정치적 노선을 함께 해왔지만, 이후 참여정부를 비판하며 공공연하게 민주당과의 통합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올 초에는 ‘열린우리당 창당은 잘못된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오기도 오를대로 오른 분위기다. 그는 7일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글에서 “과연 당신들이 열린우리당 창당선언문을 낭독한 사람들이 맞느냐”면서 “정말 당을 해체해야 할 정도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깨끗하게 정치를 그만두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했다. 최측근 안희정 씨는 “배신의 정치”라며 날선 공격을 펼쳤다.
최근 유시민 전 장관의 개인 홈페이지 GT-DY에 대한 비난성 설문조사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지율)2% 정운찬이 마침내 뜻을 접었다. 합쳐서 3%인 정동영, 김근태는 왜 불출마 선언을 하지 않을까'라는 제목의 설문조사였다. 답변 항목으론 '지분 보장의 재산보호', '아직 잘 몰라서', '마지막 계급장이니까', '대통령이 되려고', '경주 완주의 사명감' 등이 제시됐다.
한편 조만간 열린우리당내 김 전 의장과 정 전 의장 세력들이 순차적으로 탈당을 결행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친노 세력과의 결별과 민주당과의 첨예한 갈등 속에서 정계개편에서 '반(反)한나라당'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을지, 두 전직 당의장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